메시아
보리스 스탈링 지음, 윤철희 옮김 / 채움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추리소설이다. 형식은 보통의 추리소설과 같다. 많은 기독교적인 소재들이 추리소설의 연쇄 살인 사건의 소재가 되었다. 계명 살인 사건이라든가, 대죄 살인 사건이라든가, 이런 보통의 것들은 많이 접했지만 이 작품에서 만나는 소재는 아마도 처음 접하는 형식의 독창적인 소재다. 또한 전반부와 후반부,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우리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사는지, 살고 있는 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잔인하게 살인을 하는 연쇄 살인범이 등장한다. 그는 범죄 현장에 자신이 남기는 메시지 이외의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아 경찰이 도저히 잡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남긴 것은 피해자들에게서 공통되게 잘라간 혀와 입 안에 물린 은 숟가락이었다. 그래서 이 살인마에게는 실버 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스코틀랜드 야드의 총아인 레드 총경은 그 살인마를 잡기 위해 4명을 한 팀으로 조직한다. 그러면서 그가 학생 시절 동생이 사고로 저지른 살인의 고백을 듣고 동생을 경찰에 고발했던 과거가 함께 등장한다. 그 동생은 자신을 판 배신자 형을 증오하고 있다. 그때 동생이 고백하며 들려 준 음악이 헨델의 메시아였다.

이 전반부에서 나는 동생을 경찰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넘긴 레드의 심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이럴 때 누구나 논리나 이성보다 감성과 손은 안으로 굽는다는 형제애 내지는 가족에 대한 생각이 더 먼저 드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가족의 증언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이 뺑소니 사고를 냈을 때는 동생의 심정을 이해한다. 이런 이율배반은 충분히 인간적이지만 그의 성격적 결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범인에 집착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쉽게 해준다.

후반부는 사건에 대한 단서를 잡고 범죄의 특성을 알아내는 과정, 그리고 범인의 검거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에 범인의 심리가 전반부 레드의 과거의 고백처럼 등장한다. 그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생각하며 사건을 저지르는 일련의 과정이...

전반부에서 레드 총경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이 반감되는 바람에 이 작품이 정교하게 짜여 진 작품이라는 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또한 범인이 누구일지가 대충 초반부터 윤곽이 잡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간 지루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단 한 장이 이 작품에 대한 내 평가를 모조리 바꿔버렸다.

사실 이 작품의 연쇄 살인이라는 측면보다 강조하려던 것은 인간의 인간성의 자기 성찰이다. 믿음, 배신은 곳곳에서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자주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드러나기도 하고 쉽게 감춰지기도 한다. 배신을 당하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쉽게 드러나는 것이고, 믿음을 가져야 할 때는 어렵게 감춰진 배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아닌 내 안에서 나오려는 배신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은 배신하지 않는 믿을 만한 인물임을 자처할 수 없다. 하지만 작은 배신은 있어도 큰 배신은 없을 거란 믿음은 줄 수 있다. 그것이 범죄가 되느냐 아니냐의 차이를 가르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세상 모든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의 양심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이렇듯 경찰 추리소설의 모든 교과서적인 길을 가면서도 연쇄 살인이라는 이제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하는 소재를 인간의 심리와 함께 독자에게 전달하면서 독자를 고민하게 만드는데 있다. 아쉬움이라면 이 책이 작가가 출판했을 당시 번역 되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봐도 좋다. 살인 사건으로 한번, 작가의 정교한 설정으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마무리하면 이 여름 또 한권의 좋은 작품을 읽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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