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P. D. 제임스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썼을 때 여자의 직업으로 탐정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작품의 제목을 인용한 이 작품에서 열세 살의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에게, 물론 남자아이도 마찬가지지만 살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죽이고 싶어.’와 ‘죽고 싶어.’를 속으로 외치는지 알 길은 없지만 누구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어른이든 어린 아이든,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인간 사이에서 부대끼는 어려움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니시 아오이는 밝고 명랑한 아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와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만 가면 말이 없어지고 점점 집에 가기가 싫어진다. 그 이유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 새 아버지 때문이고, 생활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딸을 살갑게 대할 수 없는 엄마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저 겉으로만 친구일 뿐 진짜 오니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 각자의 생활환경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야노시타 시즈카는 학교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하지만 섬 제일 부자 할아버지의 손녀딸이다. 하지만 시즈카에게도 고민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이. 그런 친구 하나 없는 시즈카가 여름 방학 친구들과의 균열이 생겨 외톨이가 된 오니시의 마음에 들어온다. 그리고 두 소녀가 만나 기존의 세상이 변해버린다.

원시인이 숨어 있는 동굴이 안전한 건 아니다. 밖에 난폭한 곰이 있다고 해도 안에서 숨죽이고 있어봐야 굶어 죽을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건 최선책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아니고 단지 슬픔에 안주해서 자살하는 것과 같은 일일뿐이다. 본색을 숨기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나중에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힘이 없다고 숨는 건 아니다. 힘이 없다는 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늘 잊고 있는 것이지만. 게임에서나 반드시 승패를 나누고 강자와 약자를 나누고 힘을 키워야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그런 단순화는 위험하다.

스파르타의 여우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비밀과 사정을 품고 있는 것은 옷 속에 감춘 여우와 같아서 자신의 살을 파먹게 해서 자신도 죽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할 분위기였다면 옷 속에 여우를 감출 필요가 있었을까를 어른들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아니 아이들이 달라졌다기보다 세상이 아이들이 달라지게 만들었고 거기에 빠르게 적응하는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의 적응 속도가 느린 것이다. 아이들을 원시인으로 만들 것인가, 스파르타의 여우를 품고 죽은 아이로 만들 것인가는 어른들의 몫이다.

오니시 아오이가 살인자가 된 것은 일차적 원인은 그 아이에게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면 어른들은 편하겠지만 그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살인은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이가 피 묻은 손을 내밀고 있다. 도움을 청한다. 내 아이가 울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가는 마지막까지 작품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 단순함에서 복잡한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을 대도시도 아닌 작은 섬에서조차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살인이 아닌 것이다. 한 여름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한 겨울 몰아치는 눈보라소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지르는 외침의 메아리일지 모른다. 그 생생함에 전율을 느끼며 기리노 나쓰오의 <리얼 월드>와는 또 다른 아이들의 외로움에 가슴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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