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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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다. 첫 작품부터 심상치 않게 다가오는 그의 작품은 기괴하고 고요하다. 차분하며 공포감을 심어주고 낯익은 듯 낯설다. 잔인하면서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감정을 토해내게 만든다.

<409호의 유방>은 2시면 찾아온다는 관리인을 기다리는 부부의 이야기다. 하지만 아내만 이야기하고 남편은 말 한마디 안한다. 그 집에는 떡갈나무 식탁이 있다. 아내는 양배추를 삶고 틀니 빠진 남편에게 먹이다 초인종 소리에 관리인이 왔나 문을 열면 관리인은 없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409호 부부는 살아 있는 걸까? 아님 그곳은 산 자들이 있는 곳일까?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잘라낸 한쪽 유방 이야기를 하는 아내, 틀니를 덜거덕대는 남편, 오지 않는 관리인... 기다림과 푸념과 기괴함이 들통 속에서 양배추처럼 삶아지고 뼈로 남아 버려지고 있다.

<침대>는 몇 십 년을 병원 침대를 지키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그들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거라 말한다. 하지만 종래 그들은 그녀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누가? 그녀는 누구고 왜 침대를 낡은 소파가 낡아 꿰맨 철사가 녹이 슬도록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꽃을 접으면서. 그것은 안식을 기다리며 침대가 비기를 기다린 인간의 서글픈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손님들>은 낯선 자의 방문에 대한 공포를 담아내고 있다. 철거로 집을 지켜주겠다고 찾아온 사람들, 반갑지 않지만 내 집에 들인 사람들에게 결국 그 집을 내어주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집주인의 모습에서 소통할 수 없는 자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인간의 단면을 느낀다. 그 답답함을 참아내느니 정해진 길을 가는 게 낫다는 것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준다.

<박의 책상>은 한 남자의 서글픈 정리해고를 다루고 있다. 녹은 낡음과 부패, 사라짐을 의미한다. 재생될 수 없는 것 그것이 12년을 함께 한 낡은 철제 책상과 박계장이 가야 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결국 보일러실까지 내몰린 철제 책상을 단념해야 하는 박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슬픈 뒷모습이다.

<두 번째 서랍>은 어느 날 자신이 사온 가구의 두 번째 서랍에 자물쇠가 달린 것을 안 여자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지를 궁금해 하다가 강박장애를 갖게 되고 결국 열쇠공을 불러 그 서랍을 열어본다는 이야기다. 왜 그 서랍만 자물쇠가 달린 걸까? 자신이 거기에 어떤 귀중한 것을 넣어 놨을까? 누군가 그 서랍을 자신보다 먼저 열어볼까봐 전전긍긍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단조로움과 불신을 느낀다.

<도축업자들>은 닭을 도축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닭을 도축하는 장면이 이런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닭을 도축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이들에게 어느 날부터 닭이 오지 않는다. 조류독감 때문이다. 닭을 잘 도축하려 새 장화도 마련했건만 이들에게는 조류독감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도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듯 행동하는 이들에게서 삶의 본질적 피의 단순함을 발견한다.

<쌀과 소금>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며 자신의 자매들의 죽음을 회상하는 한 노파의 이야기다. 꿈속에 나타난 이가 소금독과 쌀독이 비면 달라고 했다고 꿈이 깨자 그 독에 소금과 쌀을 가득 채워 놓은 노파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정갈한 죽음의 의식을 느낀다.

<트럭>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땀 흘려 일하다 왔지만 그 후로 백수로 지내고 겨우 트럭 하나 장만해서 일을 해서 아들 대학까지 어찌어찌 보냈더니 자식이 취직을 못하고 백수가 되었다. 참, 뭔 세상이 이리 끝도 없이 빙글빙글 꼬리를 물고 도는지 모르겠다.

모든 작품마다 공포가 들어 있다. 미스터리도 들어 있다. 기다림과 소통 부재의 실내에서 가구를 소재로 한 공포가 집 자체가 되더니 직장을 돌아 다시 공허한 정신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밖으로 나가고 급기야는 원초적인 죽음과 삶에 스며든다. 좁은 곳에 갇혀 있던 공포가 서서히 넓이를 확장하면서 인간사 전체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구에서 집으로, 집에서 직장으로, 개인에서 사회로, 인간에서 자연으로 공포는 미스터리를 품고 본드 칠한 혁대가 풀숲으로 뱀처럼 기어들어가듯 그렇게 스멀스멀 기어 담쟁이 넝쿨처럼 휘어 감는다.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인데 흡입력 있다. 이름은 숨인데 숨 막히게 만든다. 그런데 어렵다. 어려우니까 공포고 미스터리겠지만 그래도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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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7-07-05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침대에서 잠을 자면 잠이 잘 올까요^^(이긍..생뚱맞기는..ㅡ.ㅜ,, 만두님 한대 때려주세요..ㅠㅠㅠㅠ)

물만두 2007-07-05 15:40   좋아요 0 | URL
우선 퍽~ 고단하면 어디서 자도 잘 올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