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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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우와 퍼스리샤 하이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섬뜩함을 묘사하는 타고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 감각은 상황을 반전시키고 우리의 삶을 수수께끼로 가득 찬 것으로 묘사한다. - 타임아웃 뉴욕’ 뒤표지에 보면 이런 말이 쓰여 있고 띠지에도 언급하고 있다. 뭐, 섬뜩함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렇게 쓰면 작가가 포우와 하이스미스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인식될 수 있다. 그건 아니지 않나 싶은데...

 

<애니멀 크래커스>는 한남자의 절망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물이 주는 메시지, 즉 경고를 알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요즘 한창 유럽을 비롯한 나라들에서 불고 있는 ‘부성애 있는 남편에게 양육권을’이라는 표제를 달고 싶은 작품이다. 불륜과 폭력이라는 것이 맞물려 부유하고 있다. 주인공과 코끼리가 등장한다. 코끼리는 기억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남자가 절대 망각할 수 없는 것을 일깨워주는...

 

<홈 스위트 홈>, <갈루스, 갈루스>은 이해하기 간단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어떤 방향으로 작품을 써야 할지 아직은 실험단계인 것 같은데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간단하고 알아듣기 쉽게 하는 게 제일 좋다. 부부의 관계와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일방적 헌신이나 소통하지 못하는 이들의 함께 하는 생활의 공허함이 내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리창 너머 남의 일 보듯 하게 만든다. 개와 닭이라... 인간에게 복종의 상징이며 가족애에 꼭 필요한 마지막 하나의 그림인 개는 <홈 스위트 홈>에서 주인공들이 바라던 것을 이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끔 물어야 개라는 걸 알 수 있다는 듯 이기적인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갈루스, 갈루스>에 등장하는 닭은 싸움닭으로 기사회생해서 애완닭이 되었다. 인간의 모성애에 기대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측은하다. 닭보다 못한 인간들의 모습이라니...

 

<타당한 조건들>처럼 유머러스한 면을 선보이는 것도 좋다. 기린의 단식 농성은 사실 재미있게 볼 수 없다. 인간의 무자비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간의 죄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자신들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보존>은 아버지의 무게가 주는 중압감에 평생 시달린 여자가 예전에 자신이 바라던 것을 꿈꾸는 것이 내면에서 흘러나와 현실까지 드러나고 있다. 그것을 못 받았던 사랑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남아 있는 미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상상만이 아닌 그 이상이 있었다면 더한 공포를 전달할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 고릴라라... 그 커다란 고릴라가 부서지려 한다. 아버지 같은 고릴라가 자신의 뒤를 따라온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과거의 슬픔이 박제되어 쌓이고 그것이 커져 자신을 찾는다. 우리의 슬픔은 아마도 벽과 벽 사이에 갇힌 것 같은 암담함이리라.

 

<슬림의 마지막 비행>과 <토크 터키>, <폭력의 집>은 같이 봐야 할 것 같은 작품들이다. 현대 사회 가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들은 무조건 감싸기, 방치, 폭력성을 비정상적으로 드러내는 아이 앞에서 무력해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틀린 그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다. <토크 터키>가 제일 신경 쓰였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지... 토끼 하나 전해주고 떠난 아버지, 칠면조와 말하며 소통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아이, 고양이의 울음... 이 모든 것은 부제와 차별과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단편들이 이들이 아닐까 싶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현재 속 미래의 걱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해의 히트맨>과 <당신 삶의 뱀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방법>, <미스 월드론의 붉은 콜로부스 원숭이>는 서로 다른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인생도 일방통행인 인생은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버팔로처럼 들이 받기만 한 남자의 짧은 인생은 정해지고 예견된 것이었다. 버팔로는 버팔로와 함께 살다 가야 한다. 뱀은 자기 안의 분노다. 자기에게, 또는 타인에게 그 분노를 참지 않고 제대로 터트리는 것은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마음에 뱀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억제할 때와 드러낼 때를 알아가는 것이 어쩌면 사는 것인지도... 지금은 멸종된 붉은 콜로부스 원숭이와 지금은 멸종된 관습에 대한 이야기다. 멸종은 멸종시킨 자들의 탓이다. 지금도 깨닫지 못한 인간들에게 무슨 소용일까 싶다.

 

건조하고 메마른 동물 과자는 현대인을, 아니 비틀린 인간을 상징한다. 그것을 적셔줄 약간의 커피나 우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 탓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목이 막히니 마실 건 더 준비해야겠다. 다음에는 좀 잘 넘어가는 과자를 구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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