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의 대죄 1 밀리언셀러 클럽 39
로렌스 샌더스 지음, 최인석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pride(교만), covetousness(탐욕), lust(욕망), anger(분노), gluttony(폭식), envy(질투), sloth(태만)의 일곱 가지 죄(칠죄종)로 이루어진 The Deadly Sins 중 첫 번째 대죄인 Pride 즉, 교만에 대한 죄를 소재로 한 로렌스 샌더스의 대죄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대죄 시리즈 중에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는 이 작품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은 그의 처녀작인 <앤더슨의 테이프>를 읽고 뒤늦게 그를 인지한 탓이다. 사실 그의 작품으로 가장 먼저 읽은 것은 <맥널리의 비밀>이었다. 그 작품을 읽고 실망을 해서 작가를 과소평가하고 말았다. 이것도 첫 번째 대죄에 속하는 나의 잘못일 것이다.

사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왜 제목이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 델러니 서장의 말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아니 자신의 근본적인 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대니얼 블랭크를 신이 아닌 한낱 인간인 자신이 단죄하려 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니얼 블랭크는 5명을 얼음도끼로 때려죽인 살인자다. 그렇다고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 측에서 인정하는 죄다. 그렇다면 가해자인 블랭크의 죄는 무엇일까. 단순히 5명의 사람을 죽인 죄뿐일까. 아니다. 그의 가장 근본적인 죄는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한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 하지 않은 교만이다. 아니 살인을 피해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로 생각한 교만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예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교만이다. 그 교만이 살인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도 죽어 가면서 깨닫는다. 자신은 일개 자연의 일부분임을. 어떤 것이 되려고 몸부림칠 필요도 없는 아주 작은 미미한 존재임을...

그런 점에서 보면 델러니 서장이 대니얼 블랭크에게 친근함을 느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델러니와 대니얼 블랭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동질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는 같다. 가해자가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가해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만큼 악하다고도 생각하고 산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교만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사회가 다른 사회에, 국가가 다른 국가에, 민족이, 문명이 그 교만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죄를 짓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델러니는 자신의 교만이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라 언제부턴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교만은 인간인 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없이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짓고 태어나는 것이라는 기독교의 원죄론은 이런 의미에서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교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살인은 교만과는 별개의 것이다. 이 작품에서 블랭크는 살인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부모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않을 만큼 냉혹하고, 화가 나면 자제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변태적이고, 그러면서 남의 눈에는 부유하고, 점잖고, 상냥하게 보인다.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이렇듯 살인이란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면 이런 블랭크와 같은 요소들을 빠짐없이 갖춰야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교만과 살인은 별개의 문제다. 교만은 인간에 대한 이해, 측은지심과 관련이 있는 요소다. 델러니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누군가 언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고. 교만은 이런 인간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를 억압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죄가 되는 것이다.

작품의 구성은 먼저 살인자인 대니얼 블랭크가 살인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델러니 서장이 살인자를 잡는 과정을 교대로 나열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이런 긴박함을 잘 섞이게 하고 보완하는 완충의 역할을 하는 것은 델러니의 아내 바바라가 병이 들어 점차 죽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 죄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 사랑이 싹트고 시드는 것, 그런 반복을 인지시킴으로 인간을 경건하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질 것을 바라는 작가의 감상적인 소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단히 재미있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델러니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고, 죄를 짓는 사람, 단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작가의 견해가 마음에 들었다.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해, 인간의 죄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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