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접하기 힘든 아이슬랜드의 추리소설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다. <무덤의 침묵>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사실 이 작품 시리즈는 한 시리즈로 출판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어권 아니면 일본으로 심하게 편향된 우리 출판계에서 그런 바람은 출판사에게 무척 부담이 되는 일이라 생각되어 이렇게라도 출판된 것에 만족한다. 물론 기왕이면 이 작품이 먼저 나왔더라면 좋았겠지만 출판사 시리즈의 특성상 이 작품의 출판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 고마운 마음만 가지련다.

 

한 노인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에를렌두르 반장은 조사에 나서지만 올리 형사는 조사할 필요도 없는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좀도둑에 의한 살인일거라는. 그렇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미국식의 거창한 연쇄살인사건을 바랄 수 없다. 또한 일본식의 풀리지 않는 트릭을 풀어야 하는 사건도 없다.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에서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저 사라졌나 생각하면 그만이고 사람이 살해되면 뻔히 알만한 수사하기 쉬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를렌두르는 그 노인의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현재에 답이 없으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여기에 에를렌두르 반장의 사생활이 더해진다. 마약중독자 딸이 아이를 임신한 채 또 나타난 것이다. 일찍 이혼한 그는 전처와는 원수가 되었고 딸과 아들에게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 더 자세한 것은 <무덤의 침묵>에서 보시기 바란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피해자인 노인은 그야말로 짐승 그 자체인 인물이었다. 상습적인 강간범이었지만 잡힌 적은 없고 어렵게 신고한 여성은 경찰에게 모욕만 당하고 임신까지 했지만 그 아이는 어려서 병으로 죽고 여성도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이 작품 속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거는 하나의 역사다. 그것은 분명 자취를 남기고 추하던 아름답던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거나 남아 있게 마련이다. 죄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건 그 죄가 언젠가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내가 있었다>라는 작품이 있다. 사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그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제목이 기억에 남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가 있었다>로 착각하고 이 작품에 딱 어울리는 부제라는 생각한 것이다. 과거가, 인물이, 증거가 절대 잊지 않고 기억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말이다.

 

미국식, 혹은 일본식 추리소설을 보다 이 작품을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이 지금까지 인기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아주 많이 닮았으면서도 아이슬란드식의 추리소설의 독특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면 다른 작품에서 우리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화려함, 반전, 트릭 그런 것들이 장식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떤 때는 도시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에 매료되다가도 어떤 때는 한적한 시골길에 핀 들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바로 그런 잔잔하면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잊지 말아야 할 것, 잘못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는 스쳐 지나가면 잘 모를 수 있지만 한번보고 두 번 보면 오랜 세월 기억하게 되는 그런 추리적, 인간적, 정서적 안정감을 간직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화려하지 않다고 외면하지 마시길... 추리소설이 너무 스릴과 섬뜩한 잔인함만을 강조한다고 여기는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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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3-21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이 시리즈 강추입니다. 저는 참 아까운 작품이라 개인적으로 팍팍 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만두 2007-04-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 자꾸 이 제목이 생각나더라구요^^:;;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