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원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666원이라는 대놓고 눈길 끌려는 금액은 확실히 눈길을 끌긴 끌었다.
신간의 가격이 666원이라고?
* 추가 : 666원인 것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 <2666>에서 따 온 금액이라고 한다!
사실 실제로 구매하면 할인되어 600원의 가격에 살 수 있다.

버즈북이 뭐야?
열린책들은 작가 전집을 많이 내기로 유명한 출판사이다. 빨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열린책들에서 처음 나왔을 때의 그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전집이 나왔을 때는 또 어떻고! 그 외에도 E.M.포스터라던가, 쥴리언 반즈 등의 책을 꾸준히 전집식으로 내 주고 있다.
이런 열린책들의 전집마케팅에, 어찌 보면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이 '버즈북'이 아닌가 싶다. 버즈북1! 이라고 당당하게 번호를 매겨 놓은걸 보면, 앞으로도 우리는 더 많은 버즈북과 더 많은 전집을 열린책들에서 기대해도 좋겠다.
출판사에서 이야기하는 버즈북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버즈북 = buzz + book 의 합성어로 열린책들에서 내는 신간예고매체. 중요작가나 신간을 내기 전에 <저자나 책에 대해 미리 귀뜸해주는 책> 이다.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면에서 영화나 광고계의 티저 광고를 연상시키고 (물론, 그들은 덜 보여주는 것으로 유발시키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거리와 평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맥스마케팅을 떠올리게 한다.
로베르토 볼라뇨?
책 제목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는 열린책들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작가 전집의 바로 그 작가다.
볼라뇨,로베르토, 볼라뇨? 라니, 엘니뇨,라니뇨,세데뇨도 아니고.
이렇게 생소한 작가의 전집을 내려고 하니, 색다른 마케팅이 필요했겠구나 싶다.
검색해보니, 이 작가의 책이 딱 한권 나와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 이 바로 그것이다. 오, 그렇군. 열린책들의 버즈북을 읽다보니, 출판사에서 의도한 바대로 홀딱 넘어가는 나는 쉬운 독자~
전집 나오기 전에 한번 읽어볼까 싶은데...

집에 있었다. : p
나는 이 책이 미국 작가거나, 이탈리아 작가거나, 언제 사 두었는지 절대 모르겠을 뿐이고;;
그러니깐, 이야 나는 볼라뇨,로베르토 볼라뇨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을 뿐이고;


로베르토 볼라뇨를 본 것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처음도 아니였다.는 이야기는 후에 하기로 하고,
무튼, 이렇게 나의 뇌리에 이름을 각인시킨 이 책을 좀 돌아보자면 ..
지금까지 열린책들의 편집과는 꽤 다른 방식이다.
약간 재활용지 같은 종이, 널널한 편집, 그리고, 아래 위의 빡빡한 여백과 헤드라인의 큼직한 글씨, 폰트 등등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 내용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볼라뇨에 대한 찬양글! 이라고 보면 좋을 볼라뇨 평론들을 모아 두었는데,
이것은 책의 서문에서부터 전기, 평전에서 뽑아 온 내용까지 다양하다.
근데, 이것이 '볼라뇨'의 이야기만이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무척 즐겨 읽는데, 이전 페이퍼에서 '마르케스는 하이드의 조물주이다' 뭐 이딴 얘기를 할 정도로 마르케스, 보르헤스, 그 외에도 요사나 에두아르도 멘두사, 푸엔테스, 그렇게까지 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옌데, 에우키벨, 오캄포등 일단 라틴아메리카의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 사고 보는데,
볼라뇨의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이야기이고, 그 전과 그 후의 이야기이며, 내가 위에 이야기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모든 밀접한 연결고리는 왜 그를 '마지막 라틴아메리카 문학작가'라고 하는지, 왜 '작가의 고국은 언어'인지 등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붐시대를 주도했던 작가들 이후의 미래는 어떤 것인지, (볼라뇨를 마지막으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롭다.
그가 주창했던 <인프라레알리스모> 밑바닥현실주의
혹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모욕서한> 아, 나, 이거 뭔가요 ^^; 볼라뇨는 이쪽 방면에서 굉장한 명성을 쌓고 있다.
그의 천재성이 폭발하는 시점에서 <2666>이라는 대작을 남기고, 그는 간질환으로 죽었다. 51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작품 자체로도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하나, 내 경우에는 볼라뇨는 모르겠고, 인상 깊은 이 표지를
스크랩해 두었었다. 북커버블로거에서 꽤나 입에 오르내렸던 커버 중 하나다.

각각 표지(1000페이 분량의 대작이라서, 우리나라 번역본도 3권 정도로 나올 예정)의 다양성과 '볼라뇨스러운'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볼라뇨의 작품을 단 한권도 읽지 못했지만, 왠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볼라뇨스러운'
표지!가 아닌가. 하고.
열린책들 출판사는 개성이 강한 출판사다.
변태스러울 정도로 촘촘한 편집, 사철제본방식에 대한 무한자부심, 다양한 레파토리로 민음사 못지 않게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양장했다, 견양장했다 바쁘게 판형을 갈아치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표지디자인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기존의 그림이나 이미지를 따오는 민음이나 펭귄, 문학동네등의 전집들과는 달리, 열린책들에서는 각각의 표지를 직접 디자인한다. 특히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부터는 특유의 이미지즘적인(추상적인 동시에 작품의 의미를 담고 있는) 커버를 내고 있다. (카잔차키스 표지는 화가 이혜승씨의 작업)
이번 볼라뇨 전집의 작업도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이 책에서 그 작업을 공개하고 있다!
열린책들에서 커버 작업과 관련하여 쿠바의 화가, 일러스트레이터인 아후벨과의 작업 내용을 공개한 것.
(북커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나로서는 눈 튀어나오는 이야기였음!)
그와 주고 받은 이메일 (계약내용과 계약금액까지 고스란히 나와 있는 이메일이다.)
그 과정에서 주고 받은 시안들도 볼 수 있다. 맘에 든다. 어서 실물을 보고 싶다.
이 책 너무 알차지 않은가!
근데, 꼭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건
열린책들 제발 작가 얼굴 표지에 넣는거 이제 그만!!
이번에도 단편에 얼굴 넣어달라고 디자이너한테 이야기했는데, 디자이너가 거절했다.
프로이트까지는 좋았는데, 움베르토 에코부터 무지 식상해졌거든요! 근데, 이걸 여기서 또 하려고 했다규?!
절대! 절대! 반대!!
무튼, 이 책의 가격이 666원이라는건 약간 속상하다.
곶감은 진짜 많이 먹고 싶으면, 진짜 많이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책값이 666원이고, 이 책이 너무 좋다고 해서, 이 책을 여러권 쌓아 두고 있을 필요는... 아마도.... 없지...?
이 정도의 알찬 책과 이 정도의 선전효과라면,
사실, 열린책들에선 이 책을 600원이 아니라 6원에 팔아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왜 666 마케팅을 할 생각을 했는지는 여전히 궁금. ^^
북스페인 같은 출판사가 나왔을때 정말 열심히 샀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보르헤스 전집은 계속 증쇄되긴 하는데, 숭악한 디자인과 못지않게 숭악한 주석은 변하지 않고, 가격만 냅다 올리고,
이 책이 우리나라의 열악한 라틴아메리카문학의 인지도와 인기에 붐!을 일으킬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