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갈이 또 한 번 큰 사고를 쳤다.  

나보코프의 작품 21개! 모두를 리디자인한다. (일단 작품 21개 모두!라는 것에 대해서 콜렉터 본능이 발동하고
... 아.펭귄하드백 산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허리띠 졸라매나요? )

요즘 빈티지에서 쏠쏠하게 멋진 디자인의 북커버로 리프린트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여러가지 버전의 책을 사는 것은 고전에 한했는데, 이제 이사람들이 현대물에도 여러 버전의 책을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근데, 이 나보코프 프로젝트까지. 
어떻게 보면 북커버 디자인이라는 산업에 꽤 멀리 떨어져서 주변부에서 감상만 하고 있는 지경이지만,
존 갈이나 칩 키드 같은 대단한 북커버 디자이너들과 한 세대에서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건
굉장히 복 받은 일일지도..  

 알다시피 나보코프는 나비수집가로 유명하다.

'나보코프 나비 수집 콜렉션' 프로젝트의 조건은 나보코프가 이용했던 것과 같은!! (아, 이런 디테일 멋지다)
수집 박스에 종이, 수집품(ephemera), 곤충고정핀이 들어가 있으면서 책의 내용을 재현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존 갈 사단의 유명한 북커버 디자이너들, 그리고 칩 키드 등이 참여 했는데, 현재
18개까지 공개된 상태다. 'lolita'가 빠져 있는 것에 대해서는 'Enchanter'가 롤리타의 원조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리플의 참여 디자이너중 한명은 롤리타를 안 맡아서 다행이라며, 너무 큰 프레셔였을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21개 작품 다!라고 했으니, 누가 롤리타를 맡아 줄까 기대된다.



곤충 수집은 시가전차표 수집보다는 덜 한심한 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곤충 수집이 더 사악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1790년에 '오륙백 명의 머리를 베어 버려야 한다' 고 주창했던 혁명가 장 폴 마라가 아마추어 인시류학자라는 사실이 놀라운가? 알프레드 킨제이가 셀 수 없이 많은 누드 잡지와 포르노 동상, 가학피학성 장신구드로가 18,000개에 이르는 성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전에 수만 마리에 이르는 어리상수리혹벌을 수집했던 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을까? 존 파울스가 아름다운 미술학도를 납치해 지하실에 가뒀던 나비 수집가 프레더릭 클레그라는 인물을 창조했던 건 정말 필연이 아니었을까? (..중략..)

그러나 저울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인시류학에 빠진 사이코 부대 전체를 압도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나비를 그물로 잡아본 적이 없다면 나보코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 생각은 내 합리화, 또는 비뚤어진 유년기의 그 호랑나비들이 헛되이 죽지 않았다고 믿고픈 내 욕망의 비열한 산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열 살의 나이에 프랑스의 비아리츠에서 아홉 살 난 소녀와 눈이 맞아 달아날 때 자기 짐의 전부로 노룬 종이봉투 속에 접이식 나비채를 넣어 떠났을 사람이 나보코프 말고 또 있을까. 나보코프는 두 대륙에서 60년에  걸쳐 나비를 쫓아다녔다. 하버드에서 곤충학 연구원으로 7년을 보낸 그는 분류학 연구도중 시력에 손상을 입게 됐다. 절개한 나비의 생식기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것이다. 그는 여러가지 새로운 종 및 아종을 발견해 학명에 그의 이름을 붙인 나비들도 생겨났다. 
 
앤 패디먼 <세렌티피티 수집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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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보코프의 배반당한 유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18 15:24 
    흥미로운 문학단신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나보코프의 미발표 소설이 출간됐다는 소식으로 이미 영어판은 출간됐고, 러시아어판도 표지가 뜨는 걸로 보아 출간된 듯하다. 아들 드미트리가 원고를 붙태워버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출간한 것이므로 나보코프판 '배반당한 유언'쯤 되겠다(물론 아들은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서 출간을 허락했다고 한다). 30년 넘게 스위스 은행에 보관돼 있던 원고라고 하니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호사가들의 관심사도 될 만하
 
 
Kitty 2009-11-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완전 멋져요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저는 수집가는 아니지만 이건 뭐 침이 뚝뚝;;;;;

로쟈 2009-11-1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네요.^^ 한데, <롤리타>는 왜 빠졌을까요?..

하이드 2009-11-1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나온건지, 앞으로도 안 나올지는 잘 모르겠어요. 'Enchanted'를 베이스로 롤리타를 썼다고 하던데, 그 이유일 수도 있고, 아님 마지막에 짜잔 - 나타날지도 모르겠구요. ^^ 로쟈님 페이퍼에서 나보코프 소설 새로 나온다는거 봤는데, 우리나라에선 읽을 수 있는게 너무 한정되어 있네요. 영문판은 위의 버전으로 나오면 더 사보고 싶습니다. 새로 나온 것도 함께.

키티님, 실물이 어떨까 궁금해요. 나보코프책 더 사고 싶어요!

hanicare 2009-11-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보코프같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면
나래두 '말하라 기억이여'라고 외칠 것 같더군요.
그리고 고향과 아버지를 처참하게 잃고 풍파끝에 신대륙에 와야했다면
그게 나였다면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폐인되었을텐데.
그는 대신 나비를 쫓고 글을 썼었네요.(그 지점에서 범인과 비범한 사람이 갈라지는 것일까요?)
갑자기 눈부신 나보코프의 젊은 시절 사진이 떠오르는군요.
제가 어릴 때 -안정효씨 번역 모음사(따옴표같은 로고)출판으로 기억됨-롤리타의 광고가 신문에 실렸었는데 볼 수 있는 책은 아니었고, 혼자서 그 내용을 상상하기만 했었지요.
수십년이 지나 드디어 읽어본 롤리타는-너무 늦게 배달된 연애편지같았습니다.

하이드 2009-11-1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즉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는 책이에요. 로쟈님 페이퍼 보니 내년에 '말하라, 나보코프여' 라는 평전도 나온다던데. 그 전에라도 꼭 읽어야겠어요. 나보코프 책 많이 번역되지 않았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였네요. hanicare님 글 보니 부쩍 궁금해집니다.

수땡 2010-03-0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롤리타도 나오지 않았나요?

하이드 2010-03-02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포스팅하는 시점에는 나오지 않았구요, 앞으로 나올꺼라고 했는제, 지금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