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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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등단 10년을 기념하며 2015년도에 나온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최근에 나온 신간 도서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내용도 장르도 감이 안 잡힌다. 이 작가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한 권밖에 안 읽었는데 어찌나 실망했었는지, 이 작가를 계속 봐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다행인 건지 이번엔 중박이었다. 다만 장담하건대 10년 기념 어쩌고 하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정도의 작품은 절대 아니다. 작가는 실컷 울고 웃다가 결말에 모든 재미를 뒤엎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 의도대로 각종 엔터테인먼트가 가득한 작품이긴 한데 별 여운도 남지 않고, 웃음과 감동 포인트도 찾지 못했다는 거. 소설은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문학 입문용으로 권해줄 정도는 된다. 그러나 문학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에겐 수준이 너무 낮지 않나 싶다.



라디오 DJ인 주인공은 못생긴 데다 아웃사이더이다. 단골 바에서 첫사랑을 닮은 여자가 나타나 술집 직원을 주인공으로 착각하고 호감을 표시해온다. 그녀의 환상을 지켜주려고 술집 사람들끼리 연극을 하다가 들통나서 여성팬은 뚜껑이 열린다. 열받은 그녀는 자신을 속인 술집 사람들에게 자신을 도우라며 협박한다. 자살한 아버지의 회사를 무너뜨린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그녀. 모태솔로인 주인공은 여성팬을 어이없어 하면서도 홀딱 반해서 적극 돕기로 한다. 그러나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여성팬은 그 원수에게 납치되고 만다. 주인공 일행들은 그녀를 무사히 구해내고 해피엔딩을 얻을 수 있을까.



일명 ‘찐따‘인 남주가 활발한 여주에게 휘둘리고 여기저기 사건에 얽히는 것.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스토리 아닌가? 그래서 이 책도 그런 애니메이션 같은 이미지가 그려졌다. 일본 애니의 남주를 볼 때마다 아무리 애니라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는 거 아닌가 싶은데, 소설에도 그런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일본에는 진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나 보다. 이 책도 어리바리한 남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녀의 요구대로 다 받아준다. 영상으로 볼 땐 그런 캐릭터도 그저 귀엽게 보였는데, 책으로 읽으려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닌가! 이런 작품을 읽고 있자면 라이트 노벨과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 10주년이든 50주년이든 라이트 한 일본 문학은 내게 큰 차이가 없다. 나는 영화가 소설/원작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보는 1인인데, 애니메이션만큼은 원작을 이길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도 애니화 되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일상에서 절대 불가능한 사건이나 판타지? 현실성 제로와 허구성 100%의 짬뽕 드라마? 네이버 사전에는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그 말대로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데, 그 상상력이 잘 먹힐수록 ‘이런 게 소설이지‘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런 말이 나오지 않더라. 평소에 영미소설 위주로만 읽어선지 일본 소설은 큰 재미를 못 느끼는 편인데, 나에게도 가끔은 가볍지만 호쾌하게 느껴지는 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베라는 남자‘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같은 책들. 그러면 호쾌한 소설과 라이트 한 소설을 나누는 기준이 뭘까. 나는 그것을 ‘휴머니즘‘으로 꼽는다. 스토리가 빈약해도 휴머니즘이 깃든 소설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 ‘투명 카멜레온‘도 갈피를 못 잡고 산으로 가는 듯한 흐름과, 한 여자한테 모두가 휘둘리는 억지 설정 등등, 마이너스 요소가 많지만 이 휴머니즘 때문에 대중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이 책은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다. 삼 세 판이니까 한 권만 더 읽어보자. 그것마저 실망하면 이별하는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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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조조 모예스 지음, 송은주 옮김 / 살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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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1차 세계대전, 파리의 남자들은 대부분 전쟁에 나가고, 여자들은 독일군 지배하에 살아간다. 가난한 화가의 아내인 소피가 운영하는 멋진 호텔은 독일의 점령 후로 허름한 건물이 되어버렸다. 식량도 없는데 독일군 사령관은 부하들과 호텔에서 먹을 식사를 매번 준비시켰다. 사심 갖고 들이대는 사령관에게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소피는, 독일군에게 빌붙고 프랑스를 배신했다는 이웃들의 오해를 산다. 억울함도 잠시, 남편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령관을 찾아가 남편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주면서 남편을 살려달라 사정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이 그림은 세월이 흘러 2006년 런던에 사는 리브의 손에 들어왔다. 남편을 잃고 돈도 없는 리브에게 나타난 한 남자는 그녀의 집에 걸린 소피의 초상화를 보고 기겁을 한다. 이 남자는 도난당한 미술품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소피의 가족이 초상화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리브는 정당하게 구매했으니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법정까지 가서 소유권을 두고 싸운다. 그러나 세상은 초상화를 반환하지 않는 리브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리브는 외로운 싸움 속에서 그림을 지켜낼 수 있을까.



조조 모예스는 로맨스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도 ‘미 비포 유‘와 비슷한 줄 알았는데 그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분위기다. 1부 소피의 내용만 보면 별 5개까지도 줄 수 있었는데, 2부 리브의 내용을 보면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문체도 분위기도 싹 바뀐다. 2부부터는 리브가 남편 잃고 돈도 잃고 미납금 밀려서 힘들어하는 내용뿐, 스토리는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잠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아서 분위기는 또 되게 산만하다. 그러다가 그림을 보고 태도가 돌변한 남자의 시점부터 작품의 페이스를 되찾는다. 발동이 걸리는데 꽤 오래 걸렸음. 리브는 생각한다. 다들 그림의 물질적 가치만 생각한다고. 그러나 자신은 그림 속 소피의 삶을 끝까지 지켜주는 거라고. 그림을 내어주면 소피는 조국을 배신한 여자로 평생 남는 거라고. 그러나 자신의 고집 때문에 죽은 남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어 스스로도 괴로워한다. 남편과 소피를 지켜주고 싶은데 갈수록 자신의 행동이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든다. 독자 대신 룸메가 이제 그만 버티라고 말렸지만 절대 듣지를 않더군. 어휴, 답답해서 혼났네.



현대에 와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책들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한 경우가 많다. 그것처럼 나는 이 작품을 재해석해 보았다. 먼저 리브가 법정 싸움으로 빈털터리가 되면서까지 그림을 지키는 게 과연 옳은 행동이었을까? 소피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때문에 세상에게 미움받는 것을 남편이 원할까? 이런 리브의 편을 들어줄 독자가 몇이나 될까? 솔직히 현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곁에서 도움 주던 친구마저도 결국 떠나게 만드는 리브는 너무나도 감정적이었다. 원래 사람이 멘붕 오면 이성적인 판단이 안될 수도 있는데, 리브처럼 집도 돈도 인맥도 다 잃을 정도로 분별을 못하는 건 좀 아이러니했다. 그런데 소피도 리브랑 똑같이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독일군에게 끌려가면서도, 조국에서 멀어지면서도, 탈출할 기회가 왔어도 사령관이 자기를 남편에게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목숨이 여러 번 위태로웠다. 내 눈에는 그것이 위대한 순애보인지 미련한 건지 잘 모르겠더라.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다 잘 되었지만. 



다 읽고 나니 리브의 이야기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차라리 소피의 이야기만 다뤘으면 좋았을 텐데. 2부에서 가끔씩 과거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게 훨씬 재미있었다. 나는 그림의 소유권으로 싸우는 스토리가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통 법정 소설이 아니다 보니 법정물 특유의 쫄깃쫄깃 함이 없어서 스릴도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밋밋했다. 로맨스 작가답게 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로맨스를 싹 틔워내지만 글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세 마리를 놓친 기분이 든다. 로맨스가 아니라 거의 코미디가 돼버렸드만? 글맛도 많이 잃어버린 거 같고. 여하튼 독자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냥 쏘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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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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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없이 집어 들었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신과 천사들이 인간을 어떤 식으로 돕고 세상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등 천국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일단 유쾌해서 좋다. 전 세계를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신들의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 인간미 가득한 거룩하지 않은 신과, 허당끼 있는 천사들은 인간과 별반 다른게 없다는 설정이다. 요나스 요나손 같은 병맛소설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냄새는 난다. 요즘 날씨도 우중충한데 이런 작품을 읽어줘야 우울함이 물러가지 않을까 싶다.



천사 일라이저는 인간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놀기만 하는 하느님에게 비난 아닌 비난을 했다. 인간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은 하느님은 그냥 지구를 파괴하고 천국 레스토랑 사업을 하겠다고 선포한다. 천사 일라이저와 크레이크는 쌓여있는 기도문 중 하나를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면 지구를 놔두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따낸다. 단 억지가 아닌 우연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임무를 완수해내야 한다. 많고 많은 기도문 중에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 주문서를 뽑아 임무수행에 들어간 두 천사는, 한 달 뒤 지구종말 전까지 두 사람을 데이트하게 만들어야 한다. 두 남녀는 서로 좋아하니까 다 된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건데 세상에,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것은 로또 맞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큐피드 화살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하느님은 무조건 자연스럽게 좋아하도록 만들길 원한다. 과연 두 천사는 이 남녀를 사랑하게 만들고 지구 종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제목에 약간 낚인 기분이 든다. 나는 대기업 같은 천국 안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사건들이 궁금했다. 그런 내용은 잠깐이고, 지상세계를 관장하는 내용과 두 남녀의 만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느님의 지구 파괴 선언 이후 천사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마냥 신나있다. 두 명의 천사만 빼고. 지구 종말이 본인들 탓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불타는 사명감으로 두 남녀를 에스코트하기 시작하는 두 천사. 남녀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멍석을 깔아줘도 싱겁게 헤어져서 진도가 영 나가질 않는다. 결국 종말 2일 전이 되어서야 겨우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이 나와, 남은 48시간에 승부를 걸기로 한 천사들은 몸 안에 수분이 다 말라간다. 분명 긴박한 상황인데 인간들은 그걸 모르니 분위기가 고조되지 않아 아쉽다. 그래도 상관없다. 재미있으면 됐지. ​



두 남녀를 돕는 과정에서 속출하는 주변 피해를 보고 이걸 웃어넘길지 말지 고민했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하다고 느끼면 나이 든 증거라던데, 나는 이런 유머 가득한 소설도 진지하게 읽고 있구나. 흑흑. 여하튼 간만에 코믹한 작품 읽어서 좋았다. 적당한 유머와 스피디한 전개와 신선한 소재. 쏘 굳. 연차 내고 머리 좀 식힐 때 읽으면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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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인문학 - 가장 괜찮은 삶의 단위를 말하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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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었다. 타인과 함께하는 게 당연했던 식사도 영화 감상도 노래방도 이제는 전혀 눈치 안 보고 혼자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것이 편할 것이고 옛 세대들은 적응 안 되거나 불편할 것이다. 나는 둘 다 해당되는데 옛부터 여러 명이서 어울리기보단 친한 사람 두세 명 정도가 더 편해서였다. 나는 딱히 취미가 없다. 좋아하는 독서도 하루 종일 붙잡고 지낼 정도는 아니며, 그렇다고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살지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잉여 시간이 많은 편임에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다. 유독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이러지 않나 싶다. 사회의 시스템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남들에게 일일이 맞춰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몇 년간 지속하다 보면 배터리가 쉽게 방전된다. 그래서 늘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던 사람마저도 다 내려놓고 내 편한 길을 택하게 된다. 일단 내가 그렇다. 나는 소위 착한 아이 증후군에다 친절 남이었다. 이건 가식이 아니라 천성이 그러했다. 그래서 약아빠진 친구들에게 맨날 손해만 입었고, 겁이 많아 뭔가에 도전하는 것도 어려웠고, 심지어 낯선 곳에 여행 가는 것조차 왕 부담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회 나와서 눈칫밥 먹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결혼까지 했는데도 신입처럼 똑같이 대하고 마냥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점점 주변과의 교류를 끊고 거리를 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찌나 편하던지,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를 원하는 이들의 사정은 어느 정도 비슷비슷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개인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우선인 시대가 됐다.



직장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더니 남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냐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일부러 벽을 쌓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도 어울릴 때는 얼마든지 잘 어울릴 수 있다. 내 사회성이 떨어질까 봐 걱정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암튼 오지라퍼들의 말이 완전 틀린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일과 독서와 소통의 균형을 잘 잡고 사니까 괜찮다. 차라리 책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도 하던데, 그것도 저자의 말대로 혼자 하는 플레이가 아니면 해당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왜 책을 많이 읽는가? 독서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몸 밖으로 표현하는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도, 노래하는 가수도, 연기하는 배우도, 곡 쓰는 작곡가나 춤추는 댄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보여주려면 꾸준하게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건 내면의 나와 마주하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는데, 그러면 이 현대사회 속에서 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제일 간단하고 효과적인 게 독서다. 가벼운 이미지의 예능인들도 사실은 엄청나게 책을 읽는다. 독서가 습관화되면 그동안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은 신분상승이 전부가 아니며, 물질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며, 천하를 얻고도 허무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뭐든지 과잉 관계가 문제라고 작가는 말한다. 타인과의 결합에서 개인의 의미가 존중되지 못할수록 혼자를 선호하게 된다는 뜻이다. 팀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할 때도 있지만 특정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희생이 요구되면 인간은 서서히 지쳐간다. 현대사회는 관계를 많이 맺을수록 고립감은 더욱 깊어진다. 한국인은 타인지향형이 많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남이 보는 기준에 나를 맞춘다는 것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개인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다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독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은 진짜 자신을 만났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기준을 두는 법도 알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장점들이 많은데 혼족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현대 사상가가 강조한 ‘개인일 때 유지될 수 있는 도덕성‘을 살펴보면, 개인보다 집단일 때 비도덕적인 판단과 행위가 높다고 한다. 집단은 쉽게 이기적인 충동이 생기며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이 결여된다. 나는 이 말에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떠오른다. 그곳의 유저들은 뭐든지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무조건 옳고 그름만 따지고, 한 명의 주장이 댓글로 달리면 너도나도 맞는다고 공감하며 추가 댓글이 달린다. 얼핏 보면 각자가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타인 지향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절대 자신을 찾지도 나타내지도 못한다. 혼자일 때는 멀쩡하던 정상적인 사고가, 집단에 속했을 때에는 판단이나 분별력이 흐려지기 쉽다. 저자는 여행, 독서 등 혼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면적 성찰의 계기를 잡으라고 말한다.



남녀 할 것 없이 개인화를 주장하지만, 혼족은 자유를 억압받는 여성들이 더 원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할 것이 남성보다 더 많다는 것에 동의한다. 여성들이 비혼을 선호하게 된 것도 넓게 보면 다 남성들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여자들이 설 곳을 주지 않았고, 여성인권을 무력으로 짓밟고 차별하기 때문에, 이제는 남성들이 저질러온 대가를 고스란히 치러야 한다. 난 여자 없이 잘만 사는데?라고 하는 남성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인간이다. 혼족 문화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자는 게 아니다. 이기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잘못 읽은 거다. 차라리 게이가 되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단순 사회생활뿐만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알아가는 단계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지만, 편해졌다고 느끼면 잘 보이려고 하기는커녕 상처될 말도 필터 없이 나가곤 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객관화된 사고방식이 가능하고, 독립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성숙해진다고 말한다. 이 내용을 허지웅의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저자도 같은 말을 하는군. 먼저는 개인의 독립성과 존중성을 갖추어야 건강한 집단적 사고와 경향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혼족 문화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를 바꾸는 데에 있어서 필수가 되고 있다. 나의 부모님만 해도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젊은 세대들을 존중하려고 하신다. 미약하나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대한민국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예전에 방송에서 정형돈이 한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5천만 국민이라면, 5천만 가지의 성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나마 전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적잖은 위로를 주었었다. 그 말이 실현되려면 개인의 행복부터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나의 행복에 타인의 간섭이 너무 많다. 오죽했으면 ‘소확행‘이란 말로,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시대가 돼버렸는가. 그것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라는 말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사회가 언젠가는 더 나은 행복의 질을 가져오리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매년 감소하는 결혼율, 출산율, 취업률도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중국인 전체가 동시에 점프하면 지진이 난다고 한다. 그것처럼 모두가 개인의 삶을 존중하자는 생각에 동의하고 동참할 때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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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9-03-11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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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3-11 16:48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지내시죠?ㅎㅎ
공감된다니 좋으면서도 씁쓸하군요^^;

바카나 2019-03-16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

물감 2019-03-16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navel_nerine 2019-03-18 0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페미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감 2019-03-18 09:22   좋아요 0 | URL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과, 개인적인 생각을 기록한것 뿐입니다. 여하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9-03-19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혼족 문화가 번성할 것 같습니다. 졸혼도 그 경우죠. 저는 그동안 여성들이 너무 참아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이혼율이 증가한 것도 여성들이 너무 참고만 살다가 이젠 참지 않기로 했다, 로 해석합니다. 확실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불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맞습니다.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여성보다 남성을 더 많이 뽑는 경향이 있어요. 취업이라는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여성은 불리한 조건에 있습니다.

물감 2019-03-19 19:15   좋아요 1 | URL
저는 선동질하는 댓글부대들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간혹 사회에서 문제되는 행동하는 여성 한 명만 나오면, 이때다 싶어서 남녀를 가르고 선동질하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구요. 그들이 있는한 남자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요. 걱정입니다...
 
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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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뷰 쓰기도 어렵고 줄거리 요약도 힘들다. 그리고 뒤표지에 찬사가 가득한 작품은 역시 기대하지 말아야 함. 나랑 안 맞는 작품을 만나면 리뷰마저 시들시들해지나 보다. 뭔가 의욕이 상실됨. 아오 그냥 다 별로야. 나는 이 작품 반댈세. 그러나 남들은 잘만 읽었다는 사실이 나를 쭈구리로 만들어버림.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뇌종양에 걸린 주인공은 머리에 총 쏴서 자살하려는 중이다. 그때 등장한 X맨이 이왕 죽을 거 청부 살인 좀 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 제안에 따라 살인범을 죽이고 이어서 사업가도 죽였는데, 알고 보니 사업가는 죽여선 안될 사람이었다. 그리고 눈 떠보니 꿈에서 겪은 일이 현실에서 그대로 되풀이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X맨을 믿지 않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따로 사업가를 찾아가 들은 말이, 그 X맨이 널 속인 거라고 한다. 이후 또 꿈에서 깨어나 보니 살인범이 죽어있었고, X맨은 자신이 죽도록 패서 입원한 상태였다. 결국 강제로 정신 병동에 입원되었는데 심리치료사는 주인공이 입원한 지 7개월이나 지났다고 한다. 물론 주인공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의사 말로는 그의 특정 기간 기억이 반복되고 있단다. 자신이 본 환상들은 모두 허상이 아니라 실제를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기억들이 단절돼있어 자신의 살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이 안된다. 이 난해한 환상 가운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종결할 수 있을까.



책 뒤표지에 실린 몇 줄의 문구가 진짜 사기급이다. 뒤 내용만 보면 엄청 재미있는 플롯이 연상된다. 그러나 읽어보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떤 조직이 주인공을 살인에 가담시키고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정신병 환자의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병원에 입원되기 전까지만 흥미로웠다. 솔직히 그다음부터는 뭔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몽환적인 느낌도 강하고, SF 소설처럼 가상세계에 대한 내용 같기도 하고, 주인공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비중이 더 많은, 뭔가 줏대 없는 소설이었다. 아니면 내가 제대로 못 읽은 걸수도 있고. 이해 안 되는 게 많아서 다른 리뷰들을 유독 많이 읽었는데 다들 지루함과 혼란함을 느끼셨더군. 난 내가 너무 영미소설에 익숙해져서 그런 줄 알았지.



후반에는 갑자기 기억이 돌아온 건지 주인공 태도가 급변한다. 그동안 죽인 사람들도 전부 시인하고, 멀쩡한 표정으로 자기를 죽여달라는 등 전혀 딴 사람이 돼버린다. 작가는 갈수록 주인공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이쯤에서 1차 실망을 한번 하고, 이후에 진짜 범인이 밝혀져 2차 실망을 하고, 에필로그에서 3차 실망을 하게 된다. 마지막 챕터에서 반전을 차례차례 때리는데 그것만 신경 쓰느라 정작 필요한 설명은 부실했다. 환상에 등장하는 주머니쥐의 정체도 모르겠고, 전혀 복선이 없던 사람을 갑자기 범인으로 세운 이유도 모르겠고, 특히 주인공이 미쳐버린 것은 폭력적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는 추측 정도만 가능했지, 납득될 정도의 설명이 없었다. 그냥 전부다 생뚱맞고 시간만 날린 느낌이다. 이런 정신없는 소설을 대하는 독자의 유형은 두 가지이다. 어떻게든 이 혼돈을 이겨내려고 하는 자와, 나처럼 끈을 놓고 그냥 읽는 자. 이해가 어려운 작품도 얻을게 많다면 나도 죽기 살기로 읽을 마음은 있다. 그러나 가성비(?)가 맞지 않으면 뇌의 칼로리를 무리하게 태우고 싶진 않다.


음, 당분간은 얇은 책을 좀 읽어야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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