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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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한때 유명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랬지만, 출소 전날에 탈옥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엄청난 내러티브 때문이기도 했다. 거장 스티븐 킹은 요즘 웬만한 작품마다 칭찬을 해대서 신뢰감이 확 떨어졌지만, 이 작가에 대한 칭찬은 나도 격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일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과 큰 차이는 없지만 타 작가에 비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랄까? 그래서 세련된 스릴러를 쓴다는 이미지를 가진 작가로 각인되었다. 이번에는 늘 집필하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을 쓰셨는데, 총평은 그냥 그랬다. 시리즈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은 유독 스탠드얼론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호랑이에서 재규어급으로 떨어졌다 한들 맹수는 맹수이다. 이전 작품들보다는 많이 약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주인공은 10년 전에 700만 달러를 훔치고 살인한 강도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10년이라는 복역을 마치고 내일이 출소일인데 그는 석방 전날에 탈옥을 했다. 이유는 주연들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세상은 이 빅뉴스에 긴장 타기 시작했다. 한편 탈옥수의 소식을 들은 상원 의원과 측근들은 주인공을 잡아 감방에 넣기 위해 힘을 모은다. 죄수가 탈옥했으니 경찰들이 잡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주인공을 완전 유죄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은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 그들은 10년 전 강도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탈옥한 이유와 그를 쫓는 경찰들의 진실은 무엇인가.



요약한 내용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되게 정신없었다. 로보텀 답지 않게 지저분한 플롯이었다고 생각한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쓰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불필요한 설명도, 자잘한 이슈도 너무 많았다. 물론 나중엔 하나로 엮었지만 그 많은 내용들이 주인공의 도주 내용과 큰 연관이 없다고 할까,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일단 주인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주인공과 친했던 죄수가 석방되어 주인공을 쫓는 것과, 10년 전 강도 사건의 담당 경관이 주인공을 좇는 것. 그리고 그 경관과 함께 움직이는 FBI 요원.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다들 탈옥수를 잡으려고 우왕좌왕하여 읽는 입장에서는 혼잡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걸 노린 거라면 정말이지 대성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인공은 과거 자신이 모셨던 보스의 정부를 사랑하게 되었고, 밀회하다 들켜서 반죽음 상태로 쫓겨났었다. 그런데도 여자를 잊지 못해 계속 쫓아다녔다.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남자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거니까, 이런 순정파 캐릭터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선 가, 세상 때가 너무 많이 묻어선 가, 주인공이 너무 매력 없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리는 남자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와닿지도 않고, 이런 하드보일드 작품에는 더욱 안 어울리는 설정 같았다. 아무튼 별로야. 게다가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탈옥하고도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장면만 나와서 미친 듯이 답답했음. 독자를 숨 막혀 죽게 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 두꺼운 분량이 대부분 탈옥수를 잡으려는 내용뿐이고, 주인공이 왜 탈옥한 건지 설명이 없어서 결국 체념하고 읽었다. 조금은 감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런 건 없고, 주인공을 쫓는 자들과, 엮여서 피 보는 사람들의 내용을 더 중하게 다룬다. 증발한 700만 달러의 행방은 아예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것도 말을 안 해주니까. 가끔씩 10년 전 내용들이 나오곤 하지만 이게 현재와 별 연관도 없어 보여 그냥저냥 읽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팬심으로, 의리로 읽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이 더 별로 인건 탈옥을 한 뒤로 현재 장면보다 과거 내용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거 설명은 필요하다. 주인공에 대해서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과거에만 할애해서 현재에는 ‘탈옥했다‘가 전부이다. 탈옥 후에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작가가 사건과 스토리보다는 캐릭터 설정에만 정성을 쏟아서 읽을수록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라 답답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예비군들이 현역 시절 자랑할 때 엄청 뻥튀기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거. 그런 건 사실 내용이 재밌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말빨이 재밌는 거지. 이 책도 똑같았다. 내내 답답하다가 마지막에 반전 한방 터뜨리고 끝나는 작품들은 이제 질렸다. 게다가 이 책의 반전은 반전 축에도 못 꼈음. 스탠드얼론은 더욱 분발해주세요, 로보텀 슨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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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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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간만에 골 때리는 작품을 만났다. 오쿠다 히데오와 천명관의 스타일이 섞인 듯한 문체와 분위기의 병맛 소설이다. 나 이런 거 짱 좋아함. 대놓고 B급으로 나가는 요나스 요나손 스타일도 좋지만, 이렇게 은근 B급스러운 스타일도 완전 사랑한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세상을 바꾸는 건 또라이들이라고 한다. 이 작가도 (좋은 의미의)또라이가 확실하다. 이런 분이라면 한국 문학계를 움직이고 흔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의 많은 책들이 ‘나쁘지 않다‘였다면 이 책은 ‘좋았다‘라는 쪽에 가깝다. 재밌는 건 희망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인데 자꾸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을 쓰신다면 앞으로 나올 모든 책들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 역시 첫 단추가 중요하다.



봉고차로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주인공은 만화방의 두 할배에게 찍혀서 부산까지 모셔드리기로 한다. 가출한 일진 여학생도 함께 말이다. 나사 빠진 세 사람을 상대하며 간신히 부산에 도착했는데, 할배들과 만나기로 한 사람은 연락이 안 된다. 맙소사. 그리고 주인공이 여학생과 노인을 납치했다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다. 맙소사. 그런데 세 사람은 본인들을 안 도와주면 납치된 거라고 경찰에 거짓 발언을 할 작정이다. 맙소사.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노예 역할을 하지만, 대화가 안 통하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한 명은 주기적으로 치매 증상이 오고, 한 명은 주기적으로 경련을 일으킨다. 어쩌다가 한 팀이 된 이들은 열심히 지방 순회를 하며 산전 수전을 다 겪게 된다. 상식 밖의 일들을 연속으로 맞닥뜨리는 주인공은 언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놔, 이거 진짜 너무 웃기네. 간만에 실컷 웃은 것 같다. 병맛 소설은 나름 많이 읽었지만 대부분 ‘피식‘ 정도였지 ‘낄낄‘까지는 아니었다. 근데 이 책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본좌가 느끼는 바 B급 문학은 막장드라마와 엄연히 다르고 다르다. 일반적인 B급 문학은 코미디 장면이 나와도 진지함을 유지하는데 이 작가는 진지하지 않아서 더 웃기다. 본 작품은 안 맞는 사람들과 공동운명체로 결속돼가는 과정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보통 목적이 달라도 방향이 같아서 한 배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공동의 방향도 목표도 없이 하나가 된다. 물론 고생은 주인공이 다 하고 있다. 마치 ‘정글의 법칙‘에서 막내 혼자 집 짓고 사냥하고 뒷정리하는 느낌이랄까. 여하간 엄청 수고한다.



두 노인은 과거 월남전 병사 출신이었다. 베트남의 수이진이란 곳에서 만난 여인에게 둘 다 마음을 뺏겼었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가 이후 그 지역에 베트콩들이 잠적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한국군이 수이진을 불살라버렸다. 베트남 여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두 사람은 노인이 될 때까지 지내다가 죽기 전에 수이진을 가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두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 꼴인 주인공의 심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독자들이 위로해주자.



작가는 단 하루의 시간만으로도 평생을 견뎌낼 수 있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도 노인들처럼 전장 한가운데 있는 낙원에서 보낸 단 하루의 추억으로 평생을 버틴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노인들이야말로 진정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고통받는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어떠한 목적을 이루거나 사건이 해결되는 스토리는 아니다. 그냥 왁자지껄한 해프닝 정도? 절반쯤 읽다가 느낀 건데 작가가 스토리를 미리 짜놓고 쓴 게 아니라, 일단 문제를 만들고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의 느낌을 받았다. 녹화 방송보다는 생방송 느낌? 현장감 있는 건 좋지만 정신없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숨기질 못한다. 그래도 워낙 재밌어서 단점이 다 커버된다. 또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글이야말로 오래오래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고전문학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자, 어서 차기작을 만들어주세요, 작가님!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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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 전쟁 - 본격치과담합리얼스릴러
고광욱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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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이런 게 바로 오리지널 코리아 스릴러다! 하고 외국인들한테 보여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국가 망신 당할까 봐 겁나는 리얼 팩션 작품이다. 전 국민이 궁금해하는 비싼 치과 비용에 대한 이유를 알리기 위해 현역 치과의사가 소설을 펴냈다. 본인도 의사면서 같은 업계의 비리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고발해도 괜찮은 걸까? 비록 허구라지만 현실에 전혀 없는 사실은 아닐 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저자가 걱정되었다. 물론 작품 속 주인공처럼 난 그딴 거 겁 안 난다! 하시겠지만 말이다. 초반에는 이게 무슨 스릴러냐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왜 스릴러인지 알겠더라. 정말로 치과의사들은 본인 밥그릇만 챙기느라 돈 없고 가난한 환자들은 어찌 되든 상관없어할까? 수차례 충격을 먹어서 이게 소설인지 실화인지 분간이 안되고 있다. 길지 않으니까 다들 꼭 읽어봤으면 한다.



소설 속 치과협회에서는 10만 원이면 되는 임플란트 비용을 200만 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제 막 치과를 개원한 주인공은 100만 원으로 임플란트를 치료해주었다. 기존 의사들은 주인공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협회에서 담합한 진료비용 및 정책대로 하지 않는 의사와 병원을 일명 ‘덤핑 치과‘로 분류하고 조직적으로 왕따를 시킨다. 치과협회는 치기공협회를 갑질하여 왕따들에게 재료 납품을 중단 시켰다. 또한 덤핑 치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압박을 주어 하나둘씩 일을 그만두게 한다. 직원도 부족하고, 재료 부족으로 치료도 못하니 자연스레 환자가 끊기면서 병원장의 밥줄도 끊어진다. 갈수록 치졸하게 괴롭히는 협회로 인해 정직한 의사의 선택은 이 바닥을 뜨거나, 무릎 꿇고 용서를 빌거나 둘 중 하나였다. 협회에게 갑질을 당하는 주인공은 변호사 친구와 기자 친구의 손을 잡고 치과협회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과연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힘이란 참 무섭다. 진실도 정의도 양심도 권력 앞에서 다 소용이 없다. 있는 놈들이 더하단 말처럼, 배운 것들이 더 저질스러움을 보여주는 책이다. 치대생들은 졸업반 때에도 담합을 한다. 최종 국가시험을 앞두고 학생회에서 최대한의 점수를 정해준다. 이 상한선을 넘길 시 불이익을 당하게 만든다. 서로 경쟁하지 말고 다 같이 안전빵으로 졸업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학교에서부터 시작된 담합 전통은 훗날에 병원을 차린 뒤에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학생 때는 최대 점수를 어기는 게 금지였고, 현역 때는 최소 가격을 어기는 게 금지였다. 주인공은 임플란트의 가격을 어김으로써 치과협회의 배신자가 되었다. 다 같이 잘 사는 길을 두고 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뜻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의사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일까.



저자는 유디치과 대표이다. 나도 유디치과 싸서 좋아했는데, 반대로 주변에는 싸니까 꺼림칙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참 이상했다. 잘만 치료하던데 뭐가 문제일까. 왜 다들 돈 없다면서 비싸기로 유명한 치과만 찾아가는 걸까. 그런 사람들이 원가를 알게 되면 얼마나 비참할까. 지금은 임플란트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지만, 그 가격으로 두세 개만 치료해도 부담은 여전히 크다. 그래서 저자는 지난 10년의 치과 인생 동안 협회의 담합과 수많은 비리에 맞서싸워왔다. 이 작품이 나온 이후 대한 치과의사협회에서는 저자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비판하기에 나섰다. 그러나 기사 내용에 나오는 협회의 주장과 변론은 그닥 신뢰가 가질 않는다. 지금도 본인들의 구겨진 이미지 회복에만 신경 쓰고 있지, 환자들을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아프지도 말처럼도 들리는군. 돈 많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뼈를 때리는 팩트가 되어버렸다. 돈 잘 번다는 의사들도 돈 없다고 찡찡 거린다면, 그보다도 못한 직장인과 근로자들은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491550
(대한치과의사협회 이재윤 홍보이사의 라디오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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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5
벤 엘튼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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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명의 용의자를 다루는 작품을 공부하기 위해 집어 든 책이다. 오래전부터 눈여겨보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그동안 인물이 많았던 작품은 캐릭터만 신경 써서 스토리가 빈약해지거나 혹은 그 반대이거나 한 경우가 많았다. 그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이 작품은 전혀 다른 추리 패턴이라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선해서 좋았다. 역시 RHK는 평타 이상 치는 소설이 많다. 이 책은 제목처럼 엿보는 기분으로 읽는 맛이 있다. 문틈 사이로 몰래 훔쳐보는 재미까지는 아니고 CCTV 모니터를 보는 기분 정도는 들 것이다.



리얼리티 동거 프로그램에 남녀 10명이 참가한다. 총 9주 동안의 합숙 생활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한 명이 우승 상금을 가져간다. 매주 TV 방송을 통하여 시청자에 의해 탈락자가 한 명씩 지정된다. 참가자들이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모습을 보여줄수록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그러나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이 정신 나간 쇼에 완전히 미쳐있다. 그 때문에 방송은 멈춤 없이 계속 진행되고 열기는 점점 달아오른다. 반면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피해 교묘하게 살해한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경찰들은 촬영된 모든 영상 파일을 모니터링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며 범행 방법과 살인 동기는 무엇인가. 정년퇴직을 앞둔 담당 경찰은 그동안의 짬을 다 토해내서라도 이 수수께끼를 풀어내야만 한다. 이건 뭐, 말년에 유격 훈련하는 꼴이다... 어휴.



동거를 시작한 지 2주 밖에 안됐는데 살인 사건이라니, 어딘가 말이 안 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 짧은 기간 안에 살인할 정도로 증오가 생겨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작가는 참가자들이 피해자에게 악감정을 갖도록 설계했다. 그렇게 참가자 모두가 용의선상에 오르도록 만들었고, 전부 의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런 이유로 살인 감정을 갖는다는 게 말이 되냐‘ 싶은 사람도 몇몇 있었는데 나중에 각자의 속 사정이 자세하게 나와서 억지스럽던 흐름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보통 용의자가 많은 추리물에서는 각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진실의 유무를 가려내고, 살인 동기를 찾는 게 순서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미 알리바이도 동기도 다 드러나 있어서 어떻게 추리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대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짐작조차 안되는 구성은 훌륭했으나, 절반 분량을 차지하는 경찰들의 모니터링 내용은 초반부터 지루했다. 스튜핏.



제작진은 모든 용의자들이 어느 정도는 각본대로 움직여지고 있다고 경찰에게 말했다. 그니까 아무리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찍는 리얼리티라 해도 약간은 짜고 치는 건 맞는다는 말이다. 티 안 나게 일명 악마의 편집으로 방송에 내보냈을 뿐. 그렇다면 편집되지 않은 촬영 원본 파일에는 살인에 대한 단서가 담겨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런 게 없었다. 작가는 이렇게 허점이 없는 상황을 계속 연출함으로써 독자들을 속인다. 알다시피 방송이란 다 짜고 치는 것인데, 다 읽고 나니 방송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독자는 읽는 내내 자기가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됬을 때 반응은 둘 중 하나다. 화가 나던가, 감탄이 나오던가. 아무튼 벤 엘튼의 쇼는 책 안에서나 책 밖에서나 계속되어야 한다.



돈에 미친 제작진 대표는 살인사건 이후로도 어떻게든 남은 참가자들을 동거하도록 설득했고, 이를 비난하는 언론과도 1대 100으로 싸웠다. 그만큼 제작진 대표는 확신에 찬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이 쇼가 계속 진행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길고 길었던 합숙이 끝나는 날에 최종 우승자가 발표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프로그램은 나름 괜찮은 성공 기록을 거두었다. 그때 전 세계 촬영기자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담당 형사가 살인범을 공개 지목한다. 이로써 전무후무한 지상 최대의 쇼는 막을 내렸지만, 생각만큼 빅 스케일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왜 사건 담당을 하필 은퇴 직전의 노장 형사로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끝에 가서야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스케일이 큰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하드웨어만 신경 쓰고 소프트웨어는 부실하기 때문인데, 이 작품 정도면 그래도 밸런스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 떠나서 누구나 속을 수밖에 없는 플롯을 만든 것 자체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짜라 짜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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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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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나도 작품을 쓰고 있는데 내 글이 인간의 심리를 다뤄야 하는 내용이 꽤 많아서 심리 스릴러 작품으로 공부하는 중이다. 책을 재미로 읽을 때와, 리뷰를 쓰기 위해 읽을 때와, 공부를 하며 읽을 때의 독서는 천지차이임을 요즘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스릴러 장르에서 보이는 심리의 묘미는 과거에서부터 심어져있던 고통과 불안의 씨앗이 점점 자라서 현실과 부딪혔을 때라야 날 것 그대로의 맛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스릴러소설의 주연들은 과거 상처에 매여있는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알면 캐릭터들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책은 주인공의 일인칭 소설로써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목처럼 자매에 대한 내용으로써, 아픔과 연민이 가득한 언니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영국 작가의 여성 세계를 들여다본다.



여동생이 실종되었다. 주인공인 언니와 떨어져 살지만 매일매일 연락하는 친한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실종신고 접수 후 수사 과정에서 동생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최근에 사산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자신과 그렇게 친했는데도 이런 사실을 숨겨온 동생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동생을 찾았으나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한 상태였다. 모든 정황이 너무 확실하여 수사는 종결되었다. 언니는 동생이 절대 자살할 리 없다고 주장해보지만 모든 증거는 자살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주인공의 말을 듣지 않는 가운데 어떻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본 작품은 주인공인 언니의 시점만을 기록하여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일인칭 소설은 화자의 말 외에는 타인의 입장이나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면이 있다. 그 모든 말들에 참과 거짓의 판단 여부도 확인이 어렵다.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점이 많은데 이게 또 일일이 다 신경 쓰다간 독자가 질려버리게 된다. 그 균형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던지 이 작가도 썩 소화해내지는 못한 느낌이다. 이제 생각해보니까 유명한 일인칭소설들은 작가의 내공이 어마어마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이 책은 동생의 실종을 알리고 찾는 과정까지는 현재진행형인데, 동생이 발견된 후로는 과거 회상형이 되었다. 이미 죽었는데도 계속 동생한테 말을 거는 그 모습이 납골당에서 사진 속 고인에게 끝없이 주절주절 하는 것과도 같아서, 이제는 그만하라고 해주고 싶지만 차마 말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런데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보다 남아있는 자신과 가족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내용이 더 많아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아 내심 답답했다. 그래도 이 답답한 구간만 견뎌내면 나름 읽을만하다. 그 구간이 좀 길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언니는 동생 없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부터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동생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남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고스란히 아픔을 안겨주었다. 항상 지지해주던 예비 남편도 떠나버리게 할 만큼 주인공은 동생 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서 누구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동생 없는 자신은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말에, 이 얼마나 자존감 바닥치는 인생인지 참 안쓰러웠다. 어릴 적 남동생을 잃었고, 아버지가 집을 떠나버린 이런 배경들은 살짝만 건드려도 주인공을 무너지게 했다. 트라우마는 행복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바꾸어놓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좁아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동생을 잃고 미쳐버린 언니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당연했다. 그런데 너무 과한 나머지 감정 이입은 되지 않았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떤 만화작가의 인터뷰가 잠깐 생각나는데, 독자들이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거나, 서브 주인공을 더 좋아하게 되는 작품은 흥행했어도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 책은 과연 어느 쪽일지...



진실의 조각이 발견될수록 주인공은 점점 더 흥분하는데 나는 오히려 건조하게 읽었다. 그래서 작가에게 미안했다. 주인공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과 나의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이게 다 독특한 플롯 방식 때문이다. 마침내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미 다 지난 일들을 들려주는 거라서 재미가 반감된다. 아무리 생생하게 말해줘도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흥분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어투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절대 파도가 몰아치는 법이 없다. 이런 것도 모던 스릴러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장르의 타이틀이 없었다면 아주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문학으로 남았을 텐데.



그나마 평타 치던 점수가 마무리 때문에 뚝 떨어져 버렸다. 주인공이 범인에게 묶이고 감금을 당하는데, 범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웃들이 찾아와 발견하고 끝났다. 응? 범인은 어떻게 됐다는 내용이 없다. 나름 빅 스케일의 범죄를 꾸미고 있었잖아? 근데 아무 설명 없이 이대로 끝내버린다고? 느낌상 후속편이 나올 것도 아니고, 갑자기 분위기만 싸해졌다. 예전 같으면 뭐 이따구야! 할 텐데, 이번엔 공부를 위해 읽은 거라서 생각보다 무난하게 읽었다. 뭔가 아량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참 기분 묘하군. 공부할 책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아이고,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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