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를 출간한 정용준 작가에게 독자가 물었습니다.

정용준 작가의 답을 소개합니다.


2016년 오늘의 젊은 작가들 : 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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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소설을 왜 읽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읽은 소설중 소유하고 싶은 문장은 무엇입니까? 


소설을 읽는 이유는 각각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미가 단순한 의미의 ‘funny’는 아닙니다. ‘소설적인 재미’는 독자마다 혹은 소설을 정의하는 각자의 방식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도 소설을 억지로 읽어주지 않습니다. 그 말은 소설은 스스로 재미있지 않으면, 매력적이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저는 소설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읽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 정신과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와 함께 어울리며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소설을 읽고 싶게 만듭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중 소유하고 싶은 문장은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 중 한 문장입니다. “사랑하죠, 오늘도.” 아....... 좋았어요.  




소설을 언제 처음 써보셨나요? 학부를 러시아어과를 나왔는데 어떻게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는지, 부모님의 반대가 있으셨는지, 소설가가 된후로 부모님의 반응이 어떠셨는지 소설을 쓰겠다는 계기가 있으셨는지, 그리고 그 글쓰는 재능을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은 스물여섯에 처음 써봤습니다. 정말 끝내주게 형편없는 소설이었는데 그것을 알기 전까진 행복했어요. 태어나서 뭔가를 창작해본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죠. 러시아어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흥미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소설은 달랐습니다. 계속 쓰고 싶었고 더 잘 쓰고 싶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문학 수업을 듣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부모님이 딱히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결코 환영하지도 않으셨어요. 다만 좀 걱정하셨습니다. 지금은 좋아하십니다. 글쓰는 재능이 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계속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그 곁에 가고 싶다. 이런 이상한 기분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소설을 계속 썼던 것 같아요. 욕망과 호기심. 이게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죠.   




읽으셨던 소설 중, 혹시 꼭 한번은 이와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 있으신가요? 


그런 소설은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습니다.  




독자들이 작가님 소설을 통해 무엇을 얻었으면 하는지? 궁금하네요.


뭔가를 얻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물론 제 소설을 통해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소설은 즉각적으로 응용하거나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실용적인 글은 아닙니다. 하지만 독서가 끝나고 남는 감각이나 정체불명의 느낌 같은 것은 있겠죠. 그것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원하기는 재미있었으면 합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 사람의 사유와 감각의 일부가 되길 바랍니다.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듯, 뭔가를 만지고 손끝이 영원히 기억하는 감각처럼, 그렇게 남았으면 합니다.    




집필하는 과정 속에서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해요.


‘슬럼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그냥 다 슬럼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글쓰기는 한 번도 편하게 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슬럼프가 오는 그 자체를 당연한 상태로 받아들이면서 나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넘어갈 수조차 없이 강하게 올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땐 목욕탕에 갑니다. 온탕에 앉아 아아…… 하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지인에게 책 선물할 때 꼭 포함하는 작가가 있는지요? 


사람에 따라 선물하는 책도 달라집니다. 저는 책을 일종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서로 잘 맞을지 생각하곤 합니다. 때문에 책을 선물하거나 추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요. 읽으면 무조건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선물하는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고 어떤 감각을 선물해주고 싶을 땐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이나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가 있다면 꼭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선물해요.




지금까지 작가나 지인들의 서재를 많이 방문해보셨을텐데요, 그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서재와 그 이유도 알고 싶습니다.


이준규 시인의 서재입니다. 그 앞에 앉아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습니다. 시인은 종종 이 책 저 책 뽑아 펼쳐 보이며 책을 소개해주거나 그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때론 책을 선물로 주곤 했는데 나중엔 책을 줬던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시치미를 떼고 그 책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서재 앞에 아이처럼 웅크리고 잠들곤 했는데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은 그에게 선물 받은 책과 함께 저에게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님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용기의 말을 전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소설을 쓰는 것은, 소설을 읽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일은 아니지만 꽤 근사한 일입니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그것이 직업으로서도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만 소설을 쓰며 사는 삶은 그 어떤 방식의 삶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소설을 쓰며 사는 이 삶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아! 그리고 소설은 쓰면 쓸수록 늡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읽으세요.




작가님도 `말더듬증`이 있으시다고 어느 글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여러 작품에서도 `말더듬` 이 등장 하는구나 하고 느꼈는데요. 저도 말을 더듬는데 작가님은 말이 안 나올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네. 말을 더듬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는데 지금까지도 더듬어요. 물론 어릴 때처럼 많이, 항상, 더듬지는 않습니다. 살면서 대처법을 터득했어요.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자신이 말을 더듬을 줄 압니다. 주로 첫음절이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땐 첫음절을 길게 빼서 발음하거나 단어 자체를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령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려고 했는데 더듬을 것 같으면 ‘마더’라고 살짝 바꿔서 말하거나 문장을 도치시켜 첫 문장을 바꾸는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 학교에 갔어요’를 ‘학교에 갔어요, 오늘’ 이런 식으로 말이죠. 지금은 이런 방법으로 말을 더듬는 것을 많이 감추고 삽니다. 하지만 말할 때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어요. 그래서 가족들 앞에서는 많이 더듬습니다. 그들은 말을 더듬어도 놀리지 않기 때문에 더듬어도 그냥 하고픈 말을 합니다.     




창작자에게 있어 작품을 만드는 소재는 그가 가지고 있는 관심의 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요즘 제 관심을 끄는 것은 잠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물들의 긴 잠. 동물로 따지면 동면 같은 것이에요. 그리고 바다 깊은 곳에 무엇이 있을까? 그곳에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이런 생각하면서 반쯤은 멍하게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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