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 김근 지음 / 2014년 7월 21일 발행


글로리 홀 / 김현 지음 / 2014년 7월 31일 발행


   1973년생 시인은 세 권의 시집을 엮었다. 평론가 송종원의 말대로 김근의 시집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의 어디를 펼쳐도 우리는 '기이한 영상'을 만나게 된다. 시인 스스로가 고백하듯 ("자주 길을 잃었다 / 자주 나는 울었던가. 다시 읽으러 간다. / 가고 가고 가는 수밖에." 시인의 말 中) 불길함을 내포한 단어가 시의 안을 서성댄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연약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시. 


혹 그대가 아니었나 몰라 어젯밤 어두운 벌판에서 베었던 수많은 꽃모가지들 아무리 칼을 놀려 베어도 잘린 그 자리에 끝없이 돋아 피던 그 밤의 꽃들이 실은 그대가 아니었나 몰라 (...) 지난 밤 벌판에서는 벌거숭이로 낯선 짐승 한 마리가 실은 꽃을 지어뜯으며 먹고 먹다 토하고 토하고 다시 먹고 하였던 것인데 정녕, 아니었나 몰라, 그 붉음이, 실은, 그대가, 자꾸 부스러지는 공기의 지층 위 그대라는 달콤하고 슬픈 종족이 새겨놓은 희미한 암각화에 홀려 나도 짐승도 꽃모가지도 바람도 벌판도 가득 붉어지지는 않았는지, 몰라,

(허허 中)

시는 애절함을 무협서사의 외피에 담아 표현해낸다. 수많은 무협소설에서 부모의 원수를 베듯, 그렇게 처단한 꽃모가지 같은 사랑. 흐드러져 떨어저 휘날리는 붉은 그대의 이미지. 풍성한 감각의 서사가 시 한 편을 오래 붙들고 있게 한다.




1980년생 시인은 등단하며 "세상에 없을 수밖에 없는 시를 쓰겠다." 라고 마음먹었다. '없을 수 밖에 없는' 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김현이 엮은 첫 시집 <글로리홀>은 이 시집의 해설처럼 시집, 소설집, SF, 포르노그래피, 하드코어 야오이물, 팬픽, 비트 혹은 히피의 경계를 넘나든다. 대중문화의 영상문법이 일상적으로 인용되고, 수많은 각주와 인용, 맥락이 하이퍼텍스트로 작용한다. '씨발'이 아닌 '퍽'을 외치는 무국적의 소년들. 이들이 선보이는 난폭함과 현란함. 쉬이 읽히진 않지만, 쉬이 잊히지도 않는다.


일렬횡대로 젖은 운동장을 행군해 오는 두꺼비 떼의 구령에 맞춰, 녀석은 힘껏 달렸네. 나는 녀석의 반짝이는 드리블을 떠올렸지. 골을 넣을 때마다 퍽을 내뱉던 입술은 퍽 신비로웠어. 침으로 범벅이 된 감정은 부드럽고 미끄덩하고.

곧 줄줄 흘러내렸네. 감정의 불알을 감추고, 녀석은 황량하고 사랑스러운 발길질로 나를 걷어찼지. 유리창 안에서 시간에 좀먹은 내가 늙은 신부처럼 나를 나처럼 바라볼 때. 녀석은 똥 묻은 팬티를 끌어올리고 사라지고 아름답고. 나는 면사포처럼 속삭였어. 안녕.


(늙은 베이비 호모 中)


순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이미지들. 어떤 게이 소년의 실패한 첫사랑은 마치 자기비하 같은 난폭한 이미지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이 소년의 '자줏빛 여름' 같은 감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축구화를 구겨신고 자줏빛 여름에게서 도망치고 있을 누런 뻐드렁니 호모들의 감정'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표현 너머의 정서, 이미지 너머의 마음이 느껴지는 안타까운 순간, 개성적이고 독특한 시의 질감이 한 인간의 감정으로 구체화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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