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 백수린 지음 / 2014년 2월 14일 발행




적확하고 아름답다. 1982년 태어나 2011년 등단한 소설가의 첫 책. 설렘을 담은듯 푸르게 반짝인다. 언어와 기억에 관한 작가의 신선한 시선이 사고를 환기한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감자가 사라졌다" 

<감자의 실종 中>


  언니의 약혼자가 방문해 함께 가족의 사진첩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가족의 풍경. '나'는 '감자'를 즐겨 먹었다는 가족의 말에 기함한다. "감자를... 삶아먹고, 볶아먹고, 쪄먹는다고? 엄마는 무슨 그런 끔찍한 농담을 해?" 가족들은 당황하지만, 그녀는 역겨움을 참을 수 없다. 어느날 갑자기, '개'라는 단어가 '감자'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감자탕을 먹을 수도, 감자를 상상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 내가 사용하는 말 사이에 틈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황당한 일을 겪은 모든 사람이 그러듯 나는 현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그녀는 "내가 발설하는 문장들이 투명하게 전달되리라는 믿음"과 함께 말을 잃었다. 사람들은 조용해진 그녀를 점차 밀어내기 시작한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녀는 자신과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이들을 만난다. 누구에겐 '감자'가 우체국이었고, '피아노'였고, '중오하다'이거나 '느긋하게' 였다. 그녀는 비로소, 언제나 그의 곁에 존재했던 '말'에 대해 발견한다. 소통하지 않는, 혹은 소통할 수 없는 두려움.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말'을 상상한 작가의 문장을 따라,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말의 물결이 보이는 듯하다.



"그녀는 그들이 하는 말들을 때떄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이 언급하는 사상가나 이론 들을 알지 못했다." 음악을 전공한 여자와, 그녀의 과외선생님이었던 가난한 남자친구의 소통불능의 세계. 말은 필연적으로 오독을 낳는다.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中>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세계에서, "그가 무엇인가 중얼거렸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커서 그녀는 그의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와 같은, 어느 연인의 소통불능의 풍경은 무척 새삼스럽고 아프게 읽힌다. 



소설은 말로 하는 예술이며 동시에 말에 관한 예술이다. 백수린이라는 '새로운' 소설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폴Paul이라는 이름을 지닌 교포 청년을 두고 사랑에 빠진, 한국어 강사의 이야기 <폴링 인 폴>의 다층적인 제목은 경쾌하게 들린다. 경쾌함과 우직함 속, 진지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직조한 아홉 편의 소설은 정성스러운 소설을 읽는 것이 즐거운 경험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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