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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감히 내가 최인호 같은 대 작가의 정신분석을 해도 될까? 진짜 '최인호'가 아닌, 이 작품을 쓴 '최인호16'쯤에 대한 분석이라고 하면 독자로써 그 정도 권리는 가질 수 있는 거겠지? 어디까지나 최인호라는 자연인이 아니라 '최인호16'쯤 되는 극히 일부의 자아에 대한 얘기니까.

내가 본 이 소설은 그렇다. 건강에 대한 자부심을 잃은 가장의 자신감 찾기에 대한 풍유.
주인공은 15년간 가장으로써 지위를 그야말로 '누려'온 사람이다. 느긋하게 누워서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버터냄새와 빵냄새를 맡으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므로. 아내, 아이, 화장품이 모두 세팅된 대로 당연히 흘러가는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 K. 하지만 어느날 건강에 자신을 잃게 되고 - 여기서는 처음으로 발기부전을 겪는 것으로 은유된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을 둘러싼 당연한 모든 것들이 어딘가 모르게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현숙하던 아내는 돌멩이처럼 차갑고 외설스러운 취향을 가진 아내로, 사랑스럽던 딸아이는 의례적이고 기계적인 아이로 느껴진다. 가장으로써의 자신감을 한창 가질때에 식솔들을 바라볼 때와, 내가 의지해야 하는 대상으로써 가족을 바라보면 그들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몸이 아주 아파 침상에 오래 누워있거나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면 더하다. '아내는 은근히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게 아닐까', '아이들은 나를 아버지로 생각할까? 외려 나를 귀찮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보면 모든 것이 익숙하기는 하되 조금씩 어긋나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영원과도 같은 이틀을 지내고 난 K가 결국 자기 자신과 똑같은 K를 만나게 된다. 자기 자신은 K2, 도플갱어인 상대방인 K1을 만날때, K1은 어떤 사람인가? K1은 K2를 멀끔한 양복쟁이라고 부러워하지만, 실상 작가의 심리속에서는 K2가 K1을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K1의 거친 직업, 거친 말투, 그리고 K1의 아내의 자신의 아내와 같은 모습이지만 생활력 강하고 거친 모습. '거칠다'는 '생명력있다'로 치환될 수 있는 말이기에, 무기력한 양복쟁이 K2(건강에 자신을 잃은 가장)는 거친 직업을 가진 K1(야성이 살아있는 또 다른 나)을 만나고, 마침내 그와 합체(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으로 염원을 이루는 것이다. K1과 합체한 K2는 더 이상 기존의 K도 아니고 K1도, K2도 아니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 상실과 자신감 회복 이후에 보는 세상은 같은 세상이되 더 이상 같은 세상이 아니고, 나는 같은 나이되, 더 이상 같은 내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 K는 내가 가끔 냉소적으로 평가하던 한국남자소설들의 '현학적 징징이'같은 남자주인공을 훌쩍 뛰어넘은 인물이다. 주변을 끝없이 의심하다가, 결국은 그 의심이 자기 자신을 향하나는 점에서 그렇다.

역시 대 작가의 문장이라 술술 읽기고 재미있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 보잘것 없는 독자는 이 소설에서 하루키의 소설의 기시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같지만 자기도 모르게 조금 뒤틀린 세상의 묘사에서 1Q84를 연상케 하며, 도시의 비밀스러운 클럽같은 장소, 근친에 대한 성욕 등에서도 자꾸만 하루키가 느껴진다. 하긴 중간 중간 Nathaniel Hawthorne의 "Young Goodman Brown"이 생각나기도 했으니, 기시감이야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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