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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ㅣ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대중들에게 일베의 이미지가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일베 자체만 놓고 보면 그 역사는 무척 깊다. 초기 디씨인사이드의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갤러리, 또는 스타크래프트 갤러리 등 소위 잘나간다고 불리는 갤러리에서 당일의 베스트 글로 뽑히는 글을 모아놓은데서 출발하는 일베는, 본격적인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2010년도 중반이며, 출발선을 놓고 보자면 그 보다 훨씬 이전이다. 다만 그 특성상 당시에도 주로 좌파 정치인을 희화하는 글이나 이미지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련한 것들이 주를 이뤘으며, 그와 비견할 수준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도 희화화의 주요 소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웹상에서 이러한 문화를 조금이나마 접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근에 논란이 되는 일베의 모습들은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음표를 띄우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지천 드링크를 합성한 영상이라던가, 내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당시 했던 말인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를 이용한 영상은 지금도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 당시에는 전라도를 향한 지역감정의 발화나, 내지는 518을 비하하는 등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어려웠다. 때문에 혹자들은 좌파 정치에 대한, 또한 특정 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반발감과 위화감 조장이 오늘날 일베가 힐난 받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러한 문화는 정치-사회 갤러리 속에서 여전히 있어왔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정사갤이 오늘날 일베만큼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본다면, 단순히 그러한 이유만으로 오늘날의 일베를 진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그렇다면 정말 현재의 일베가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지역감정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부정하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더 이상 일베가 무시할 만큼의 커뮤니티가 아니다'라거나 또는, 외부에서 적을 찾지 못한 기정 좌파 정치인들이 일베를, 그들의 새로운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더 이상 진보만의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베가 그렇게 커졌다고 하여도, 여전히 인터넷은 감성의 공간이고, 때문에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우파가 아니라 마음과 인간성, 이상향에 호소하는 좌파와 진보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터넷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 것은 2003년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자,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일 것이다. 전자나 후자 모두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 오늘날의 그것에 비춰 바라보았을 때 다분히 과장되었고, 또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상황이 조장되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분위기속에서 우파는, 마치 영화 '디 워'가 나왔을 때, 그 누구도 함부로 영화를 비판하지 못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 모두 죽어버린 것은 아니었나 보다.
천안함 사태나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함께, 예전에 그들에게 속았던 것에 대한 반발심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인터넷상에서 우파는 점점 수면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두 번 연속 이은 우파정권의 집권 역시도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들에게 있어서 촛불시위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선동당한 좀비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다. 아무런 자의식도 없이 그저 남들의 모습만을 따라가면서 생긴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한 지역의 특정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역시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래서 비난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만 비춰졌을 뿐이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전형적으로 보수 스탠스를 지향하는 디씨인사이드의 글을 모으는데서 출발한 일베가 보수 성향을 띌 수밖에 없는 것은 달리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 인터넷은 진보들만의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베로'와 '민주화'
그런 일베의 탄생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베에서 채용하고 있는 추천 시스템 용어이다. 바로 '일베로'와 '민주화'이다. 일베로의 경우 평범한 추천버튼과 같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추천 받은 글들은 짤방 게시판에서 일베 게시판으로 이동하게 되며, 다수의 방문객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와 반대인 민주화 버튼은 반대 버튼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때 왜 하필 반대 버튼의 이름을 민주화로 했는지, 이것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시에 대한 모욕이 아닌지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이 '민주화'버튼의 역사는 일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 역시도 다시 2008년의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언급했지만 2008년 당시만 해도 광우병에 대한 반박 논리를 인터넷 상에서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름의 보수적인 성향을 띄는 '유일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날의 이글루스다. 티스토리 블로거들의 상당수가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로 이글루스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보수 성향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2008년 당시에 '아고라'로 대변되는 진보 진영 웹사이트에서 이글루스 블로그 글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가 가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민주주의를 주장한다는 분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에 충분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인해 처음으로, 본질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지만, 겉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그들의 태도를 비꼬며 이글루스에서 '민주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일베만의 용어로 치부되는 경향이 많지만 말이다.
따라서 현재의 일베 역사가 우리나라 인터넷의 우파 역사, 또는 젊은 우파들의 탄생을 대변하고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이는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까지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에만 그 시각을 국한해서는 일베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일베로와 민주화 버튼으로 구성되어 있는 추천 시스템일 것이다.
저열한 기성 좌파 커뮤니티의 모습과 일베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일베가 2010년, 11년 까지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치권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논란이 되던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때 논란이 되던 것이나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이나 별 차이는 없다. 어쨌거나 그렇게 은근슬쩍, 웹상에서 스스로를 병신들이라고 칭하는 일베는 이제 더 이상 삼류문화의 집합이 아니라 어느덧 주류문화로 그 수준이 승격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일베가 이렇게 까지 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기존 보수 정치인이 아니라 좌파 정치인들이다.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그저 가만히 있었을 일베임에도, 굳이 없는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서 일베가 커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웹상에서 '병먹금'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좌파 정치인의 힘을 얻어 큰 일베라서 그런지, 일베에 올라오는 글의 수준이나 기성 좌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 수준이나 사실 별 차이는 없다. 다만 이는 정치 게시판에만 국한되어서 봤을 때 이야기이고, 일베 게시판까지 본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기는 한다. 그러나 그 둘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저열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일베 게시판까지 본다면야, 저열함의 수준은 일베가 훨씬 높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저열함이 젊은 세대에게는 훨씬 잘 작용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박이나 2MB로 표현한 저열함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오래 각인되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노운지라 표현하거나, 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쩔뚝이로 표현한 그러한 저열함이 머릿속에는 훨씬 오래 남는다.
그러한 저열함을 지향하는 일베가 때문에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 큰 파급력을 가지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희화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것들이 기존에는 좌파만의 소유물 이였다면, 이제는 우파 역시도 이러한 희화화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다면야 발끈하겠지만, 큰 맥락에서 그 둘을 놓고 본다면 결국 그 둘은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란이 오갈 때 좌파 커뮤니티에서는 항상 일베의 대부분이기도 한 사자(死者)에게 향하는 비난이 과연 용인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자에게 향하는 맹목적인 비난은 과연 무조건적으로 용인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한 연예인의 현직 대통령을 향한 '몸이나 팔아라!'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베의 사상 : 일베는 기성 좌파정치에 대한 반동에 불과하다
책은 일베가 향유하는 사상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는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일베의 사상은 과거의 인터넷 저급 문화와 함께 촛불시위에서 보인 것들을 함께 계승하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다만 그 방향이 과거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이었다면, 지금은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하고 있다는 차이정도는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일베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 과거 2008년 아고라에서 보이던 비이성적인 모습과 닮아 있음은 분명하다. 그 이후로는 그곳을 찾아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 마지막으로 담겨 있는 모습은 그렇다.
결국, 일베는 기성 좌파정치에 대한 반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일베는 좌파의 비이성적인 모습들이 만들어 낸 병적인 공간에 불과하며, 따라서 좌파 커뮤니티에서 일베의 모습을 바탕으로 비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들은 일베를 무작정 비판하기에 앞서, 일베란 무엇인가, 그리고 일베가 향유하는 사상과 행동 기저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 스스로가 자정 작용을 통해 순화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좌파 커뮤니티가 하나둘씩 변화해 나간다면, 일베는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당신이 일베를 정말 없애고 싶다면, 일베를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그리고 그 작업을 위해 이 책은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