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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 진화생물학의 눈으로 본 속임수와 자기기만의 메커니즘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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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친구들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그렇게 잘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조금 낮은 대학을 가게 된 친구가 있었다. 물론 대학을 서열화 짓는다는 것, 그리고 대학이라는 간판 하나만으로 한 개인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어쨌거나 그 친구는 주변에서도 많은 기대를 했던 친구이기 때문에 그 친구가 진학한 대학에 대해서 주위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몰론 그 친구 역시도 자신이 진학한 대학에 만족하지 못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금 만나게 되니 다소 의아한 상황이 생겼다. 자신이 진학한 대학을 그렇게도 부정하던 친구가 어느새 부턴가 자신의 대학에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나 해야 할까. 그 친구가 만족감을 느끼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득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를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가 지금 자기기만에 빠진 것은 아닐까?

 

자기기만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이처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드물다. 굳이 어려운 예를 찾을 것도 없다. 당신이 언젠가 한 번 시험을 망쳐놓고서, '배우지 않은 내용들이 나왔네'라며 핑계를 댄 적이 있다면, 이 것 역시도 자기기만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사실 곰곰이 떠올려보면 배우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어떤 출제위원이 학습하지도 않은 문제를 시험에 출제하겠는가? 그저 스스로가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그럴듯한 핑계를 찾아 스스로를 속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 따라서 이는 자기기만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자기기만과 비슷한 말은 아마도 자기합리화, 오만, 오기억 등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기만을 진화생물학자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납득하기 쉽지 않다. 진화가 항상 생물이 생존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이는 더더욱 그렇다. 오늘날 현대사회의 모습 속에서 살펴보자. 미국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는 간혹 간호사에 의해 잘못된 약물을 주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넓게 본다면, 종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이만큼 비합리적이며 손실이 되는 행위도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사고도 결국은 자기기만에서 발생한다. 간호사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 그대로 주사하고는 하는데, 의사가 만약 처방을 잘못할 경우, 간호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약을 처방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며 그저 넘어가버리곤 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 자기합리화와 현실회피에 의한 자기기만이다.

 

과도한 자신감, 미국의 이라크 전, 종교 등도 결국은 자기기만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져살까? 왜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아갈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러면 '기분'이 좋으니까.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진학했음에도 그곳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던 나의 친구나, 시험을 망쳐놓고서 핑계를 찾고 그리고는 그것이 진짜인 마냥 믿어버린 것이나, 결국은 '그러면 기분이 좋으니까'였다. 자기기만은 그런 원초적인 이유로 시작됐다. 물론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의 저자는 그보다 더 앞서나간 자기기만을 상정한다.

 

예컨대 당신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누군가를 속였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리고 상대방은 자신이 당신에 의해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상대방은 당신에게 그 책임을 강요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특별한 사건 없이 말로 좋게 넘어가고는 하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다고 해보자. 만약 당신의 기만이 들통 났을 경우 당신은 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이 위기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그리고 생존해내기 위해 '자기기만'을 선택한다. 이제부터 당신은 상대방을 속인 것이 아니라, 당신도 누군가에게 속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자기기만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자기기만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는 단순하게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현상은 아니고, 여러 동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예컨대 외부 침입자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위장하여 침투하는 바이러스나 세균, 그리고 천적 앞에서는 몸집을 부풀리는 동물들까지. 실제로 자기기만이라는 현상은 자연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만술은 세월이 지나면서 상대방에 의해 간파 당하고는 하는데, 이렇게 되면 생물체는 다시 다른 기만술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계속 진화해나간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기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자기기만을 통해 얻는 이익과, 미래에 다가 올 손해를 계산해보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경우처럼 말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기기만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쉽게 접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자기기만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현상이며, 때문에 어려운 학문적 내용을 굳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자기기만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때야 비로소 자기기만에 의해 당하는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마냥 재밌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서 넘겨버리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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