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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센 언니의 조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틈틈이 읽으려고 사무실에 책을 가져갔다. 조금씩 읽다가 덮어 세워두려던 나는 나도 모르게 책등을 뒤집어 놓는 나를 발견한다. 누군가 내 책상 위 이 책을 보고 , 얼마나 더 열심히 안 하려고 그러나라는 생각을 할까봐...^___^

  천성이 민폐 끼치는 것을 못하게 태어나서 주어진 자리에서 늘 열심을 다 했지만, 내게도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적어도 열심히 하는 척은 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사노 요코의 글을 읽으며 배우 윤여정을 떠올렸다는 리뷰를 더러 보았다. 나 역시 백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윤여정 배우의 캐릭터나 인터뷰를 볼 때면 수십 년의 나이차에, 살아온 세월이 절대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꼰대스럽-’지 않은 무언가가 느껴진다. 시쳇말로 걸크러쉬의 원조라고 해야 하나.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거나 같은 세대를 누렸다는 것이 괜한 동질감을 주는 때도 있다. 하지만, 사노 요코의 글을 읽으며 문득, 어떤 시대를 살고 있건 존재로서 깨어있다는 것, 익숙한 것에 딴지를 걸고, 평범 속에서 비범을 찾고, 좀 자주 이기죽거리는 모습에서 닮고 싶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2. 냉소에 관하여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처음엔 3~5명 소수정예로 하기로 했는데 하나, 둘 빠져나가고 어느새 원어민 강사와 나 둘만 남아 의도치 않게 일대일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때 대화는 거의 다 잊었지만 딱 한 장면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How about your personality? In a word?”

 

  나는 준비한 면접 질문이 나왔을 때처럼 신나게 대답했었다.

 

 “I think that my character is so cynical!”

 

  이 장면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건, 첫째는 나를 바라보던 그 외국인 강사의 놀란 눈 때문이고, 둘째는 네가 방금 내뱉은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쓴 것이냐는 강사의 물음에 당황했던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냉소적(冷笑的):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기어 비웃는. 또는 그런 것.

 

  물론, 그때 나는 규범적인 정의보다는, 좀 지적이고 멋진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지만 막 만으로 열여덟을 넘긴 여고생에게서 나온 그 단어가 그다지도 의외였을까.

 

  어찌됐건 나는 지금도 내 성격을 설명하는 몇몇 단어 가운데 냉소를 빠뜨리지 않는다. 지식이든, 상식이든, 잡식이든 아는 말과 듣는 말이 많아질수록 타인의 말과 상황을 비꼬는 실력도 날로 늘고 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냉소적인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에 비해 돈을 덜 번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는데 그래서 이렇게 돈을 많이 못 벌었나 싶기도 하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비꼬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창의력을 요하는 일에 더 좋은 성과를 얻는다는 결론도 있던데 지금이라도 그런 일을 찾아봐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3. 다시 쓴다면......

 

  단어가, 글이, 문체가 작가 그 자체로 보이는 에세이를 오랜만에 봤다.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작가의 자아가 좀체 보이지 않는 글은 개인적으로 좀 답답하다. 사노 요코, 그녀가 어찌나 자기와 자기 일상을, ‘신변을 잡스럽게 기록해 놓았던지...... 그녀가 본 영화, , 그녀의 친구, 동료 어느 것 하나 직접 겪어본 것이 없지만, 거꾸로 내가 본 영화, , 내 친구, 동료를 그녀가 본다면 어떤 말을 해 줄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영화를 해피엔딩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빈자와 부자, 추녀와 미인, 행복과 불행, 리얼한 것과 거짓된 것 어떤 생활이 계속되든 끝나든, 사람의 일생이란 그 안에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 갖고 있으며, 거적이든 얼룩 하나 없는 비단옷에 싸여 있든, 사는 것은 아름답다고...”

                                      - 리얼리티는 궁상맞은 것 중에서 -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는 나와는 살아간 시대도, 나라도 같지 않다. 그런데 20165월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냉소적인 젊은이는 그녀의 글에서 낯섦과 친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편리해진 밥통(가전)은 시민의 감각으로-

  집을 꾸미고 싶은 속물 근성은 에너지로-

  궁상맞은 일상은 리얼리티로-

  어둡고 삐뚤어진 근성은 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바라볼 수 있는 그녀의 그 무딘 듯, 날카로운 생각들을 지켜보며 문득 어떤 아줌마, 어떤 할머니가 되어 갈 것인가 생각해 봤다. 내 평생에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그래도 언젠가 제대로 를 쓰고, 그녀가 보여준 그 격하게 솔직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냉소적'으로 채워보고 싶다. 예쁘게 쓰지 않을 거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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