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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 레핀에서 샤갈까지
서정 지음 / 모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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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기대평]
 예술가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구성에서는 신간다운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나는 저자의 이력에서 불현듯 시선이 멈췄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할 때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의 로망조차 없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친근하고 쉬운 감동을 줄 것 같다.
 어쩌면 저자가 <죄와 벌>을 처음 읽었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연결되기 시작했을지 모를 ‘러시아와의 인연',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과 그로부터 변경을 따라 ‘조금씩’ 이동해 가며 알게 되었다는 여행의 멋과 맛들이 담겨있다면 더 좋겠다.

 

 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기 전 가졌던 기대가 모두 무너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러시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정착해 살고 있는 저자만이 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찾아내고 싶었다. 여행자인 듯, 현지인인 듯, 이방인인 듯 저자의 '위치'가 오묘하고 그 시선이 다채로웠지만, 책을 몰입해서 읽게 되기까지는 그녀의 이야기방식에 조금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책을 펴고 한동안은 먼 나라의 여행서처럼 간접경험이라는 이름으로 가늠해가며 읽어갔던 것 같다. 


  책에 소개된 많은 예술가의 이름을 들어 안다거나, 그들의 작품을 접해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이 책의 모든 메시지를 감당해 낼 수는 없다. 여전히 내게 러시아나 폴란드, 그리스, 프랑스남부는 낯설고 어렵다. 방위를 따지지 않고 내가 갖고 있는 유럽에 관한 모든 이미지는 '스노비즘'의 혐의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겉멋이 잔뜩 든 멋진 문화생활의 일부로 즐기고 말게 돼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예술작품이기에 이해없이도 영감이, 감흥이 절로 일기를 바라는 건방진 관람객이 돼 있었던 건 아닐까.

 "여행은 대개 여행자의 경제적 여유 위에서 가능한 것이라고 여겨지곤 하지만, 그것은 여행자의 삶의 안정보다는 불안을 보여줄 때가 많다. (중략) 그래서 여행을 인문과 관련시키는 것이 스노비즘의 혐의를 피해가고자 하는 교활함의 발로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인문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여행은 불안의 실체를 찾아가는 시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들어가는 글에서...

 

 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톨스토이도, 카잔차스키나 괴테, 쇼팽도 아닌, 고려인 화가 니콜라이 박의 이야기였다. 몇 권의 평론서에서 디아스포라에 관한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지만 그의 삶과 예술작품을 함께 놓고 생각해보는 디아스포라는 좀 뭉클함이 있었다.

"이것은 니콜라이 박뿐만 아니라 고려인이라는 이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들은 이야기로 동아시아적 풍경을 그려내지만) 이마저도 한반도의 특수성에 포섭된다기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저서에 기대는 듯 보인다." p. 192

 

"다문화 연구자 니콜 라피에르는 "산책자는 망명자가 됐고, 그의 삶과 사유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떠도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는데 이는 니콜라이 박에게도 해당된다고 하겠다. " p. 192

 

 아스포라에 대해 나도 모르게 어느 한 쪽으로 분명히 구별되는 색을 찾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코리안 다이스포라에게 한국의 관습과 '한국적인 미'를 집요하게 찾아내려던 시선은 그리하여 "니콜라이 박" 에서 "박"의 흔적과 뿌리만 주목하려 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슴이 따뜻해진다기보다는 머리가 몇 도 쯤 식혀지는 책이다.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며 탁 트인 공원의 풀향기를 상상하거나 적어도  유럽이나 러시아에 대한 낭만을 떠올린 사람이라면 더더욱 차가워지는 이성을 발견할 것이다. 에세이로 분류되는 책이기 때문에 저자의 자아가 어느 정도 노출이 될 것인지 궁금했는데. 저자는 '그들을' 따라 유럽의 곳곳을 걷는 데에 더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평론치고는 가볍고 단순한 편이지만, 에세이로 생각하면 무게감이 결코 그렇지가 않다. 아마도 책의 절반쯤은 깨끗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대단히 현학적이지도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고민들을 이어가게 된다.

 

"예술가들이 조국을 떠나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은 그들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들이 남기고 간 공간들은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문화와 예술을 보는 나의 눈은 어떠해야 하는가?"
"예술가에게 생계나 생활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예술가들의 공간과 흔적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
 

 가는-혹은 편집자는- 이제는 잘 쓰이지도 않는 '변경(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이라는 단어를 굳이 택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세계 지도를 한 번쯤은 펼쳐 놓고 보기를 권한다. 각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역사적 사건과 예술가들이 넘나든 땅. 노스탤지어와 디아스포라, 국경을 초월한 예술과 예술가들의 생애. 화려하지만도, 대단히 젠틀하고 멋있지만도 않은 -때로 유치하기까지 한- 일상들을 살펴보는 것에는 얼마쯤의 지식과 지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내가 파리에서 확인해야 할 프랑스적인 것의 실체란 제국의 변방으로부터 몰려든 천재들이 프랑스라는 바탕색에 계속해서 덧입힌 다양한 덧칠들이 아닐까 싶었다." - 쇼팽과 바르샤바 중에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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