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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ㅣ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는 <내 서재 속 고전>에서 스스로를 에세이스트라고 여기고 에세이의 가치를 부각시키려한다. 한국에서는 잡문 정도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으나 그가 보기에 에세이는 ‘나’라는 존재가 부각되는 장르다. “1945년에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30만 여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납득을 하면서도 그저 그렇게 넘어가 버린다. 죽은 이들의 억울함이나 아픔을 논문으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의 효용을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출처:[시사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이름을 자꾸 되새겨도 자꾸 잊어버린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계속 생각했다. 그녀가 이 600여 쪽에 달하는 작품을 집필하고자 했을 때에 과연 저 국경 너머 어딘가 나같은 독자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생전 처음 들었고, 노벨문학상 작품을 완독하는 데 번번이 실패한 트라우마가 있으며, 동시에 소련과 러시아, 스탈린에서 푸틴에 이르는 모든 역사와 철학과 문학에 상당히 무지하고 무심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고, 한편으로 이 책이 ‘나의 첫 노벨문학상 작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알라딘에서 분명 에세이로 추천을 받았는데 그녀는 기자출신의 유명한 소설가였고, 이 책은 인터뷰를 모아놓은 ‘목소리 소설’로 불리곤 했다. 속기록인가, 에세이인가, 에세이라는 옷을 입은 리포트인가 아니면 팩션인가의 경계에서 이 작품은 당당히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어쩌면 이 책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것일지 모른다. 다만 그녀는 논문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야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 이상의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글을 썼으며 경향신문은 이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문학이 언제 위대해 질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책”
나는 사람들에게 사회주의가 아닌 사랑, 질투, 유년기, 노년기에 대해 그리고 음악, 춤, 헤어스타일에 대해, 사라진 삶의 수천 가지 소소한 일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것이 재앙을 익숙한 틀 속에 집어넣고 무언가를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지난 대선 김어준과 나꼼수는 분명 정치에 대한 눈을 처음 뜨이게 해 준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수많은 정치, 시사 팟캐스트를 듣고 기사를 읽으며 흥미로운 수사들을 접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정치가 나의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정치가 내 일상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내 한 표의 가치를 그렇게 이해하고 배워갔다. 그냥 모두가 알아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우리는 분명 정치와 사회제도 안에서만 '자유롭게' 살아간다.
행복해졌다고요? 그런가요? 햄과 바나나가 판매되고는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똥 무더기에서 뒹굴거리며 외국 음식을 먹고 있다고요. 조국 대신 거대한 슈퍼마켓이 들어섰지요. 이런 게 자유라면, 난 이런 자유는 필요 없어요. 젠장! - p.29
(자유시장의 시대가 열렸지만) 우리를 대우해주는 곳은 없었어요. 페레스트로이카는 우리가 이뤄낸 거였어요. 우리가 우리 손으로 공산주의를 묻었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어요. 어린 딸이 배가 고프다는데 집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 p.532
1917년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에서 시작된 소비에트 시대 그리고 1991년 이후의 자본주의 (또는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를 꽤 ‘새롭게’ 살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러나 저자가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 본 러시아는 혁명과 혁명을 무너뜨리는 변혁의 시대를 겪어온 그들이 새롭게 맞이한 시대가 전혀 새롭지 않고 ‘자유’에 대한 정의가 모두 같지 않으며 오히려 누군가는 ‘속박’이라고 부르는 것이 자유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컨드 핸드 타임’(중고품 시대)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다양한 세대들의 억울함이나 슬픔, 현실의 부조리와 역사의 책임을 강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최대한 원대하고 웅장하고 극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 집과 부엌, 가족과 친구, 술이나 음악과 책에 관해 묻고 독자는 보다 익숙한 소재에 대해 몰입하면서 그 이면의 웅장하고 원대하고 극적인 것들을 자유롭게 상상한다. 그런데 그 상상이 억울함과 슬픔, 현실의 부조리와 역사의 책임을 불러 일으킨다. 감히 평하자면 나는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신기하게도 일상을 깊게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수록 시대와 정치와 사상의 상징이 몇 겹으로 중첩돼 나타났다. 시민의 목소리가, 증언이 소설이, 문학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책을 끝까지 다 읽지도 못했지만, 가능한 한 여러 번 다시 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다 읽어도 다 읽은 게 아닌 책이 될 것 같다. 이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두 번째 트라우마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은 성과를 굳이 꼽자면 일상의 언어가 역사적 증언이 되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수많은 증언들을 지금 우리 세대를 살아가는 모든 ‘생존자’들의 목소리로 바꾸어 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 우리의 ‘세컨드 핸드 타임’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남는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