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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한겨울 북극발 한파가 호되게 밀려왔다 밀려가고 이내 내달려오기를 반복했다. 여행에서 공간의 이동이나 시차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리를 거슬러보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추울 때는 따뜻한 나라로, 더울 때는 시원한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의도치 않게 겨울엔 유럽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여름에 괌의 찌는 듯한 더위에 지쳤던 기억밖에 없다. 그나마, 한 겨울 제주나 해남에 가서 몸을 녹였던 것이 피한避寒의 기억이라면 기억일까.

 

  여행은 때로 일상과의 단절을 강박처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행에서도 일상의 고민과 잡감이 떠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한정되어 있는 시간은 그 불안을 증폭시키곤 한다. 그래서 한 나라에 적어도 한 달 정도 머물며 살아가는 그녀의 여행법은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를 가리키고 있다. 물론 그렇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가장 먼저 책 표지와 디자인, 구성이 눈에 띄었다. 얼른 출판사 이름을 확인해 볼 만큼 글과 사진의 배치, 색감이 참 단정하고 예뻤다. 오랜만에 예쁜 책을 만나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간 몇 권의 여행 에세이들을 읽으며 자기 관념에 빠진 글들과 메시지와는 무관해 보이는 사진 배치가 불편했던 적이 더러 있었는데 그에 비해 이 책은 여러모로 친절하고 호흡이 좋은 구성이다.

 

  여행에세이를 읽을 때 그 나라, 그 도시의 대표적인 명소와 특징, 문화를 이해하고 대리만족 하는 데 온 힘을 쏟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여행 이야기를 쓴 사람에 더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 에세이는 대체로 자연스러운 자기노출이 잘 되어 있는 글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 너머에 여행을 시작해 이제 사십대에 접어든 작가, 김남희.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데 어느 정도 이력이 난 그녀는 여전히 소심하고 경계하고 몸도 여기저기 골병이 든 곳이 많다. 나는그 조심스러움이 참 좋았다. 무모한 용기를 이야기 하는 여행책은 꼭 성공한 사람들이 쓴 나처럼 해봐요식 자기계발서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많은 모습들 중에서도 외로움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혼자하는 여행이 마냥 신나기보다 따뜻한 열대의 땅에서 더욱 한기를 느끼는 것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글로 전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 그녀의 다른 책이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

 

  그녀의 여행기에서 사람, 종교, 사회, 정치, 책과 영화, 예술, 음식, 자연, 동물과 식물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참 조근조근 끈기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행지에서 모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의미를 나누는 것이나, 내가 나고 자란 땅에서 쉬 발견하지 못한,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하고 말지도 모를 ‘동이민족의 유전자', 뜨거운 심장과 젊은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도 좋았다.

 

  많은 여행 경험속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낯선 곳이든, 익숙한 곳이든 쉽게 달뜨거나 섣불리 화를 내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 덕분에 한 책에 담긴 4개 도시의 이야기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느껴졌다. 남희라는 이름의 자모의 음성에서 오는 느낌처럼 가만가만, 작고, 예쁘고 부드러우며 약간의 위트 잃지 않은 편안한 글들이었다.

 

 이방인의 난폭한 발걸음에 아직 뭉개지지 않은 새벽의 풍경에 인사를 건넨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소란스러운 흔적을 이 도시에 남겨두고 떠났던 걸까. 여행자로서 최소한의 윤리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기인데...... 

  여행과 일상의 중간지대에 머물고 싶다고 했던 저자. 각 나라와 도시에 대한 애정만큼 직업 여행가로서 관광객과 '여행소비자'들에게 갖는 안타까움과 책임감들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지난 나의 여행들을 되돌아보는 데에도 손색이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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