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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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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욕망의 역습, 고백으로 타파하라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괜찮다고?? 정교한 규범 위에서 벗어날까 노심초사 하는 내게 제목이 전하는 첫인상은 ‘유쾌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 김두식 교수의 글을 좋아했다. 일단 재밌고,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지점을 참 탁월하게도 짚어내시는구나, 여겼다. 그래서 지난 5월 책이 출간된 직후 구입했고 단숨에 읽었더랬다. 서평을 위해 다시 들춰본 지금, 처음 책을 접했을 때의 감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메시지 또한 콕콕 달려든다. 아마도 우리가 감추려했던 욕망의 지점을 정확히 파악해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인정하라, 당신의 욕망


신정아 씨의 학력스캔들, 중국 영사관 덩씨 스캔들 등 세상을 흔들었던 굵직한 스캔들부터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모든 스캔들은 바로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도하게 욕망을 부정하며 억압한 사회는 결국 곪아들기 마련이고, 고름이 가득 찬 종기가 터지듯 희생양을 단죄하며 평화를 되찾는 일련의 과정은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으로 뒷받침된다.  


그렇다면 그 놈의 욕망을 없애버리진 못할까? 모든 번뇌가 욕망에서 출발하고 추악함 또한 욕망의 산물이니 말이다. 답은? 없다. 가령 당신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잘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직접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비친 글을 지워본다고 해 보자. 몇 개나 살아남을까? 인간은 그런 존재다. 평생을 규범에 순응하며 모범적으로 살아온 저자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고백한다. 유명해지고 싶으면서도 그런 욕망은 숨기고 싶고, 자신을 추켜세우는 이야기가 민망해서 자리를 뜨고 싶을 정도지만 ‘듣보잡’ 취급을 받을 때면 울컥해서 자랑을 늘어놓게 됐다는 고백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칭찬을 고맙게 받지 못하고 ‘듣보잡’ 취급에 지나치게 예민한 것도 결국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이에 직구로 답한다.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평안이 깃들지니.”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 일부를 떠올려 본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도 결국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런 원죄를 품고 태어난 우리가 본능을 누르려고 하다 보니 사고를 친다. 욕망을 받아들이고 나면 남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은 한결 따뜻해진다. 집단의 조화로 이어짐은 당연하다. 


규범의 몰락, 의심하라


정말 악법도 법일까? 나쁜 법도 무법보다는 나은 것일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런 믿음을 갖도록 교육받았다. 저자는 ‘규범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한 싸이코패스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일갈한다. 


1984년 인도에서 다국적기업 ‘유니온카바이드’ 공장의 화학가스가 유출돼 첫 주에만 3,000명이 죽고 이후 8,000명가량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신체적 손상을 입은 사람은 50만 명이 넘는다. 사고 전부터 가스누출 등 치명적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들이 나타났지만 수익에만 치중한 미국 화학회사와 지역정부는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고의에 가까운 부주의가 엄청난 사고를 초래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진상규명도 채 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한편 우리는 잊지 않는다. 지존파, 유영철, 강호순 등의 희대의 살인자들을 말이다. 끔찍한 흉악범죄에 분노하며 그들을 거세게 비난하지만 과연 앞서 말한 두 범죄 중 더 나쁜 것은 무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외형상의 폭력성 때문에 후자의 사건에 더욱 민감하지만, 목숨을 잃어간 사람들의 수는 비교할 수 없다.


유니온카바이드 사의 범죄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범죄다.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 자기 직업과 관련하여 저지르는 범죄를 말한다. 화이트칼라의 범죄는 외형상 비폭력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심각성을 체감하기가 어렵고 또한 법체계를 다루는 사람들이 곧 화이트칼라기 때문에 형량은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규범은 완벽하지 않다. 아니, 완벽할 수가 없다. 규범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규범에 대해 맹종하는 태도는 근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극단으로 치닫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고자 희생양을 찾아다니는 사회의 사냥꾼들도 규범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는 공통점을 보인다. 저자는 이에 딱 한마디로 대꾸한다. 


“의심하라!”


근엄한 얼굴을 한 수많은 규범들이 자기 존재의 근거로 온갖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허세로 가득 찬 그 가면을 벗기는 작업은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한 필수과제라며 말이다. 


욕망과의 건강한 동거

  

김두식 교수는 그간 책이나 칼럼 등으로 기독교인임을 드러냈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 거부나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규범의 사람으로 살아온 그는 규범성을 좀 탈피하기로 마음먹은 다음에도 선을 훌쩍 뛰어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대신 선을 조금씩 넓히는 방식을 취했다는 고백도 함께. 


그런 저자의 모습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사족’이라는 문패를 달아 솔직한 이야기를 따로 담아내고, 문장과 표현은 독자들에게 매우 예의바르게 접근하고자 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힘을 빼고 솔직해지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때문에 가끔은 ‘교수님, 조금 더 치고 나오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혼잣말까지 중얼거렸다.


우리 시대의 욕망을 한바탕 훑고 난 뒤 고백을 권하는 <욕망해도 괜찮아>는 ‘대신 고백하고 건강하게 살아’라는 부제가 딸려 있다. 억누른 욕망을 타인을 향한 감시로 분출하는 사냥꾼들은 사실은 그들의 결핍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깊은 내면을 고백하며 이웃과 나누다보면 어느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가 늘어난다. 그것이 연대로 싹튼다면, 이 세상은 한결 견딜만할 것이라는 유쾌한 메시지는 마음 한 편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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