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 치유 에세이
전미정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어옹> ▼

 

하늘이 아직 강 늙은이에게 너그럽지 않아

일부러 강호에 순풍을 적게 보내네

인간 세상 험하다고 그대는 비웃지 말라

제 몸이 오히려 급한 물살 가운데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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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책상 유리에 끼워져 있는 김극기의 <어옹>이다.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 문제지에서 이 시를 보았고, 내 마음에 박혔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처음이다. 시를 학교에서 지시한 대로 분석하지 않고, 마음이 받아들이는 대로 느꼈던 첫 번째 시.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 즉시 연습장에 이 시를 쓰고 책상에 넣어 읽고 또 읽었다.


 그렇기에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서른아홉 만큼의 상처가 있는 작가이기에 그만큼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시들을, 또 그만큼 가득할 작가의 책상을.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의 시들은 그것만으로도 작가의 상처이자 꽃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상처에서 나의 상처 또한 보았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였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주위를 기웃거리곤 했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어쩔 줄 몰라 다시 그 안으로 말없이 들어가 버렸다. 그게 나였다. 어떻게 하든 친구들 사이에 끼어 보려 했고, 그 사이에서 거리감을 느낄 때마다 속상해했다. 나의 성격이 어느 순간 갑자기 변하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내가 다른 이로 되는 상상도 많이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남몰래 남을 질투하고,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것이. 메아리조차 없는 기대에 지쳐 사고방식을 바꾼 것이. ‘어차피 학교에서 잘 못 지내는 것,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뭐. 학교와 같거나 더 낮겠지.’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혼자서 학원을 알아보고, 상담받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먼저 전화해 보고, 내 의견을 고집해 보고. 그렇게 한 발 내딛고서야 내가 서 있는 곳을 알았다. 나는 다시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고, 옛날에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는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는 남을 마냥 부러워만 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수많은 고민이 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수많은 고민이 있고, 또 내게는 쉬운 일이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너에게; 브라우관을 통한 공감을 경험했을 뿐, 아직 주위 사람과 공감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생각했다. 빼내고 싶은 나의 못을 생각했다.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했다. 과거의 수치심을 생각했다. 지난날의 질투를 생각했다. 나의 어둠과 빛을 생각했다.

우리는; 나의 상처를 생각했고 나의 외로움을 기억해 냈다. 그림자 있는 것들이 벌벌 떨고 있는 그림자 없는 것 또한 생각해 보았다.

 


 시를 읽었다. 23의 상처를 생각했다. 23의 지금을 생각했다. 나의 40을 생각했다. 나의 죽음도 생각했다. 후회스러운 행동, 수치스런 일도 생각했다. 나의 못난 점, 나의 좋은 점을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사랑을 생각했다. 그리고 23년 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직 상처받을 것이 많을 젊은 나의 시간을 사랑하고, 앞으로 꽃으로 피워낼 나의 임무가 자랑스럽고, 그리고 그것을 누릴 나의 중년을 조심스레 기대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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