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자서전 - 나의 진실 추구 이야기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디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간디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그를 평화주의라거나 하는 잘못된 편향된 상상을 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거나, 그의 자서전을 읽지 않으면서, 그에 대해서 말하고, 방송에서 자료화면으로 사용하는 등등 잘못된 이해가 너무 심각하단 것을 이번 그의 자서전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이번 간디자서전 독서를 게기로 그러한 무지에서 벗어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순신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우리나라의 장군이지만, 실제로 그의 ‘난중일기’를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간디자서전’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이리라. 특히 물레를 돌리는 간디의 모습과 비폭력무저항운동이라는 교과서적 단편지식이 상식으로 굳어져 버려서 이미 그에 대해서는 다 아는 듯 하고 그래서 그의 자서전을 굳이 찾아 읽을 욕구가 사라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 ‘간디자서전’을 읽고 난 나의 감회는 우리가 너무 잘못 그리고 피상적으로 간디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느꼈다. 특히 간디가 젊은 시절 펼쳤던 인도노동자들과 민중노동자들을 위한 해방운동과 사회운동 등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적극적 사회혁명가 못지않은 실천가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우리가 그를 평화로이 무저항하는 사상가로 단순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간디 같은 사람을 찾자면, 아마도 유시민이나, 노무현 같은 사람들이지 않을까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소리야 놀랄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본 결과 간디와 이들의 모습이 유사하고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들은 못가지고 가난한 사회의 주류가 아닌, 억압받고 탄압받는 소수약자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을 평생 돕고 지원한 사람들이고 간디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간디는 젊은 시절 영국유학후 스스로 변호사이고 기득권층이 될 수 있었지만, 현실사회의 불우한 약자들의 모습에 눈감을 수 없어서, 비분강개해서 그들을 돕는 활동에 나섰고, 더군다나 자기 자신의 재물이나 가진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가난하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의 가진 것과 물질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반성이 되고, 앞으로 내가 살아야할 삶의 방향을 간디처럼 과감히 돌려버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되돌아보게 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간디는 영국유학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이후 남아프리카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거주하는 많은 인도인(사업가 및 노동자)들과 관련된 법률적인 업무를 수임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인도인들에게 부과되는 차별적인 대우와 부당한 인종차별을 본인스스로 겪고, 보면서 차츰 인도인들의 권리와 인권에 눈뜨게 된다. 간디 스스로 변호사이지만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기차1등간에서 쫓겨나고, 이유 없이 경찰과 백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이후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위해 언론사를 차리고 신문을 내고 또 그러한 상황을 본국에 알리고 지원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사회활동은 남아프리카를 넘어 드디어 본국 인도에까지 뻗치게 된다. 당시 수많은 소작농과 가난한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지주들로부터 과도한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에도 힘도 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그는 이 역시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 편 에서서 적극적으로 이들을 규합하고, 변호하며 싸워나간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바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독립과정에서도 영국정부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투쟁하는 강건한 모습을 보여준다. 간디가 가진 것은 군사력, 힘이 아니었다. 오로지 헐벗고 가진 것 없는 스스로 가난한 간디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활동은 그 어떤 강력한 힘보다 더 호소력 있게 인도와 영국에 영향을 미친다.

그의 투쟁방법은 오로지 비폭력적이고 무저항 적이지만, 사실 이것은 그 어떠한 힘과 무력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인도인과 영국경찰간의 대치로 유혈폭동이 일어나자, 그 스스로 폭동과 무질서가 없어지기 전까지 목숨을건 단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결국 평화가 찾아오게 만든다. 그의 정의추구의 칼날은 영구, 인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올바름을 향할 뿐이다.

책을 읽는 중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 중의 하나는 간디가 그의 삶의 과정과 시기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영국에 대해서는 아주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국이란 제국의 시스템 속에서 인도의 발전과 독립을 추구하는 활동모습을 초반에는 보여준다. 때문에 우리나라(한국)에서 였다면 간디의 모습이 친영파(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라고 매도 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고, 또한 우리나라의 일제시대때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과 대비하며 생각해볼 수 도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일제의 지배를 인정한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그리며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궁극적 목적은 독립된 자주 인도, 그리고 민족의 발전과 행복을 염원하는 간디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결론이 나지만 말이다.

또한 힌두교도로서의 간디의 모습이 책중에는 여러곳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채식주의자로서의 모습이고, 그 어떤 종교가 성자보다도 더욱 철저한 금욕과 단식 등의 모습을 통해서 그 자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인격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어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반성과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고기와 물질이 넘쳐나는 현대한국에서 살아가는 독자들이라면 간디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저렇게 살아라고 말하기보다는, 각자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게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고, 물질과 고기중심의 식생활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게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간디의 생애는 모든 것은 내려놓고 자기 것을 가지지 않고 온전히 인도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스스로 영국에서 법률 공부한 영국변호사 자격을 가진 세력가로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인도인들의 부당한 대우와 고통을 바라보면서 그의 삶의 방향은 변하게 되었고, 평생 인도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다 한생을 마감한 위인이다. 먹는 것 입는 것 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었고, 늘 가난하고 검소하고 소박한 삶자체를 살아가고 실천한 분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내내 그의 삶의 모습과 바라보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건해지고 엄숙해지며,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한국의 한명의 생활인으로서 당장 지금의 삶을 벗어나버릴수 없는 안타까움과 한계를 절실히 더욱 느껴보게되는 한계도 체험하게 된다. 타협점으로 간디의 삶과 사상을 이렇게 글로 적고 이야기하며, 주변에 이야기 들려주는 것으로 그 역할의 바를 조금일도 해나가야할 듯하다.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그와 같은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을 조금씩이라도 추구해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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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중한 자서전중 감명 깊은 여러 구절들 일부를 요약해서 적어둔다. 

(번역본은 박홍규 교수의 간디자서전을 사용했다.)


간디자서전의 제목은 ‘나의 진실추구 이야기’인데 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이루고자 원한 것, 지난 30년간 이루고자 싸우고 애쓴 것은 자아실현이고, 신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며,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나는 이 목표에 이르고자 살아 움직이고 존재한다. 말이나 글로 한 모든 것, 그리고 정치 분야에서 한 모든 시도는 그 목표를 향한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는 먼지보다 겸손해야 한다. 세상은 먼지를 발밑에 짓밟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자는 먼지에게조차 짓밟힐 정도로 겸손해야 한다. 그 뒤에야 비로소 그는 진신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 몇 백 명이 없어지더라도 진신을 살아남아야 한다. 나 같은 잘못 많은 인간을 심판하는 데 있어서 조금도 진실의 기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나는 모든 배타적인 친밀감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선보다 악을 더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신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혼자 살거나, 세계를 자기 친구로 삼아야 한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사업 문제도 해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삶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 중심은 신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정열이었다. 그의 사무 책상위에 있는 물건 가운데는 몇 권의 종교 서적과 일기가 있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바로 종교 서적이나 일기를 폈다. 그가 출판한 저술의 대부분은 일기에서 나왔다. 중요한 상업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숨어 있던 정신적인 것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분명히 사업가가 아니라, 참된 진실 추구자다.


세속사에는 불완전한 교사가 있어도 무방하지만 정신적인 경우 그럴 수 없다. 오직 완벽한 현자만이 스승일 수 있다. 따라서 완벽을 향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구루는 그를 만날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나타난다. 완벽을 향한 무한한 노력이 그 자격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 나머지는 신의 손안에 있다.

이 모든 좋은 일들은 나의 무저항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만일 종족에 들어가려고 움직였다면, 또 종족을 분열시키려고 했다면, 종족을 선동했더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보복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내가 영국에서 돌아온 뒤 폭풍을 피하기는커녕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종족은 분열되었으리라.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힌두교가 기독교보다 더욱 뛰어났다. 나는 기독교를 모든 종교 중에서 완벽한 것이라거나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의 기독교 친구들에게 이러한 마음의 동요를 말했으나, 그들의 답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힌두교에 수많은 종파와 카스트가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공적인 일의 대가로 여러분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영구기금 자체에 그 기관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씨앗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란 공중의 승인과 공중에서 나오는 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기관이 공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 기관이 존립할 정당성이 없어진다. 영구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은 여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여론에 반하는 처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내말 뜻은 경상비는 매년 자진해서 내는 회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교육은 임신과 동시에 시작된다. 임신 당시 부모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는 아이에게 그대로 나타난다. 이어 임신 기간 동안, 어머니의 기분, 욕망, 성질, 생활 방식이 영향을 미친다. 출생 후 아이는 부모를 모방하고 몇 년간의 성장은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한다. 이를 아는 부부는 자녀를 낳으려는 경우를 제외하고, 육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성교를 하지 않는다. 성교를 자고 먹는 것과 같이 필수적인 자율 기능으로 믿는 것은 무지의 절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의 존속은 생식 행위에 달려 있고, 세계란 신의 놀이터이며 그 영광의 반영이라고 하면, 생식 행위는 세계의 옳은 성장을 위해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 이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육욕을 통제할 것이고, 후손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 행복에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 그 지식의 혜택을 후손에게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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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19세기 여성의 개척 적이고 독립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당히 세상에 맞서서 홀로 설 수 있는 맘가짐의 교훈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에 있어서는 사랑과 헌신, 봉사라는 가치를 전해준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척의 집에서 자라나나, 차별과 서글픈 대우 때문에 힘들어 한다. 하지만 어려움이나 차별에 당당히 맞서기도 하며 열심히 생활해나간다. 친척들이 제인 에어를 기숙학교로 보내버리지만, 궁핍한 그곳에서도 제인 에어는 더욱 열심히 생활함으로써 자리를 굳히고 교사로 성장해나간다.


드디어 로체스터씨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갈 기회를 잡고 성실히 생활한다. 기본에 충실히 자신의 삶을 닦아온 기반이 그의 가정교사로서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주인 로체스터씨는 맘을 빼앗기게 되고 청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난다.


홀로 다시금 길거리로 나앉게 된 제인 에어는 고통스런 현실의 억압과 부딪히지만 다시금 개척적인 생활태도로 안정을 찾아간다. 세인트 존의 집안에서 다시금 일자리를 얻고 생활해나가게 되고 다시금 세인트 존의 청혼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 가장 사랑했고 맘이 머물렀던 로체스터씨에게 다시금 찾아가 진정한 사랑을 성취한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사랑에 관해서 주인공 제인 에어의 말에서 큰 교훈이 느껴진다. 결혼은 사랑이 기반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며, 다른 수단이나 도구적 요청에 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간에는 헌신과 사랑, 봉사만한 것 이상의 중요한 가치는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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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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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와 초능력 주인공의 흥미와 재미의 결합 그러나 약간은 약한 느낌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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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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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화면전환과 몰입케 되는 감독의 제작기술이 잘 결합한 음모 영화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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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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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와 수애 주연의 영화 <심야의 FM>은 영화음악 DJ와 사이코패스의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린 영화입니다. 줄거리와 내용은 관객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재밌는 내용일 것같은 느낌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중에도 일정정도의 구성적 재미와 소재와 내용의 신선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악당에 승리하는 무난하고 뚜려한 결말로의 진행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약간 아쉬운 점들이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는 범죄 혹은 스릴러 라고 지칭될 수 있겠지만 무언가 또렷하게 이 영화의 느낌과 특성이 감상자에게 뚜렸이 다가오지는 않는 것같습니다. 범죄자를 쫓고 쫓기는 과정의 모습이 인위적인 얽매임과 관계 맺기로 얼룩진 것이 영화를 약간은 억지스런 상황으로 주인공들을 내모는 것 같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던 아나운서 고선영(수애)이 방송을 하다말고 범죄자를 쫓아서 집으로 달려나가면서 중개방송용 차를 타고 방송을 이어가면서 직접 자력구제하러 나가는 모습도 그렇고 방송국 직원들이 방송사 국장을 밀쳐내고 동료직원의 가족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방송에 살인자 한동수(유지태)와 아나운서 고선영과의 대화를 방송으로 내보낸다는 설정도 사실 말이 되지 않는 허무맹랑한 모습입니다.
 

관객이 일부러 이 영화를 감상키위해 주어진 줄거리와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노력을 하게 만듭니다. 간혹 영화를 보다보면 필연성이 부족한 너무 인위적인 관계맺어짐이 남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언가 생각을 영화를 보다 하게 되는 관객이라면 저때 왜 저렇게 진행하는 거야?라고 되묻게 되는 장면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영화줄거리와 내용으로의 관객의 집중이 이루어지게 되고 너무 인위성이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습과 편안한 줄거리 전개 그런와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영화적 사건과 그것을 이겨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의 통쾌함 이런 것이 잘 버무려지고 조화를 이룰수 있는 작품이 생각나게 만듭니다.

문화교양칼럼니스트 장재용
(YES24파워문화블로거)
[블로그:blog.yes24.com/janjgy, 트위터:hufs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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