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의 한반도 


반도에는 원래 벼랑이 많은지 전혀 아는 바가 없으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세는 항상 벼랑 끝에서 이루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북한의 정상은 서로를 향해 '화염과 분노', '불망나니' 따위의 말 폭탄을 던지며 신경전을 벌이더니, 다시 핵실험과 코피를 터뜨리겠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은 일촉즉발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늙다리 미치광이'와 '로켓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를 재개하였고 싱가폴에서 역사적인 양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합의는 편지 한 장에 무산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여기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양국관계의 총론을 합의(혹은 복원)하였다.

싱가폴에서 이제 한 번 만났을 뿐인 두 정상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각별한 우정을 과시하면서, 일 년 만에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국 정상은 각론에서 크게 견해차를 보이며, '노딜 서밋'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남기고 재차 어색한 사이로 돌아섰다. 

이어 어김없이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북한식 으름장이 나왔고, 미국은 '제재와 압박'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 대화가 끊긴 침묵을 긴장이 비집고 들어서고 있다. 웨딩카를 몰 것이라 낙관하며, 양국의 맞선을 지켜봤던 '한반도의 운전자'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시름만 그만큼 깊어졌을 뿐이었다. 



이처럼 예측불허의 북미 관계는 상승과 추락을 밥 먹듯이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그러나 CNN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1989년 이후 15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대북 통 마이크 치노이에 따르면,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라기 보단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어왔던 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북미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롤러코스터와 같은 막전막후를 가감 없이 담았다. 

마이크 치노이는 시기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 집권기, 상대방으로 김정일이 맞서던 때의 대북이슈를 다뤘다. 그러나 그는 부시 행정부 내 국방부를 주축으로 한 네오콘의 매파와 국무부와 동아태국을 중심으로 한 비둘기파의 권력투쟁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북핵문제의 장기화에는 플루토늄 동결에 합의하였으면서도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비밀로 추진했던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동시에 부시 행정부 내에서 협상과 대결이라는 모순된 신호가 동시에 흘러나와, 어느 것이 신호이고 어느 것이 소음인지 불분명하게 만들어 사안의 불확실성을 키운 미국의 책임도 일정부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한국에는 2010년에 번역되어 소개된 지 약 10년 가까이 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정일이 죽고 그의 3남 김정은이 수령에 올랐으며, 부시를 지나 오바마가 물러나고 다시 트럼프가 들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그때의 주축들이 여전히 상당수가 대북전선 전면에 요직에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존 볼턴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①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이 책에는 굉장히 방대하면서도 세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 서평에서는 지면 관계상 주목할 만한 인물의 일대기를 위주로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소개할 인물은 대한민국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혈기왕성한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데올로기적 혐오로 인해, 1994년에 북미 간에 성사된 '제네바 합의'를 섣불리 어그러뜨릴까 일본보다 앞서 급하게 한미정상 회담을 잡는다.

미국으로 날아간 김대중은 국무장관 파월에게 효과적으로 자신을 어필하였으나,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관여정책의 지속을 요구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조지 W. 부시는 김대중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며 오히려 동맹국 한국의 정상을 'this man'이라 모욕하며 돌려보낸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다면 심지어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네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김대중은 아이젠하워, 닉슨, 그리고 레이건 등 3명의 공화당 대통령이 증오스러운 공산 적대국과 대화를 한 바 있음을 환기시켰다. 
  김대중의 이어지는 말. "심지어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를 때도 그는 대화를 가졌다. 그럴진대 북한과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 그래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을 벌여야 하더라도 그것은 최후의 수단,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하고, 대화를 포함한 다른 방법을 다 써본 뒤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 당시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왜 당신은 대화 옵션을 취하지 않는가?" pp.144-145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이후 재야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아버지 부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북문제의 엄중함을 설명하고 일시적으로 부시의 강경기조를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한다. 고군분투하는 김대중의 모습에서는 우리보다 강한 동맹국에게 자기주장을 포기하며 국익을 저버릴 것인지, 혹은 자기주장을 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고민과 수완이 엿보인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② 조지 부시와 국방부 및 네오콘 네트워크




조지 W.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그리고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 존 볼턴은 공화당 내에서 '네오콘'이라 불리는 강성 이데올로기 동맹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의 신념은 다음과 같다. 

'무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미국식 정치경제 체제를 이식할 수 있고, 독재국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해 봉쇄와 억지를 넘어서 '선제적 공격'도 불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보수주의적 강경 이상주의자들의 신념이다.

네오콘들의 득세에 따라,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직접 북한을 드나들었던 숙련된 대북 전문가들이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강경파들은 구체적인 정보나 데이터보다는 자의적 해석과 힘과 끓어오르는 분노, 특히 혐오감으로 북한 문제를 다뤘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다뤄야 했던 대북전략이 속된 말로 '뇌피셜'의 음모론에 지배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대북 투쟁과 미국 내 대북 관여파와의 노선투쟁에서 활약했던 인물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중역을 맡고 있는 존 볼턴이었다.

파월을 비롯한 국무부 북핵 실무를 담당했던 동아태국의 제임스 켈리, 주한대사 토머스 허버드 등은 구체적인 정보와 현안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여전히 북한의 잘못이 크지만 그래도 해법은 대북 관여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교를 선전포고의 전단계정도로 생각하는 치기어린 네오콘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에도 바빴다.

콜린 파월을 비롯한 비둘기파는 어떻게든 대북문제를 전향적으로 풀어보려고 애썼으나, 부시 대통령 본인부터 북한 인민을 굶겨 죽이는 악성 독재자이자 피그미 김정일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뒀던 터였다. 쉽게 말해서 부시 행정부는 대북혐오는 있었지만 대북정책은 전무했다. 

대화를 포기했으면서도 그 빈자리를 채울 미국의 채찍은 모조리 이라크를 향해 있던 상황이었다. 네오콘들은 북한을 위협하면, 위협에 굴복한 북한이 핵을 저절로 포기할 것이라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더는 제네바 합의가 존속할 수 없다고 파악했으며, 사담 후세인의 말로에서 핵이 없으면 이라크와 같은 꼴에 처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네오콘의 의도와 정반대로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 ③ 일본 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와 동시에, 일본의 지도자는 훗날 정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방식으로, 부시에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고려해보라고 권고했다. 고이즈미는 말했다. "당신은 김정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소. 김정일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오. 그는 신뢰를 받을 수도 없소. 하지만 당신은 그와 직접 대화를 가져야 하오." pp. 184-184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한국 국민 일반에서 전범국 일본의 재흥을 노리는 극우 수장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대북이슈에서 만큼은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충분히 재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충동을 제어하는데는 김대중-노무현의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뿐만 아니라, 부시의 친구로 불렸던 고이즈미의 설득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동아시아 동맹국들과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대북 압박책을 펼쳤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쟁위기를 고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미국으로부터 소외되기 보다는 미국의 지휘에 불응하고, 한국과 일본 각자가 단독으로 북한과 접촉하는 쪽을 택했다. 부시의 대북정책은 대북관계도 악화시켰으나, 동맹국들의 협조도 얻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불쾌한 심기를 무릅쓰고 직접 평양에 건너가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고이즈미는 김정일로부터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 받는 성과를 올린다. 양국은 '평양선언'을 도출해내며, 향후 식민지 배상 및 과거사 문제를 청산하고, 납북자문제를 처리하며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납북자 문제 해결은 일본 외교의 큰 성과였으나, 김정일의 납북자문제 인정은 일본 국내의 국민정서를 악화시켰다. 대북 강경론자로 유명했던 아베 신조는 이 같은 국민 정서를 이용하여, 이것을 일약 거물 정치인으로 오르는 기회로 삼았다. 

일본 자민당 내 파벌보다 국민 여론에 기대어 자기 정치를 펼쳤던 고이즈미 또한 여론 악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소신과 달리, 더 이상 대북 관여정책을 유연하게 유지할 수 없었다. 고이즈미가 물러나자, 일본은 대북 강경책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었다.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의 유연함보다는 대북강경론을 앞세워, 일본의 재무장과 연계해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미래는 어디로?

대북 매파의 흐름은 오바마 행정부 8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일본 아베 장기집권으로 일치된 압박 정책을 보이며 지속되었다. 말미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까지 가담하였다. 그러나 결국 북한은 핵을 완성하였고 붕괴하지 않았으며, 대북정책은 협상으로 되돌아왔다. 

분명 아베는 대북 문제에 있어서 아베는 고이즈미보다 못한 인물이며,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부시보다 현실적이고,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관되게 한-미-일-북-중-러가 끼어있는 한반도의 '6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분투 중이다.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하지만, 그렇다고 하노이에서의 합의 연기(혹은 결렬)에 넋 놓고 비관할 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이후 한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과거의 패턴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과거에서 교훈을 삼을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날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다시 한 번 과거를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대북 보도와 기록을 알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2019.03.18 @PrismMaker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즘메이커 2019-03-1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출간 준비 중인 원고 막바지 작업과 학위논문 준비로 인해 새글이 뜸했습니다...
빨리 일정이 정리되어 속편하고 여유롭게 책 읽고 서평쓰는 삶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화면을 터치해주세요. 본 서평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621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2-01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메님 명절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행복한 일상들 되시길^^👍

프리즘메이커 2019-02-02 02:33   좋아요 1 | URL
설연휴였군요! 카알벨루치님도 즐거운 연휴되세요!!!
 


연애는 맨입으로 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가슴이 시키고 섹스는 맨몸으로 하는 것이지만 연애를 맨입으로 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은 연애에는 교제비가 든다는 것과 모든 기회를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기회의 입구를 여는 데는 대개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모든 관계에는 유지비가 수반된다. 부모 자식도 서로의 도리를 다하려면 비용이 들고, 일정 연령대가 지나면 사람 만나는 게 다 돈이다.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사람 앞에선 최소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지만, 그것이 위클리나 에브리데이로 변한다면 소득 수준에 비례해서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

 


더욱이 구애라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최상의 준비를 요구하게 만드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수려한 용모나 타고난 재치나 고운 성품을 물려받지 못하였다면(혹은 키우고 관리하지 못하였다면 ; 이것도 돈이 든다) 그만큼 준비에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하고 결과의 차원에서도 어려운 확률싸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구애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든 투자비용을 상대적으로 더 들일 수밖에 없다. (수요공급의 냉혹한 법칙은 데이트 어플리케이션의 메시지 읽는 권한을 여성에게는 무료 남성에게는 유료 구매로 주어지도록 설정한다.) 그러나 생활비 압박이 크면 교제비를 없애거나 줄일 수밖에 없고 적은 자원으로는 그만큼 힘든 게임을 펼쳐야 한다. 연애의 당사자들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기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교제비가 아니라 생활비 자체가 허덕인다면 양자가 이루어 질 수 없을 확률이 높다. 관계의 시작은 무료일지 모르나, 관계의 유지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적어도 연애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상대는 물론 그 상대에게 쏟을 사랑과 시간과 돈 삼박자 중에 최소 두 가지는 갖춰야 한다. 오늘 날의 청년 세대가 연애의 삼각형에서 과연 몇 가지나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면 어느 정도 청년들이 처한 외로움이 이해 될 것이다.

 

 



젠더갈등과 연애결핍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무슨 접촉이 있어야 일도 터지고 사랑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보편화 되고 고립이 심화된 세상에서 접촉자체가 드물고 앵간한 접촉에는 비용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구조적 원인을 잘 따지는 사람도 연애 문제만큼은 개인의 잘나고 못남의 문제로 쉽게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또한 한국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의 정신적 측면이 너무 미화되어 그 최소한의 물질적 필요가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고비용의 연애시장과 연애문화에서 더는 맨입으로 교제하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고 바라봐야 한다.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절대빈곤 시대의 절규로 들렸다면, 상대적 빈곤시대의 마음과 지갑과 사회적 여유가 모두 부족한 청년 세대에게는 원룸촌 유투브 댓글의 [팍팍한 혐오노래] 변주되며 메아리치는 것일 테다.

 


청년세대의 젠더 갈등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증폭조건 중 하나는 연애 기회가 적어지면서 성별간의 접촉이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애가 의무이며 신격화 되어야 하는 숭고한 행위인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부족한 꼭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또한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의 영역이 결국 자존심을 걸고하는 투쟁이라면, 숙맥들이 벌이는 어설픈 싸움은 쉽사리 자존심의 손상을 가하기 쉽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 혹은 편견이 증폭된 환경에서 숙맥들이 그 아슬아슬한 도덕 감정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넘어서리라고는 일반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성비와 기성 문화에 따라 대개는 구애자의 입장에 처한 20대 남성에게 연상되는 찌질함의 문제 또한 상당부분 위의 요소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20대 남성 숙맥들은 예전처럼 마초나 젠틀맨으로 살기 어렵지만, 가부장적 고비용 연애 문화의 구습에서 아직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랑할 자원이나 기회를 받지 못한 초식남들이 여성을 두려워하거나 적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우리가 종종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혐오는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기회로 인해 연애 시장에 훈련된 남성이 아닌 숙맥 남성들을 공급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때다.

 



 

구조적 실업이 있듯이 구조적 솔로도 있다

 


젊은 층이 연애를 그만두고 있는 것은 미국, 일본, 한국 가릴 것 없이 유행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구적으로 젊은 세대가 윗세대 보다 못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젊은 사랑의 총량이 줄어들고 혈기가 섹스로 분출되지 못하고, 접촉자체가 희귀해진 시대에서 성욕의 프로이트가 재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개인이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라는 주장이 신빙성이 없듯이, 사랑과 연애에도 구조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기성세대는 전쟁 통에도 사랑이 싹텄다며 우스갯소리로 젊은 세대를 나무란다. 거기다 대고 전시만큼 평등이 유지되는 게 없고, 전쟁은 망설임을 제거 해준다는 진지한 반론을 가해야 한다는 것도 영 모양새가 이상하다.

 


그러나 자판기 커피로도 사랑을 나눌 수 있던 시대의 낭만이 이미 오래전 그 유통기한을 다했다는 것을 빠르게 인식해야한다. 못난 사람이 연애를 못한다는 주장을 단순하게 못난 세대라 연애 하지 못한다며 그대로 확대할 수 없듯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조적 솔로들의 고립이 성별혐오의 요람이 될 수 도 있다는 걱정이 벌컥 일어난다.

 

@PrismMaker_ 본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
박한식.강국진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9년 03월 23일에 저장

북핵 롤러코스터- 전 CNN 전문기자가 쓴 북미협상 인사이드 스토리
마이크 치노이 지음, 박성준 외 옮김 / 시사IN북 / 2010년 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점(5% 적립)
2019년 03월 21일에 저장
품절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대의 부채의식과 분열은 무엇인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4년제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야말로 '조기졸업'이자 모범생의 표본이 되는 시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 소요기간이 평균 5.4년(남 6.2년/여 4.8년)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평균 초혼 연령은 진작에 30대를 훌쩍 넘었으며, 30대 미혼율 또한 2015년 기준 44.2%에 육박한다.


신체 건장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져야하는 입대 조차 무한경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공익근무요원은 대기 인원이 한참이나 밀려 기본으로 1~2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의무경찰의 경쟁률은 2015년 기준 최고 26.4:1 에 달했으며, 제대 후 곧바로 복학이 가능한 겨울은 입대 성수기로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다. 이로 인해 군 입대 N수생이 생기는가 하면, 입대 경쟁력을 위한 헌혈과 봉사활동 따위의 스펙 마련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등, 징병제 하에서의 입대조차 수월치 않게 되었다. 




장기간 양육 당하는 세대의 구조적 부채의식


사회의 일각에서는 20대의 불만을 두고서 쉽게 얻어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N포 세대'라는 명칭이 유행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문화적으로 혜택 받고 자랐으나 경제적으로 그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달관세대' 프레임을, 진보 일각에서는 20대가 공정성과 기회, 그리고 역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분석은 일반적으로 타당하다. 절대빈곤이 사라진 시대의 청년세대가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은 것과 교육수준에 있어 막대한 투자를 받은 것도 사실에 부합한다. 80%를 넘는 대학 진학률(2017년 기준 68.9%)과 대한민국의 막대한 사교육비는 물론, 입시제도 변경과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지대한 관심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성세대의 투자를 통해 자식세대가 본전을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기성 세대의 자식 교육에 대한 계층을 불문한 과투자가 오히려 자식세대의 무한경쟁과 심적 부담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청년의 사회진출 시기가 늦춰지는 만큼 청년세대에 대한 양육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청년 세대가 스스로를 어른이기 보다는 양육의 객체로, 부모 세대에 대한 채무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20대 철부지론', '눈이 높아 취직 못해'라는 말에 청년들이 한동안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배경이 위와 같았던 것이다.


그동안 청년 세대는 정치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기성세대의 양보를 구해야했고 동시에 시장에서 기성세대에 도전해야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 기성세대의 지원과 헌신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년들이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를 감추고, 그대신 자책의 정서를 풀기 위해 위로와 힐링 담론에 열중했던 이유에 해당한다. 


일전에 한 예능에서 종이접기 아저씨로 유명한 김영만씨가 "여러분들도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됐으니까. 예전에는 엄마가 접어주던 종이접기,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발언에 수많은 청년이 눈물을 흘렸던 데에는 경쟁에 대한 포기의 정서, 거듭된 실패에 대한 무력감 등이 부모 세대의 투자와 고생에 대한 부채의식과 함께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20대의 분열의식 ① : 학벌과 역차별과 무임승차

고졸 채용 정책은 이명박 정권의 마이스터고 육성을 비롯해 당시 정권의 핵심 차원으로 추진되던 사업이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전임 정권들의 기조를 이어받아, 고졸 채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워 실행 중에 있다. 


그러나 2017년 기준 대졸자 실업률(4.0%)이 고졸자 실업률(3.8%)을 앞지르는 역전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라고 일컬어지는 공무원 선발과 공기업 채용의 살인적인 경쟁률을 비춰보았을 때, 20대 대졸자들이 이를 역차별 내지는 특혜로 여기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마디로 취업시장에서 우대받기위해 대학 진학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취업시장에서 차별받는다는 정서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고졸 채용에 대한 대졸자의 부정적인 인식은 직장 현장에서도 목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현장에서는 고졸 공채 사원들을 두고, 우리(대졸자)가 먹여 살리고 있다(무임승차)는 의미로 '식구(食口)'라는 은어가 사용되기도 한다고 전한다. 대졸자들에게는 대학생활을 통해 너무나 익숙해진 파워포인트, 워드, 엑셀 보고서 정리와 같은 기초 업무조차 숙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졸 채용자를 업무현장에서 가르치면서 이들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일까지 떠맡아 해야 한다는 짐적인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차별적인 시각을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또래에게는 기회에서 '취업특혜 역차별'과 현장에서 '실력 미비로 인한 무임승차' 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감각에 뒤처지는 직장 상사에게는 가부장적인 '꼰대 문화'를 겪으면서(세대 문제에 대해서는 앞전 글 20대 남성의 불만은 무엇인가에서 자세히 다룬바 있다), 젠더 문제라는 새로운 분열 구조가 더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대의 분열 의식 ② : 래디컬 페미니즘과 20대 남성의 충돌

페미니즘은 그 사상의 방대함과 여러 분파가 있으나, 논의 필요를 위해 개략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에서는 'Girls Can Do Anything'(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의 구호로 압축되는 '여성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분파와 미투 운동과 합류된 '피해자 중심주의'로 크게 양분되고 있는 실정이다(이 두 분파는 전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비중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사회의 차별행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미러링'이 여성운동 진영의 주된 전략으로 채택되고, 일베의 미러링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워마드가 등장하였다. 여기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미투 운동과 관련된 사회적 파장이 합류되어 '피해자 중심주의'가 페미니즘 담론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트위터 및 SNS 등지에서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따라서 20대 남성 사회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결합된 래디컬 분파를 여성 운동의 주류로 여기거나, '페미니즘 = 래디컬 페미니즘'의 도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SNS 상에서 벌어지는 남녀 사이의 '진정한 페미니즘' 혹은 '한국 페미니즘의 이중성'에 관한 논쟁(이해VS몰이해) 또한 이러한 도식적 인지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담론 차원에서 래디컬 분파가 우세하고 있다고 해서, 래디컬 분파가 주류라거나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 기득권을 침식시킬 만큼 유의미하게 확장되고 있는 것인지는 좀 더 따져볼 여지가 있다. 어떠한 사회 운동이든 담론이 반이면 나머지 절반은 그것을 뒷받침할 조직력에 해당된다. 그러나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조차 전국적으로 총여학생회 해산이 도미노처럼 일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혜화역의 반 여성혐오 시위 참가자 수가 상당한 규모를 이룩해냈다고 하더라도, 익명의 다수와 조직화된 다수의 응집력 차이는 상당하기 때문이다. 조직 없는 담론이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볼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조직 쇠퇴와 온라인에서의 활황은 페미니즘 담론이 오프라인에서 힘을 잃고 오히려 온라인에 격리되어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자극적이고 선명한 래디컬 의견이 더 강하게 표출되고 노출될 수 있다. 선명한 목소리가 가장 쉽게 인지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조직 쇠퇴를 겪고 온라인에 격리된 페미니즘이 강렬한 목소리 위주로 유통되면서, 20대 여가시간과 생활공간의의 주 서식처가 온라인인 것을 감안하면, 왜 그토록 온라인에서 강하게 젠더갈등이 빗발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제공된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처럼 인화성이 강한 사상이 트위터와 같은 짧고 공유가 쉬운 매체와 결합하면 단기간에도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가부장제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기성세대는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가부장제의 약한 고리에 있으며 병역 문제의 당사자이자 래디컬 페미니즘의 강경한 목소리에 가장 인접하게 있는 20대 남성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남성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곧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을 일부의 문제로 축소함으로써 억울함의 정서로 반응하고 있으며, 일베와 워마드라는 양극단을 규정하면서 그 사이를 젠더 갈등의 무풍지대로 설정하고 싶어 하는 회피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의 문제가 아닌 미뤄둔 시대의 숙제


20대는 기성세대의 꼰대 문화에는 조롱을 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양육에 관해서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20대는 학력의 골품제에서 역차별과 무임승차의 문제로 분열하고 있다. 젠더 문제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 항으로 맞서며 바닥을 향해 경쟁하는 '불행의 올림픽'으로 갈등하고 있다. 


해묵은 구조적 불평등과 개선 노력 사이의 과도기에서 세대-성별-학력-계급과 계층이 모두 파열음을 내고 있다. 20대의 심리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 환경인 세대와 학벌 사회, 젠더 문제는 어느 한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이 미봉한 채 넘겨왔던 사회적 숙제가 경제위기에 맞물려 한꺼번에 다시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귀책을 짓기 보다는 사안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지혜와 욕설과 비난을 넘어설 더 높은 차원의 사회적 관용이 더 요구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필자의 기고문 [20대 남성의 불만은 무엇인가]에 대한 보론입니다.


본 글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를 다시 게재 한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039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얄라알라북사랑 2019-01-04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의 달인 등극하심 축하드립니다. 멋진 글이라 생각했는데 오마이 뉴스 기사로 쓰셨군요. 앞으로 종종 들리겠습니다.

프리즘메이커 2019-01-04 16:56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알라딘을 자주 들르지 못하는데 종종 뵐때마다 인사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