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온다 코끼리!"
"맞아, 쟤야, 쟤."
점심 시간, 내가 급식실에 들어가자마자 수근대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내 얼굴은 또 화끈거린다.
'휴~'
차라리 후련하다. 매일 급식실에 갈때마다 혹시나 듣게 될 그 수근거림 때문에 점심을 다 먹고 나올 때까지 줄곧 두근두근, 조마조마해야하는데, 오늘처럼 들어서자 마자 저렇게 수근거려주니 최소한 오늘은 더 이상 조마조마하면서 점심을 먹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맞지? 딱 코끼리 아니니?"
"아이, 그래도 코끼리는 좀 심하다. 들으면 어떡해."
"우리 교복 색깔도 잘 받쳐주잖아, 회색 코끼리. 크크"
여기서 표정 변하면 안돼. 대책 안선다.
나는 안보이는 손으로 귀를 막고, 안보이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급식대 앞으로 나아간다. 급식 담당 아주머니께서 나를 흘끔 보시더니 식판에 밥을 듬뿍 퍼주신다. 저기 반찬 중에 내가 좋아하는 계란 말이가 보인다.
"저거 많이 주세요."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다. 아주머니는 두개 더 집어서 놓아주신다. 방금 전의 시무룩하던 마음이 금방 밝아진다.
이게 나다. 코끼리.
가까운 곳에 앉아 밥을 먹는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식판이 깨끗해질때까지.
먹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내 외모도, 아이들이 수근거리는 것도, 창피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먹는 동안에는 다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코끼리가 된다 해도 할 수 없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어린이집에 들른다. 동생 초록이를 데리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초록이를 집에 데리고 온 후부터 엄마가 퇴근하실 때까지 내가 해야할 일은 초록이와 놀아주는 일이다. 내가 초록이만할 때는 엄마가 나를 다른 집 아주머니에게 맡겼었지만 초록이 돌보는 일은 나에게 맡겨졌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누나, 이 책 읽어줘."
교복을 갈아입고 나오니 이 녀석 벌써 책꽂이의 책을 다 뽑아 놓고 그 중 한권을 내민다.
<코끼리가 최고야>
'이건 뭐야? 하필이면 코끼리 책이야?'
초록이가 내미는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읽어주기 시작한다.
"덩치도 최고, 먹는 것도 최고, 그래서 싸는 것도 최고인 코끼리."
'그래 이런 내용일 줄 알았어.'
다음 장을 넘겨 계속 읽어주다가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진다.
'무지 큰 발에 다른 작은 동물들이 밟힐까봐 조심조심. 코끼리는 마음도 최고. 사자가 나타나면 큰 귀를 활짝 펴고 엄니를 쳐들어 사자가 슬금슬금 도망가게 하는, 코끼리는 힘도 최고......'
코끼리는 마음씨도 최고, 힘도 최고.
코끼리는 다른 동물들을 해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피곤했는지, 초록이는 내 무릎 위에서 금방 잠이 들었지만 나는 읽은 책을 자꾸 다시 읽어보고 있다.
-- 아래 책을 인용하여 써본 짧은 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