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설명을 읽고 본인들의 브랜드를 만드는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의류 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저개발국가의 의류공장 노동자처우 문제, 의류 쓰레기 문제, 가죽, 모피 및 양모를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해서 하나 하나 다룬다. 어디서 한번쯤 들어봤던 이야기지만, 이렇게 정리되어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특정 주제의 책을 골라 읽는 이유는 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 알고있던 (혹은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지식들을 하나의 주제로 잘 엮어서 정리하고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역할을 잘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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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산업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환경 문제와 윤리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중에는 동물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나는 모피나 특수가죽 (뱀, 악어 등등)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섬뜩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알고있었지만, 소가죽이나 양가죽, 양모, 캐시미어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소고기와 양고기 등을 먹으니 부산물로 나오는 것이 가죽인 줄로 알았고, 양이나 염소의 털은 계속 자라나니 덜 잔인한 동물 소재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가죽을 축산업의 '부산물' 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심장 같은 장기를 비롯해 발굽, 지방, 뼈, 혈액 등 고기가 아닌 다른 것들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수소로 얻을 수 있는 전체 수익의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그 중 절반을 가죽이 차지한다. 축산업계가 가죽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는 만큼 가죽은 축산업의 부산물이 아니라 육류와 함께 축산업에 포함된 또 하나의 제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여기에 가죽을 과연 육식 산업의 부산물이라고 봐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예가 있다. 호주에서는 우유를 생산하지 못해 낙농업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수송아지들은 흠 없는 송이지 가죽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전문 사육 시설 안에서만 특별히 키운다 .... 아이러니하게도 수년간 목초지에서 바람을 맞으며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 도축된 소의 피부는 여러 흠집으로 인해 가죽 상품으로서는 가치가 떨어진다. 동물 복지가 가죽에는 최악인 셈이다.
- '가죽은 육식 산업의 부산물일까' 중에서.
양모를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서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도록 양 품종을 개량한다거나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양을 함부로 다룬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염소 털에서 얻는 캐시미어를 많이 얻기 위해서 몽골에서는 들판이 먹여살릴 수 있는 염소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를 방목한다. 그 결과로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황사도 매년 더 심해진다. 인류는 더 풍족하게 살기위해 동물을 비롯한 자연과 지구를 착취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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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다양한 문제들이 대두되는데,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마구잡이로 버리는 문제, 자원낭비, 의류 제작에 수반되는 다양한 환경오염문제, 노동권문제, 인권 문제 등이다.
SPA 브랜드들로 대변되는 패스트 패션의 물결이 시작된 지 벌써 이십여년이 지났다. 빠르게 바뀌는 유행과 함께 주 단위로 쏟아져 나오는 싼 값의 옷들은 팔리기도 많이 팔렸지만 버려지기도 많이 버려졌다. 물론 빡빡한 납기일에 싼값으로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의류공장에 만연한 노동문제나 환경오염 문제도 있다.
단순히 패스트 패션의 문제만도 아니다. 몇 년 전 버버리를 포함한 명품 브랜드들이 재고를 버리거나 할인해서 판매하는 대신 소각해버렸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것은 럭셔리 브랜드의 브랜드가치 유지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자원낭비라고 뭇매를 맞았다.
최근 다양한 브랜드들이 환경문제와 동물권문제 해결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모피를 쓰지 않는 브랜드들이 점점 많아지고, 가죽도 비건가죽을 주로 다루는 브랜드들이 점점 더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린워싱'이라고 의심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이 똑똑한 소비를 하면 시장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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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두 꼭지가 인상깊었다. <이 세상에 제품 하나 더하는 것에 대해> 와 <소비가 실천이 되려면>.
<이 세상에 제품 하나 더하는 것에 대해> 에서는 저자들이 동물성 원료를 최소화하고 한 번 사면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질좋은 의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실천을 서술한다.
이 세상에는 더이상 생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많은 물건이 있다. 옷장은 입지 않는 옷들로, 집 안은 쓰지 않는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쇼핑몰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 판매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도 아주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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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의 시대에 실천이란 '무언가를 하는 행동' 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행위'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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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해를 덜 끼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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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를 만들면서부터 빨리 쓰레기가 될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다짐이고 원칙이었다.
- '이 세상에 제품 하나 더하는 것에 대해' 중에서
다른 꼭지에 비해 길지 않은 꼭지였지만, 저자들이 고민했던 지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인상깊었다. 그리고 저자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저자들이 <소비가 실천이 되려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해법도, 100퍼센터 완벽한 실천이란 것도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며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운동들이 그랬다시피, 환경운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구를 살리는 옷장』
박진영, 신하나 지음
창비
20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