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치매환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어버린 치매 환자만 봐왔고, 그들의 병적인 상태를 경험한 것으로 치매에 대한 이해를 다 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조발성 치매를 앓고 있는 치매 초기의 환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치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최대한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치매 환자로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인지기능을 발전시키거나 자극하는 활동을 하면 치매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니다.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매는 그냥 진행될 뿐임을 알게된다. 다만 환자가 자기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최대한 버티는 것이다. 좀 더 쉬운 길을 찾으면 인지기능은 더욱 낮아지기만 하기 때문에 좀 더 어렵고 힘든 일을 일부러 해 보는 것이다. 주인공 웬디는 직장생활을 하는 싱글맘으로 항상 주도적으로 삶을 꾸려왔다. 그랬기 때문에 치매에 대응할 방법을 열심히 찾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치매의 여러 증상들을 생생하게 알려준 덕분에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자신의 병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시나브로 잃어가면서 두렵고 슬펐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치매에 걸리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다. 병이 들이닥쳤고, 우린 이유조차 모른다. 그 의문이 치매 환자를 매일 괴롭힌다. 치매는 기억과 존엄을 앗아간다. -213쪽

다들 부모가 늙으면 어둔해지는 줄 알아도 평생 사랑한 자녀의 얼굴이나 이름을 잊을 줄은 꿈에도 모른다. 그게 치매의 잔혹성이고, 바로 거기에 죄책감이 깊이 묻힌다. -214쪽

치매환자 평가의 근본 문제는, 환자에게 일상의 괴로움을 기억하라고 요구하는 점이다. 난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지. 몇 주 후 수급자격 탈락 통보를 받았다...... 정부의 종일 보살핌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이유로 재정적인 생명줄을 빼앗긴 셈이다.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이유로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다니.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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