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타르트를 먹다그 속에서 잠든 아버지를 꺼냈다냅킨에 올려둔 아버지가 아가미를 뻐끔대며무언가 말하려 했다반죽 속 깊이, 그의 입을 다시 묻었다어둠 속에서 사라진 입이 들썩였다“당신은 입이 없어요.”알려주자 고요해졌다그때 냅킨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아버지의 말이 태어났다“미안, 나 먼저 죽을게.”또?손바닥을 내리쳐 식탁 위로 지나다니는 말을 죽였다두더지 게임과 비슷했다냅킨으로 입을 닦고 식사를 마쳤다일어나 밖으로 나오는데허리 아래로 후드득진눈깨비가 내렸다_박연준_진눈깨비 전문
승진채길우야생 완두는오랫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지면서열매가 다 익은 후에도자발적으로 깍지가 열려씨앗을 퍼뜨리는 능력을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으므로식용작물이 되었다.꼬투리를 잡은 누군가의 손이비틀린 멱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때까지입 꽉 다물어 속을 비치지않았기에 사랑받았고함부로 옷이 벗겨져다섯알 중 서너개를 잃고도하나쯤은 건사할 수 있다는 산술로계약을 따냈다.완두는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분노하지 않는 초록의 순종으로서동일한 껍질 속 똑같이 생긴 얼굴로가지런히 줄 서 기다리며선별과 배제는 우연이거나더 높은 곳의 뜻임을순순하게 다짐하는 겸손한 위치에서조차간택되기 위해 무거워진 목을 늘어뜨린비산도 탈출도 없이 동그랗게 어여쁜 두상들채길우, 『측광』, 창비, 2023
승진
채길우
야생 완두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지면서
열매가 다 익은 후에도
자발적으로 깍지가 열려
씨앗을 퍼뜨리는 능력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으므로
식용작물이 되었다.
꼬투리를 잡은 누군가의 손이
비틀린 멱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때까지
입 꽉 다물어 속을 비치지
않았기에 사랑받았고
함부로 옷이 벗겨져
다섯알 중 서너개를 잃고도
하나쯤은 건사할 수 있다는 산술로
계약을 따냈다.
완두는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 초록의 순종으로서
동일한 껍질 속 똑같이 생긴 얼굴로
가지런히 줄 서 기다리며
선별과 배제는 우연이거나
더 높은 곳의 뜻임을
순순하게 다짐하는 겸손한 위치에서조차
간택되기 위해 무거워진 목을 늘어뜨린
비산도 탈출도 없이 동그랗게 어여쁜 두상들
채길우, 『측광』, 창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