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적생활의 방법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 세경멀티뱅크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정기 구독하는 잡지 중에 <인물과 사상>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의 11월 호에 실린 최성일의 글 때문에 <지적생활의 방법>을 접하게 되었다. 최성일은 그 글에서 책을 권하는 릴레이를 말하면서 그 예로 <지적생활의 방법>을 들고, 본인이 이 책을 읽게되기까지는 세 명의 책 권하기 릴레이가 있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최성일 뒤로 이어지는 릴레이의 끝에 내가 서 있다. 그 글을 읽고 이 책을 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서평을 읽은 누군가가 내 뒤를 이어 릴레이의 주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말고도 최성일의 글을 읽고 그의 릴레이를 이어받은 내 친구도 있으니, 어쩌면 이 릴레이는 피라미드처럼 퍼지지 않을까.
<지적생활의 방법>은 나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은 내 행동까지 변화시켜버렸다. 학교를 다닐 때는 서술형 시험의 답안지일지라도 글을 써야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남에게 보여주는 글과는 담을 쌓았던 내가 지금 겁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인터넷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그 증거다. 이 책에서 언급된 능동적인 지적 생활을 하려고 생각하니 가장 쉬운 길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책은 무난하게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쉬운 주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자기자신에게 솔직 하라는 말을 다시 새롭게 들려준다. 그것이 진정으로 알게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그리고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독서의 질이 높아지며, 그렇게 반복되는 독서에서 선택되는 책들이 자신만의 고전이 된다는 것이 그 것이다.
주문은 점점 어려워진다. 집은 좁은데 책이 넘치면 그 위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자더라도, 돈이 쪼들릴 때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꼭 책을 사라는 것, 끊임없이 책을 사들여서 자신만의 장서를 갖추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부끄러워진다. 나는 반복해서 읽는 책이 몇 권이나 되지? 누군가 집을 방문하면 내 지적 여정을 알아볼 수 있는 책으로 들어찬 책장은 가지고 있나?
그리고 이제는 책을 사고, 읽고, 얘기 나누는 수동적인 지적생활을 떠나서 글을 써서 발표하는 능동적인 지적생활을 하라는 주문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을 쓰는데는 50배, 100배의 책을 가지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책이 엄청나게 많아지니까 서재가 아닌 도서관을 가지는 게 좋다 !
아, 나는 책장도 보잘것없는데, 도서관이라니.
그러나 때로는 나에게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여러 작가들이 글을 쓰는 방법을 언급한 대목이다. 나는 위대한 걸작을 남긴 뛰어난 작가는 번득이는 영감으로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내는 줄 알았었는데, 이 책은 그들도 꾸준한 근면 성실함과 엄격한 시간 관리로 그 일을 해냈다는 비밀을 누설한다.
'몇 줄의 글을 쓰는데 왜 나만 이렇게 오래 걸리고, 자꾸 썼다 지웠다 고쳤다 하는 거야?' 같은 생각을 다시는 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리고 구상이 떠오르면 먼저 과감히 쓰기 시작하라는 충고도 시작하기 전에 망설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이 많은 내게 적절했다.
그러나 이 책에도 내가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질이 좋은 책(고급 양장본)이 좋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결혼의 폐단이라든가, 여성은 결혼을 해도 남편에 대한 의무감과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는 지적생활을 영위하기에 더 좋다는 생각은 우리 여성의 처지를 너무나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
그러나 그런 작은 허물을 덮고 보면 전체적으로 이 책은 책읽기와 책 모으기, 그리고 글쓰기에 관해 따라하고 싶은 좋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지적으로 살고싶은 사람에게 꽤나 유용한 책이며, 참으로 믿음직한 길라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