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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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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결과는

모든 것을 공부, 성적으로 연관짓게 만든 시대의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외국) 문학은 늘 어려웠다.

중학교 때 처음 폭풍의 언덕을 읽었을 때도

대학교 때 소극장에서 파우스트 공연을 보고 나서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감동은 없었다.

숙제라서 어쩔 수 없이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안절부절 못했다.

도대체 나에게 부족한 소양이 무엇일까.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난 매번 억지로 쥐어짜며 감상문을 써냈는데

더 최악은 매번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영영, 문학과 가까워질 수 없을 줄 알았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타이핑을 제대로 했는지 재차 확인했을 만큼)

길고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가진 평론가가

문학 작가들의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단다.

처음엔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표정한 표정의 얼굴을 한 액자가 온 집안에 걸려 있다고 생각을 해보시라!

 

"셰익스피어에서부터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이 초상화들은

나와 내 손님들, 특히 문학에 관심 있는 손님들에게 큰 즐겨움을 안겨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예술적 수준을 따지기에 앞서,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각별히 소중한 작가들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초상화의 수집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문학평론가의 이력에 한몫을 담당했다고 말이다."

- 작가의 말.

 

처음엔 역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뵈르네가 있으면 하이네도 있고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사상가였고...

이것저것 외워둬야 할 것만 같은 지식이 쏟아지자 머리가 아파왔다.

여자 앞에서 잰 체 하기 좋아하며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남자들이 좋아하겠군,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난 이 책을 손에 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누구든 쓸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 책은 특별하다.

단순히 어느 시대에 태어난 누가 무슨 작품을 썼고 하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을 사랑해온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문학', '독일 문학' 이란 엄청난 소재를

무척 쉽게, 재미있게,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 관록, 글솜씨, 그리고

문학과 독자,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40여 명의 작가를,

그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능력있는 평론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쥔 독자들은 큰 행운이다.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나는 그가 좋다, 싫다, 진부하다, 넌더리가 난다,

모호하고, 철없고 갑갑하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할 때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평론가란 직업을 선택한 자의 숙명이라고는 해도,

아무리 독설을 일삼는 자라 할지라도,

분명하게 자기를 드러낸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지독한 유대인 혐오자조차 작품과 따로 떼어 생각할 만큼 공정했고,

같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작정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그를 주저없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원동력이리라.

 

역시 이 책의 매력은 그가 작가들과 작품들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듯이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거의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묘사사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나는 괴테에게서 배웠다(33쪽)"

 

문학이니 희곡이니 시니 하는 것을 잘 모르는 나조차

그가 어떻게 괴테에 파우스트에 빠져들고

하인리히 하이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면,

"계몽이 뭔지 근대사가 어땠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이네를 피고석에 앉히고 들었나 놨다하며 헐뜯어" 댈 때면,

괜히 울분이 터졌다.

 

우린 분명 다른 시대를 살았다.

난 전쟁의 경험도 없고 민족 정체성의 혼란도 겪지 않았으니까.

청소년 시절,

그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며 사랑과 죽음에 대해 깨달았다면

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로미오를, 셰익스피어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은 하나이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15쪽).

 

그가 사랑하는 이의 무덤 위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얹어 놓는

유대인에 관습에 대해 무덤덤히 얘기할 때나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권터 그라스에게서 수녀와 뱀장어를 얻게 된 이야기를 들으며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건 그의 가장 큰 무기,

삶의 진실성과 위트, 그리고 관록의 어우러짐 덕분이리라.

 

오늘의 감상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 덕분에 독일문학이, 유대인들이 무척, 궁금해졌으니까.

그리고 수많은 유럽의 독자들이 그랬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 다음 다시 한 번 이 책을, 작가의 자서전을 읽어볼 참이다.

그때쯤엔 아마 얼마 전 고인이 된 이 거장의 삶을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겠지.

어쩌면 나도 그처럼 초상화를 모으든지 하는

괴상한(멋진) 취미를 하나 마련할 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난주, 양억관, 양윤옥 같이

이름만으로 신뢰하며 작품을 사보는 번역가 목록에

다른 한 분을 추가할 수 있게 돼서 무척 기쁘다.

 

단언하건데, 아무리 원작이 좋았다 한들

독일문학이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한들

이렇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번역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지금 같은 설렘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옳기면서, 저자는 자신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한층 더 많이 느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오래오래 사랑한 것들에 대해

타인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잣대를 신뢰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옮긴이의 말.

 

번역하는 작품과 작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열정,

그리하여 최선을 다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겠다는 자부심.

얼마나 근사한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명복을 빌며.

김지선 번역가에게 감사하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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