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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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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제2호(2007년 11.12월호) 서평글 (2007.11.6) 
양솔규

연대감은 굶주림의 숙명을 이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Jean Zigler) 지음, 갈라파고스, 2007년, 201쪽

우리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무한한 생산력의 발전을 토대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정체를 토대로 하는 이전 사회와 다르다고 배워왔다. 참으로 자본주의의 무한한 생산력은 물질적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보였다. 맑스 역시도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이 곧 해방의 조건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러한 풍요로운 전지구적 자본주의 아래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5년 현재,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인한 시력 상실이 3분에 1명 꼴로, 한 해 700만 명에게 일어난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현재, 지구에는 1분에 250명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제3세계에서 태어난다. 그 중 많은 수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를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4분의 1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굶어죽은 아이들과 살찐 소라는 이러한 끔찍한 이분법이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살찐 소를 비롯한 육류소비는 주로 선진국에서 이루어지는데, 영양과잉 상태의 선진국 국민들은 살을 빼기 위해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우리가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의 타당성을 반박하기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아의 참상, 그리고 기아를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발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책이 바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Jean Zigler)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다. 그는 1999년까지 스위스 연방의회의원(사회당)을 지냈으며, 실증적인 사회학자로 현재는 제네바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초국적 식량자본은 과잉생산과 가격덤핑으로 제3세계의 식량 가격과 생산을 교란시킨다. 또한 초국적 식량자본은 시카고 곡물거래소를 통해 전세계 식량의 유통을 장악함으로써 이윤과 기아를 동시에 극대화(?)한다. 또한 초국적 식량자본이 생산하는 식량은 그 자체가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대상이기도 하다. 카지노 자본주의는 ‘밥’을 미끼로 번성한다.

부유한 나라들은 가격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농산물 생산을 제한하기도 한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세계225명의 대재산가의 총자산은 1조 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전세계 가난한 자들의 47%(25억 명)의 연간수입과 맞먹는 수치이다. 빌 게이츠의 자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 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아의 책임은 초국적 기업과 제국주의, 부패한 정치집단 및 독재자에게 있으며,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민주주의이다.

장 지글러는 또한, 북한의 기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995년 이후 기아로 인해 북한에서 죽은 인구는 200만 명에 달하는데 이 중 대다수가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장 지글러는 미국 등의 봉쇄 정책의 야만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기아’를 무기로 한 강제노동수용소와 식량원조를 이용한 군사화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살인적인 세계 경제구조는 ‘구조적 기아’를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기아’를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기는 ‘멜서스주의자’들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아’를 통해 인구가 감소함으로써 자연적 법칙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실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84년 기준으로 FAO의 평가에 따르면, 84년의 식량생산을 가지고도, 120억 명을 하루 2,400-2,700칼로리를 공급하며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하물며 2007년의 생산량으로는 몇 백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장 지글러는 1970년 칠레 인민전선의 첫 번째 행동강령을 언급한다. 15세 이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강령은, 그러나 칠레의 커피와 우유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던 초국적 식품자본 ‘네슬레’는 아옌데 정부의 정상적인 가격하의 분유 구입 요구를 거부한다. 더구나 미국정부와 다국적기업, CIA 역시도 이를 조장한다. 1973년 결국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에 의해 아옌데 인민전선 정부는 무너지고,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인민전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라는 나라가 있다. 83년 젊은 군인 네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대통령은 토마스 상카라 대위이며, 그의 동지들은 블레이즈 콤파오레, 앙리 총고, 장 밥티스테 링가이 등이다. 부르키나파소는 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나라인데, 상카라가 집권한 당시, 절대 다수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상카라는 자주관리정책, 인두세 폐지, 개간 가능한 토지 국유화 등을 하면서 4년 만에 자급자족과 민주적 운영이 가능하게 부르키나파소를 변모시켰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랑스와 코트디부아르, 가봉, 토고 등의 프랑스 꼭두각시 정권들은 상카라의 동지였던 블레이즈 콤파오레를 부추겨 상카라와 그의 동지들을 제거한다. 결국 부르키나파소는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고 만다.

상카라는 저자인 장 지글러와의 만남 속에서 39세까지 살다 간 혁명가 체 게바라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비관했다고 한다. 결국 상카라는 그의 우려처럼 39세의 나이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만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전쟁의 이면에는 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이 벌이는 자원전쟁(석유, 다이아몬드, 곡물 투기 등)이 있으며, 이러한 전쟁은 다시 기아를 급증시킨다. 또한 아마존 등의 환경파괴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사헬 지대의 사막화를 확대시키면서 경작지의 면적을 줄인다. 더군다나 중국, 인도 등의 산업화 가세로 인한 에너지 수요 폭증은 이러한 현상을 강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에너지 위기와 지구 온난화, 중국, 인도 등의 산업화와 전세계 경제의 요동, 전지구적 ‘슬럼’의 확대와 ‘기아’의 심화,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장 지글러는 하지만 이러한 ‘기아’의 문제를 해결불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기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엎어야 한다.

장 지글러는 인도적 지원이 효율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FAO와 WFP가 지원하는 대상국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구호단체는 크메르 루주 등 학살정권을 지원한 아픈 과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혁명적 행동은 인도적 구호를 뛰어넘는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인프라 정비를 해야 한다.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장 지글러는 이윤지상주의,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기아에 대한 투쟁을 가로막는 행위자로 WB, IMF, WTO를 지목한다.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는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하며, 장 지글러는 말한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 행복의 영토는 없다”고.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연대감이며, 국제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진짜 의지이다”라고.

따라서, “식량권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인권으로서, (망명자의 피보호권처럼) 새로운 국제 법규로서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동력은 유약한 UN에서 찾을 수 없다고 본다. 희망은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노동조합 등 전지구적 민간단체에 있으며, 이들의 “연대만이 워싱턴 합의와 인권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짧은 분량(201쪽)에다가, 아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의 쉬운 문체로 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지적은 모두 담고 있다. 아울러, 『슬럼, 지구를 뒤덮다』(창비, 마이크 데이비스),『초국적자본, 세계를 삼키다』(창비, 존 매들리),『세계의 빈곤, 누구의 책임인가?』(이후, 제레미 시브룩)을 본 책과 함께 읽으면, 더 깊은 이해와 풍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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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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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노동자의 새벽을 위해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 안건모 / 보리 / 2006년 / 8500원, 310쪽


내가 버스운전사 안건모씨를 처음 본 것은 김용만, 김국진이 진행하던 MBC 느낌표 ‘칭찬합시다’ 프로에서였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던 ‘기사 아저씨’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언제 다시 안건모씨를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글은 꽤 재미있게 읽었던 거 같다. 불규칙하고 바쁜 생활 때문에 꼼꼼히 챙겨 읽지는 못했지만, 버스운전을 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전달해 준다는 느낌은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는 버스 관련 공부를 하게 되었고 마침 떠오른 것이 안건모씨가 지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였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인 6월 1일, 나는 KTX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지우기 위해 안건모의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다시 붙잡았다.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자, 열차는 벌써 서울역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개찰구를 나오고 있는데, 내 옆에 ‘안건모’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행을 다녀오는지 가방은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라 있고, 특유의 뿔테 안경에, 개량한복 비슷한 윗옷, 튼튼해 보이는 운동화(등산화)를 신었다. 운동권스러운 실용적인 ‘패션’인 것으로 봐서는 맞는 거 같기도 한데. ‘에이, 설마 이런 우연이 있을라구’ 하다가 ‘밑져야 본전인데, 말이나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안건모씨 아니세요?”

“맞는데요. 누구시죠? 어디서 본 듯한”

안건모씨는 부산에서 전날 시청자미디어센터 주최 강연을 마치고 하룻밤 묵고 KTX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마침 나 역시 그 열차를 탄 것이었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제1장에는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 라는 주제로, 손님들이 시내버스 운전사나, 시내버스 체계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여러 가지 일화를 섞어서 소개하고 있다.

버스 운전사들이 싫어하는 유형의 손님들, 졸음운전에 얽힌 사연들(교대제), 시간에 쫓겨 안절부절하는 손님들과 기사, 불친절한 기사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내버스의 사정. 돈 내는 여러 가지 유형의 손님들, 잔돈 거슬러가지 않는 손님들과 공돈버는 회사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2장의 제목은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다. 정말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기사들과 연관되는 우리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버스일터 모임의 고문변호사였던 정연순 변호사, 한화그룹 해고 노동자 명님, 상희, 미정, 할머니와 같이 사는 정희씨 등. 그 중 안건모의 단골손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안건모의 단골들’이 있었기에 그가 MBC 칭찬합시다에 출연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단골은 반가운 단골도 있지만, 보기 싫은 단골도 있단다. 술취한 사람, 돈 안 내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한마디 외침은 ‘또라이’다. 하지만 달님이나 현지 같은 안건모 팬클럽도 있는 듯 하다. 회사 차 번호 전체를 외우고 안건모의 차 1774호를 3,40분씩 기다리는 팬들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뒷날 후기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건모의 ‘팬관리’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재미있고 더 마음이 따뜻해진다.

3장 삶이란 곧 싸움이다와 4장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는 본격적으로 시내버스의 문제점들에 대해 ‘참여관찰’한 장편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사업주와 어용 노동조합이 매년 차고치는 고스톱 비슷한 임금인상 투쟁과 요금인상, 그리고 파업. 이 신기한 ‘교감’에 대해 안건모와 버스일터는 용감하게 ‘들이’ 댄다. 사고가 나서 ‘자부담’을 요구하는 사측에 맞서, 구상권 청구할 수 없다는 단협 조항을 들이 대거나, 취업규칙을 어겼다는 사측에 맞서 근로기준법을 들이 댄다. 연월차 적치하지 않는 사측에 맞서고, 이렇게 10년의 ‘바위치기’를 통해 버스 현장도 서서히 변화된다. 급기야 버스 현장 최초로(?) 조합장 선거에 ‘민주파’를 출마시켜 선거다운 선거를 해보기도 하고 (물론 낙선했지만) 8억 가까이 되는 상여금을 꿀꺽하려는 사측에 맞서 일인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측도 만만치 않다. 징계와 해고 위협, 블랙리스트 심지어 테러로 맞선다. 하나씩 떠나가는 동료들(그래봤자 레미콘, 택시, 마을버스, 관광버스 등 ‘발통’ 노동시장이 한정되어 있지만), 힘빠지는 사람들. 익숙한 풍경들이다.

재미있는 내용으로는 버스 기사들의 “삥땅”이 있다. 워낙에 저임금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버스 사측과 개별 노동자들은 ‘삥땅’이라는 관행을 유지해 왔단다. 임금은 박하게 줄테니 알아서 ‘돈통’에서 빼가라는 것이다. 버스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건모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의 덫이기도 했단다. 항상 삥땅은 해고, 징계의 위협이 되어 돌아왔고, 노동자들은 순종했다. 몇 백원 커피값 벌려는 노동자에게 상여금, 밀린 임금, 퇴직금을 모두 포기하게 만드는 ‘건수’이기도 했다. 포기할래? 경찰서갈래?

교통카드 등이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삥땅’의 문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전에 CCTV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졌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흩어져 홀로 노동하는 노동과정의 특성상 이러한 감시시스템은 정말 사측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CCTV는 결국 노동자에게는 배차간격 무시와 난폭운전을 유도한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글들은 한겨레신문과 작은책에 실린 글, 전태일문학상에 출품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무엇보다 쉬운 글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모두가 한 번씩 경험해 봤고, 모두가 한 번씩은 생각해봤음직한 얘기들을 조리있게 설명한다. 알라딘에 가면 이 책에 대한 서평도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부분적으로는 ‘시내버스’가 그처럼 우리 삶과 밀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에는 지하철이 있어 버스의 수송분담률이 낮기는 하지만 여전히 버스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운송수단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과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밀접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태껏 나는 버스 노동자들에 대해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는 하나라고 말은 하지만, 그저 그런 미조직 노동자로 무의식 속에 방치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너도나도 하나씩 자가용을 끌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버스 노동자의 새로운 출발에 금속이나 여타 노동자들이 도와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버스 기사의 얼굴을 유심하게 보게 되었다. 내가 운행지를 물을 때도, 거스름돈을 받을 때도, 앞차가 꾸물거릴 때도, 그의 표정을 살피며 책 속의 한구절 한구절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6월 초, 마창에서는 버스 파업이 있었나보다. 또 7월부터는 마산창원도 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또한 변형근로제의 일종인 Shift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되풀이되는 파업-요금인상과 버스 준공영제, 그리고 일련의 제도변화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단다. 전면 공영제와 공공성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의 무법천지를 바꾸는 길만이 요금과 임금의 인상 경로를 차단시킬 수 있고, 노동자와 승객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안건모의 책을 보다 보면, 누가 버스를 거꾸로 가게 하는지, 그렇다면 누가 버스를 제대로 가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과연 그날이 올까? 13만이나 되는 버스 노동자들이 7만의 어용 노조를 뒤엎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인지, 흥분되는 순간이 기대된다.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유예를 노사정 합의한 순간, 한국노총에 항의 농성하러 간 버스 노동자 3인은 아직도 실형을 살고 있다. 집행유예로 나올 것으로 예상한 버스 노동자 동료들은 과연 마련했던 고기와 술을 그날 밤 어떤 기분으로 먹고 마셨을까? 하지만 닭 모가지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했던가? 이런 고전적인 글귀가 아직도 어울리는 까닭은 버스 현장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호철이 그린 표지그림을 보며, 그림 속의 조는 소님과 손을 흔드는 기사, 장을 보는 차창 밖의 사람들을 보며, 이러한 아름다운 일상이 꿈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버스 노동자는 프로다. 프로 기사(노동자)에게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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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만났던 안건모입니다. 뒤늦게 리뷰를 쓴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때 인사를 드렸는데 성함은 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 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구경하시고 구독 신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지금 작은책 독자님인지도 모르겠네요.
www.sbook.co.kr
02-323-5391

안건모 2009-07-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양솔규 님 맞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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