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작가님과 함께 하는 덕수궁 나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덕수궁은 우리나라 5대 궁궐중 하나로 원래는 궁궐이 아닌, 월산대군의 사저였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온 선조임금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광해군 때 경운궁이라고 이름짓고, 비로소 궁궐로 승격되었습니다.

 

 


 

왕족의 사저였다가 궁궐로 승격된 덕수궁은 드라마틱 한 역사를 담고 있는 궁궐입니다.

 

1904년 화재로 인해, 건물 대부분이 없어졌고, 대부분의 나무들이 불탔습니다.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나무들은 모두 1904년이후의 나무입니다.

 

1905년에는덕수궁 중명전에서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궁호가 바뀌어 지게 됩니다.

 

고종황제가 덕을 누르면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제로 인해 강제로 퇴위당한 고종의 시련

 

이 묻어 있는 곳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두나무- 앵두나무는5월말부터, 6월초까지 빨간 열매가 열리는 다른 과일나무에 비해 과실이 빨리 열

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앵두열매를 즐겨먹어 심지어 종묘제사를 지낼때도 앵두열매를 제사상에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왕으로 손꼽는 세종대왕께서도 앵두를 참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앵두 중에서도 문종이 따다 바친 앵두를 가장 좋아하셨다고 하네요.

 

 

 

이대- 왼쪽의 대나무처럼 보이는 나무가 보이나요?

 

이것이 이대라는 나무 입니다.

 

삼국지 적벽대전부분에서 제갈공명이 조조군을 속여 화살10만개를 뺏어온 내용이 기억나시나요?

 

그 시절 화살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던 것이 이 이대입니다.

 

옛날, 이대는 중요한 군사 물자가 되었던 귀중한 나무 입니다.

 

 

모과나무- 모과는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의 목과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고 할정도로 울퉁불

 

퉁 못생긴 모과 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못생긴 남자를 모과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못생긴 생김새와는 달리 모과는 기침에 효능이 좋아 약재로도 쓰입니다.

 

광해군도 평소 담증이 있어서 모과를 약으로 장복했습니다.

 

하지만, 모과를 진상해야 할 충청도에서 쌀을 찧는다는 핑계로 모과를 하나도 올려 보내지 않아, 광해

 

군은 제때에 쓸 수 있도록 모과를 상납하도록 하라는 친교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중화전의 중앙에 보이는 꽃이 오얏 무늬 입니다.

 

 

성이 이씨인 사람들이 성을 한문으로 쓸때, 李라는 자를 씁니다.

 

 

李는 오얏나무이를 일컷는 말로, 오얏나무는 자두나무를 가르킵니다.

 

 

 

그리고, 이씨의 왕조인 조선은 오얏으로 상징됩니다.

 

 

 

등나무- 등나무는 보라빛 작은 꽃으로, 눈을 즐겁게 하며, 넝쿨로 그늘을 만들어 덕수궁의 쉼터를 만들

 

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조선시대때는 그다지 환영받는 나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공자가 등나무를 소인배로 비유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소나무가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곧은 절개를 상징했던 것에 반해, 등나무는 대부분의 나무처럼

 

곧추서서 자라지 않습니다.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다른 나무들의 공간을 점령해 버리죠.

 

그리하여 "소인배는 등나무와 같아서 다른 사람에 기대지 않고서는 혼자 일어서지 못한다” 라는 비유

 

되는 굴욕을 앉게 됩니다.

 

 

땀이 뻘뻘나는 더운 날씨에도 2시간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찬찬히 덕수궁에 얽힌 역사와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설명해 주셨던 박상진 작가님 정말 감사

 

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눌와출판사측에도 감사드립니다.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정관헌 내부- 궁궐후원에 세운 휴식용 건물입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고종은 이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고종은 커피애호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커피와 관련된 독살미수사건이 발생합니다.

 

김홍륙이라는 사람이 부하를 시켜, 고종과 황태자가 즐겨 마시는 커피에 독을 넣은 것입니다.

 

다행히 고종은 입에 품었던 독차를 뱉어냈지만, 이미 독차를 한모금 마신 황태자는 그것을 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독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덕수궁 내부를 둘러보며,

 

찬찬히 조선말기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을 머물면서, 죽는 순간까지 일본을 미워했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고종황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본인으로부터 자신의 부인인 명성황후를 잃고, 일제로 인해 강제로 폐위되어야 했던 왕.

 

사랑하는 자신의 딸인 덕혜옹주를 그토록 미워했던 일본인인 대마도 지주에게 시집보내야 했던 왕.

 

왕으로 죽지 못하고, 죽어서도 철도를 통해 짐짝처럼 옮겨져 명성황후의 옆에서 안장되어 최후를 보내야 했던 왕.

 

 

과거야 어찌되었든

이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되찾고, 덕수궁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의 연못에는 원앙가족들이 평화롭게 뛰어 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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