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저녁 6시, 꽤 흥분해 있었다. 외가댁에 가는 길에 어머니랑 다투고, 강연회에 가다가 지하철을 잘못 탔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꼬이는지. 하지만 어머니는 그날 분명히 큰 화두를 던져줬다. "넌 기자로 이직도 하려고 하고, 소설도 쓰잖아. 그런 거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많아." 소위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졸업한 나. 메이저 언론사 어린이 매체에서 인턴기자로 일하고, 기자가 된다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나. 소설가로 등단한다고 습작을 하고 있는 나. 굉장히 허름한 차림의 아줌마가 어머니를 약간 세게 밀치고 나도 밀쳤다. 어머니에 이어 나도 밀쳐서 난 기분이 나빴고, 그 아줌마를 비슷한 강도로 다시 되밀쳤던 것.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열린 강연은 '전복적 이성'이라는 책의 출판을 기념하여 열렸다. 강연자는 영국 요크대의 워너 본펠드 정치학 교수. 강연은 인터넷 화상전화로 진행됐다. 동시통역사 2분이 화상전화를 연결하면서 진행됐다. 

 강연의 주제는 '아담 스미스와 질서자유주의: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로서의 국가라는 맑스의 가념에 관하여'였다. 부르주아 집행위원회라는 말이 낮의 일과 겹쳐지며 묘한 기분을 증폭시켰다. 국가란, 법이란 무엇인가. 우린 결국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도덕성과 사회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부르주아지의 계약에 의해서 흘러가는,  

 내용은 참 어렵고, 전문적인 학문의 영역이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부전공했지만, 그래도 정치학의 전문적인 내용들은 이해하기에 다소 까다로웠다. 느낀 것은 개별 학문의 전문적인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과 저널리즘은 비평적 필터에 가까워서 심도있는 전문성을 갖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 저널리즘적 방법론과 역사 등은 조금 다른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강연이 끝날 즈음 마지막 질문의 기회를 얻었다. '어큐파이 월스트리트와 분노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일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체제의 수정을 요구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본펠드 교수는 '쉬우면서 직설적인 질문이다. 쉬우면서 직설적인 질문은 참 대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을 앞으로도 얻을 수 있을지 두려워 한다. 아직 급진성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런던과 뉴욕의 시위도 급진성으로까지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이 시위에는 젊은이들의 실업,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내일 어떻게 존재할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목적이 불확실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분명히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세계에 영향일 미칠 것이에요."   

영국인 아저씨와의 화상 강연은 묘한 느낌을 줬다. 한국의 교실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동질감과 소속감을 선사했는데, 그것이 국가라는 것인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리잡은 지금의 국가 개념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전까지 무수히 자행되던 전쟁이 확실히 줄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펠드 교수와 다중지성의 정원의 교실에 앉아 있던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이미 연결되어 있으니까. 지역과 거리의 희박함은 관계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낮의 일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난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내밀었다. 아직 불안하고, 미약한 내 존재를 북돋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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