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을 통해 만나보았던 김두식 교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전에 생겼었다.
바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라는 책 강연회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명동에 있는청아람에서 진행을 하였다. 처음에 청아람을 알지 못해 30분이나 길 거리에서 헤매다가 들어갔는데 김두식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편안한 인상이었다.

법조인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그를 만났다는 것은 결국 그 자리에서 강연을 한 김두식 교수는 종교인으로 내가 바라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교회의 실정을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교회의 실정이라기 보다는 교회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정학히는 변질된 교회에 의해서 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망교회' 같은 변질된 교회가 아니라 작은교회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작은 교회'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김두식 교수가 말하는 작은 교회라는 것은 세상을 따듯하게 비춰주는 교회를 의미한다. 예수가 처음 이 세상에 내려와 약한자와 악한자를 대신해 자신을 몸을 희생했던 것처럼 그도 우리 사회의 교회가 진정으로 나아지려면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고 '공격'의 교회가 더불어 사는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교회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을 원론적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교회가 어느 정도로 타락했는지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밖에 알 수 없음에도 김두식 교수가 자기 살을 깨물으면서까지 교회의 치부를 들어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교회의 치부라고 함은 결국 국가와 결탁하여 종교적인 힘을 아무곳에나 휘둘렸음을 뜻하는데 김두식 교수는 현실의 언론들이 삼성에게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못하는 것도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가 병 들은 아니었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교회가 제대로된 종교로 자리를 다시 잡으려면 '공격'의 교회가 아니라 보살피는 교회로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싶어 안달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김두식 교수가 자신의 강연에서 가장 말하고자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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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조인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김두식 교수를 만나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10-03-05 05:26 
    불멸의 신성가족을 통해 만나보았던 김두식 교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전에 생겼었다. 바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라는 책 강연회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명동에 있는청아람에서 진행을 하였다. 처음에 청아람을 알지 못해 30분이나 길 거리에서 헤매다가 들어갔는데 김두식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편안한 인상이었다. 법조인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그를 만났다는 것은 결국 그 자리에서 강연을 한 김두식 교수는 종교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