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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오뒷세이아에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진 저자가 해석한 <오뒷세이아>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9년 8월 7일 논현에서 강대진 저자의 강연회가 열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강대진 저자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별개의 이야기로 보고 있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만든 작품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오딧세이아>에서 들어나는 여성 우위의 관점을 볼 때 <일리아스>와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그렇기에 호메로스가 두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깅는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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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회는 저자가 그림과 미술작품으로 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진행해 나갔다. 모든 이야기 중에서 옛날 이야기 그것도 신호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속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일까 20 여명이 참여한 이날의 강연장은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책에서도 밝혔듯이 이 오뒷세우스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는 각각 오뒷세우스의 모혐과 복수라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있는데 마지막 세번째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모험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오뒷세우스>에서 집어넣었던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텔레마스코스는 젊은 날의 오뒷세우스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텔레마코스가 그의 모험을 잘 견디고 무사히 돌아오는 부분에서 우리는 오뒷세우스가 그의 모험을 잘 끝내고 아내와 아들 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오뒷세우스만의 이야기가 아닌 아들이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 맥이 끊어진 느낌이 들지는 모르지만 이 <오뒷세이아>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그들이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서사시'로 묶여진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더 특이한 점은 오뒷세우스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끌어 당기기 위해 아들을 쓴 점과 오뒷세우스의 먼 훗날의 늙은 모습을 그리기 위해 할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언급한 이유도 저자는 이런 오뒷세우스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오뒷세이아>를 쓴 시인이 장치해 놓은 것이고 해석하였다.
작가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전자는 영웅문학이고 후자는 전후문학이라고 역설한다. 그렇기에 책 리뷰에 언그했듯이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오뒷세우스와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오뒷세우스는 마치 딴 사람처럼 등장한다. 그는 <일리아스>에서와는 달리 더 성숙해져 있다.
참을성을 <오뒷세이아>에서는 강조하고 있는데 그 점을 오뒷세우스는 지키고 있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이 오뒷세우스가 죽음으로서 '영웅시대'의 끝이라고 보고 있다지만 자신은 '아이아스' 이후로 영웅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오뒷세우스는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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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저자는 고전은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모든 고전은 스스로 읽어봐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 강연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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