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 그의 영화들을 보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불쑥불쑥 끼어드는 괴이한 장면들과 불친절한 이야기의 흐름과 가끔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을 보기로 하는 것은 '마음먹고' 해야 하는 일이다. 뒹굴뒹굴 구르다 채널을 돌리면서 봐도 되고, 배가 고프면 사과를 깎아먹고 와서 봐도 되는 어떤 영화들과는 매우 다른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만은 피할 길이 없다. 친절한 알라딘에서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주었고, 무엇보다도 데이빗 린치와 박찬욱의 만남이 아닌가. 물론 박찬욱 감독님 스스로가 데이빗 린치의 열혈광팬임을 밝히고 있기도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의 어떤 부분은 데이빗 린치의 영화들을 연상시키기도 하니까. 불쑥불쑥 끼어드는 괴이한 장면들과 불친절한 이야기의 흐름과(물론 박찬욱 감독이 데이빗 린치보다는 훨씬 친절한 면이 있지만) 가끔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들. 이 말은 그대로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에 가져와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감독전에 가는 길에 친구를 기다리며 잠깐 들른 교보문고에서 본 <데이빗 린치의 빨간 방>은 한편으로는 조금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씨네토크 시간에 박찬욱 감독님이나 김영진 평론가님이 말씀하신대로 나도 "이게 데이빗 린치가 직접 쓴 책인가?"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조용하고 짤막한 이야기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조금은 데이빗 린치스러웠던 것이 짧은 글에서 강단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고집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데이빗 린치의 빨간 방>을 보다가 혹은 박찬욱 감독님의 책 <박찬욱의 오마주>를 보면서 다가올 시간을 기다렸다. (<박찬욱의 오마주>는 박찬욱 감독님의 평론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이 책에는 곧 보게될 영화 <광란의 사랑>의 영화평이 나와있기도 하였다. 다른 부분 보다도 이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라고. 이것은 집 잃은 자들의 이야기라고.) 

친구가 서둘러 도착했고, 허겁지겁 저녁을 먹은 후 7시 30분 시간에 맞춰 씨네토크 및 영화상영이 진행되는 씨네큐브에 도착하였고, 8시부터 씨네토크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금 더 여유있게 도착시간을 말해주었어도 좋을 뻔 했다. 햄버거를 깨물어먹으며 서둘러 도착했는데, 30분 동안 하릴없이 기다려야 했으니까.) 씨네토크는 혼자 진행하기 버거워하시는 박찬욱 감독님의 요청으로 김영진 평론가님과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름 영화 내외적인 내용을 고루 전달해주신 것 같다. 특히 영화 내부의 이야기들보다는 우연히 린치를 마주친 일이며,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여 심사위원장 카트린드뇌브 이하 모든 심사위원들과 함께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를 보러갔던 일 같은, 박찬욱 감독님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님이 린치와의 인연을 개인적인 회상으로 들려 주는 사이에 김영진 평론가님은 듣기 좋은 목소리로 린치의 작품 세계나 (최근에는 린치가 안드로메다로 갔다는 말씀 ㅋ) 린치의 작품에 얽힌 일화들 및 배경들을 들려주며 박찬욱 감독님의 이야기에 보완을 해 주었다. 

그리고 곧 이어 데이빗 린치의 1990년도 작품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이 상영되었고, 마법의 110분이 지난 후 'Love Me Tender'가 울려퍼지는 속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와 로라 던의 자동차 위에서의 익히 잘 알려진 키스신과 함께 엔딩크레딧을 보게 되었다.  

글쎄.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뭐 어쩌면 작품의 구조나 이야기,장면들의 분석,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 및 함의를 쓰려고 한다면 몇 페이지에 걸친 긴 분석을 해야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능력도 안될 뿐더러, 여기는 영화평을 쓰는 공간도 아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나 스토리를 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영화는 린치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여(<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제외한다면) 훨씬 구조가 눈에 드러나고 스토리도 눈에 보이는 영화이긴 하나, 이 영화에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뭐 스토리라고 해봤자 결국은 여자친구 어머니의 반대 속에서 여러 고초를 겪으면서 감옥을 다녀오고도 사랑을 이루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 밖에는.) 뭔가의 다른 영화읽기를 이 영화에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기는 뭐 데이빗 린치는 매번 그래 왔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저 다만 몇 가지 것들만을 기억해두기로 하자. 시작 부분에 <Love Me>를 부르며 타인의 코를 박살내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다시 코를 얻어맞고 <Love Me Tender>를 부르며 사랑을 이뤄내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대구(對句). 그 당시에도 여전히 느끼해주시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눈빛 연기(!)와 뱀가죽 자켓(이런거는 어디서 팔죠?). 주라기 공원에서 애들을 보호하던 그 모습은 어디가고, 로라 던의 섹시한 망사그물스타킹(왜 혼자 있을 때 이런 걸 입고 있는지..)그리고 몇 가지의 데이빗 린치의 유머들. 예를 들어 시작부분의 그 세밀한 장소 묘사 자막하며, 니콜라스 케이지가 감옥에 있던 날들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 하며, 튜나 간판 뒤의 'fuck you'와 같은 것들. 그리고 우리의 바비 페루(윌렘 데포)와 그의 교정이 꼭 필요한 잇몸들(그의 악당 연기의 원형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훗날 다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마지막 니콜라스 케이지의 'Love Me Tender'의 느끼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속에서 자동차 보닛 위에서의 로라던과 니콜라스 케이지의 키스신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았다는 사실만은 기억할 것 같다. 비록 그것이 가끔 비가 내리는 화면이었더라도 말이다. (영화사 관계자께서 화질 안 좋다고 무지 미안해하셨는데, 괜찮았어요. 옛날 영화가 이 맛이죠.)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주신 알라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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