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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옷장 - 끝내주게 옷 못 입는 남자들을 위한 불친절한 해설서
민희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솔찍하게 말해서, 우리나라 남성들의 평균적인 패션은 거의 테러리스트 양성집단소라 할 수 있다.
이건 10년 전부터 패션지에서 줄곳 말해왔지만, 그때 보다 한국의 패션계가 더욱 성장했음에도 아직도 청바지에 폴로셔츠, 야구모자, 그리고 운동화...가 대부분의 휴일복장 유니폼이다. 하나 더 늘었다면 컬러풀한 등산복 아웃도어 웨어..정도가 있을터. 가격은 다들 오죽 비싼가..
사실 20대들은 스타일 멋진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띄인다. 그들은 자신의 스타일과 패션에 관심이 많고 브랜드 시장에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30대만 되면 다들 아저씨로 변하는 걸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조직에 몸 담게 되면 업무 외의 일로는 튀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되고, 주위의 평판에서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남자들은 무난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도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영업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남성들이 옷을 못 입기때문에 조금만 스타일이 좋아도 집중을 받기 쉬운 환경에 놓이는 것이다. 그러니 개성적이던 20대들도 30대가 되면 슈트도 그냥 유행에 맞춰 기성복 위주로, 휴일에는 남들입는 조합으로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닐런지?
그리고 대부분의 퍼센트를 차지하는 한결같이 패션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쭉- 살고 있는 남성들은 옷을 잘 입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해서인 것 같다. 책에서는 제대로 배운적이 없기때문이라고 표현했는데, 맞는 말이다. 근육을 어떻게 하면 이런저런 모양으로 키울수 있는지는 줄기차게 배우고 논의 하면서 옷을 잘 입기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하는지 이야기 하기가 남사스러운 것이다. 물론 패션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잘 입고싶어하나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의 등장이 반갑다. 여자인 나도 한국 남성들의 패션에 대해 이런저런 할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패션과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남자들은 얼마나 할말이 많을 것인가. 남성지 에스콰이어 편집장이 쓴, 철저하게 남성의 입장에서 다룬 '끝내주게 옷 못입는 남자들을 위한 불친절한 해설서' <그놈의 옷장> 이다.
나는 남성의 슈트가 참 좋다. 날렵하면서도 굵직한 그 떨어지는 선과 각이 너무 멋지다. 미드 '슈츠(Suits)'에서 나오는 섹시한 변호사들의 전략적인 슈트 스타일에 눈이 즐겁다. 한국 영화에서는 최근 '의뢰인'의 하정우 슈트'빨'에 감탄을 하며 보았던 기억도 난다. 많은 남성 디자이너들이 여성복에서 거장의 이름을 날리 듯이, 반대로 여성 디자이너들이 남성복에서 명성을 날리 듯이, 나 역시 입지 못해 더 끌린다고 해야할지 모르는 이 슈트를, 아쉽게도 한국의 거리에서는 자신의 체형에 맞도록 멋지게 입는 남성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성을 가장 멋지게 만들어주는 이 슈트부터 시작해서 셔츠, 팬츠, 스웨터, 구두, 속옷, 시계, 썬글라스, 남성의 화장, 헤어, 키높이 구두 신는 법까지 거의 패션에 관해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부분에 걸쳐 책은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은 어떻게 입으라고 A에서 부터 Z까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는 단순 해설집만은 아니다. 그러한 스타일이 탄생 되기까지의 배경설명 부터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직언, 혹은 외국 남성 패션에 대한 정향 그리고 몇몇 속설에 대해서도 패션 잡지의 한 부분을 읽는 것 처럼 술술 읽히고 재미있게 적어 놓았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패션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다면 배경지식을 늘리는 차원에서 매우 흥미롭게 읽힐 책이다.
내 책장에 꼽아두고 자주 보고 싶은 책임은 분명하다. 남자라면 더욱더 추천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인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 거리게 된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좋을지 배워본적이 없는 대다수의 옷 못입는 남자들에게 슈트를 고를때 주의 하며 체크해야 할 부분이라던가,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다섯개의 셔츠에 대해 알려준다던가, 구두를 고르는 방법, 얼굴이 작아보이는 코디 방법, 멋진 재킷을 고르는 방법 등등, 구미에 맞는 기본을 모두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부제에 달려있 듯이 불친절한 해설서를 넘어 배려가 없는 해설서에 가까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소 패션잡지를 즐겨보는 나도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부분의 패션 용어들이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평범한, 아니 끝내주게 옷 못입는 남자들에겐 오죽할까. 미디엄 스프레드 칼라 셔츠,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셔츠, 투버튼 스프레드 칼라셔츠, 스프레이트 포인트 칼라 셔츠, 투톤 칼라의 뱅크셔츠의 단어를 읽고 바로 모양을 떠올릴 수 있는 남자들은 옷을 못입는 남자가 아닐 것이다. 드래스업, 롤업 등등의 패션 용어들도 평범한 남자들이 읽기엔 어렵고 거부감이 드는 단어들임도 분명하다.
물론 업계의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용어일테며, 전문적인 설명을 위해서는 서양에서 쓰고 있는(서양의복이므로) 정확한 명칭을 설명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렇다면 센스있게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겸했다면 완성도도 높아지고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한국 패션을 이끌고 있는 소수의 남성들에게 짊어진 과업이란 한국의 남성 패션을 좀더 다이나믹하고 생생하게 바꾸는 일, 무엇보다 패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이 결코 과정이 쉬운 도전 과제는 아닐테다. 하지만 바다건너에서 찍혀 온 사진에서만 볼수 있던, 길거리에서 찍힌 블루 슈트와 화이트 셔츠를 멋지게 입은 백발머리 노신사을 우리나라에서도 몇십년 뒤 볼수있기 위해선 패션을 좋아하는 패션계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옷에 대해 기준을 잡지 못하고 있는 한국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남성들을 이해하고 대중적인 친절한 설명으로 그들을 배려하며 이끌어 가야 하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 책과 비슷한 여성 스타일에 대한 해설서엔 어떤 책이 있을지 서점에 가서 찾아보고 싶어 졌다.
*클래식 슈트 십계명
1. 싸구려 기성복 슈트 열 벌보다는 제대로 된 맞춤복 슈트 한벌이 낫다.
2. 소매 단추는 리얼 버튼이어야 한다. 리얼리티가 살아있어야 휼륭한 슈트다.
3. 몸과 슈트 사이즈가 정확히 맞았을 때, 셔츠 소매는 재킷 밖으로 1.2~2센티미터, 셔츠 칼라는 재킷 밖으로 1센티미터 나온다.
4. 구두를 벗었을 때 바지가 바닥에 끌려서는 안 된다. 바지 길이가 짧을수록 키가 커 보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5. 드세스 셔츠는 화이트나 블루 두 가지 색상이 기본이다. 색깔 있는 셔츠를 입고 싶다면 핑크색만은 피하라.
6. 넥타이 길이는 벨트라인을 절대 넘어서지 마라. 짧은 것은 용서가 되도 긴것은 용서가 안된다.
7. 넥타이와 포켓 스퀘어는 패턴과 색상 세트를 맞추지 마라. 아침뉴스 앵커들이나 하는 짓이다.
8. 벨트와 구두 색깔은 통일해야 그렇지 않은 때보다 열배는 더 세련돼 보인다.
9. 예식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구두는 브라운 옥스퍼드가 기본이다.
10. 드레스 셔츠는 한여름에도 긴팔이 원칙이며, 속에 런닝 셔츠를 입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