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강, 마리 여사의 전공 분야군요. 꽤나 분주한 화요일입니다. '차이'건 '사이'건 틈이 없는 하루입니다. 

내일은 마지막 강의를 전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책에서 확신하시라.(자료를 제공해준 출판사에 전하는 제 마음의 표현입니다)

 

제3장. ‘통역과 번역의 차이’에서
 


사전 없이 책을 독파하다

당시 여름 숲속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다가 한자로 ‘箱根用水하코네용수’라고 쓰여 있는 책을 발견했다. 일본을 떠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여서 낯선 땅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난 듯한 정겨움에 그 책을 꺼내어 꼭 움켜쥐었다.
  표지는 한자였지만 안은 온통 러시아어였다. 그런데도 망설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카쿠라 데루高倉テル1891~1986라는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다. 후지산 기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물에 좌우되었던 에도시대에, 지하터널을 통해 하코네箱根 아시노코芦ノ湖 호수의 물을 끌어와 저수지와 운하를 만들어 농사짓는 데 쓰기 위해 권력층과 싸우고 많은 사람의 협조를 얻어 그 사업을 성공시키는 이야기다.
  나는 책 내용에 푹 빠졌다. 한창 읽을 때는 그것이 러시아어로 쓰였다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사실 캠프에 가기 전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몇 번인가 책을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말을 몰라서 제대로 읽을 만한 것이 없었다. 단어의 뜻을 모르면 보통 사전을 찾는다. 일일이 사전을 찾으며 읽다 보니 흥미가 줄어들어 도중에 책장을 덮고 좌절할 때가 많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그래서 사전 없이 책을 읽는 데 자신이 생겼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이후에 이야기하자.
  그 캠프에서 마음에 맞는 아이들끼리 독서회를 열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정해 소리 내어 낭독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우스운 장면에서는 같이 웃고, 슬픈 대목에서는 같이 눈물을 흘린다.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진동은 다른 사람의 진동과 공명하면 더 깊고 커진다. 그만큼 더 깊은 희로애락을 맛볼 수 있다. 한편 똑같은 문장도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그것으로 서로 충돌하는 재미도 있으니 독서회는 해보는 게 좋다.
  한번은 함께 읽을 책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선정되었다. 익살스런 표현이 러시아어로 잘 번역되어 있었다. 그 학교는 대충 50개 나라의 아이들이 다녔는데,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메이지시대의 일본인이 쓴 이야기를 이렇게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구나 싶어 자랑스러웠다.
독서회를 자주 갖다 보니 러시아어로 된 글자를 읽는 게 편해졌다. 그래서 차츰 러시아 작가가 쓴 책에 도전하게 되었다.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마침 그때가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이어서 남녀관계의 미묘한 사정과 섹스 같은 게 너무 알고 싶었는데, 선생님이나 부모님께는 물을 수 없지만 문학 작품에는 그런 내용이 잔뜩 나와 있으니 열심히 읽은 것 같다. 아무튼 많이 읽었다. 



살아 있는 말을 하기 위한 과정

통역을 할 때 그 모호함의 결과로서 즉 개념의 결과로서 나온 코드화한 문자나 소리만을 주워 옮겼기 때문에 동시통역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 과정은 모호함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개념이 표현된 것을 문자나 소리로 인식했을 때 그 내용을 듣거나 읽어 해독한다. 그러고 나서 ‘아, 이것을 말하고 싶었구나’ 하고 그 모호한 대상의 정체를 인식한다. 모호한 대상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통역을 할 때는 이 모호함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즉 말이 생겨난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쳐야만 한다. 말이 생겨나고 그것을 듣거나 읽고 해독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개념을 얻어서 그 개념을 다시 한 번 말로 한다. 코드화해서 소리나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살아 있는 말이 될 수 없다. 결과만, 즉 말만 옮기는 것이 빠를 것 같지만 사실은 앞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빠르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 부품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소설뿐 아니라 예를 들어 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리학도 좋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축구 기사도 상관없다. 말이란 그런 텍스트다. 이렇게 텍스트가 된 것을 인식하고 다시 텍스트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단어마다 주워서 암기하거나 문법이라는 해골만 머리에 넣는, 살아 있는 말과 관계없는 행위를 열심히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매력도 없다.
  동시통역은 개념을 파악해 옮겨야 성립한다. 수화의 경우는 어떨까? 아마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일일이 옮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신앙을 버리지 않는 한, 통역으로의 비약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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