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 정수복의 파리 연작 1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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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여행책을 보면서 싫증을 내고 있던 중이었다. 여행책들이 그린 풍경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었고 또한 두루뭉술했다. 그곳에 가면 무슨 깨달음을 얻을 것처럼 말하는 그 모습도, 나는 싫었다. 그래서 유럽을 다녀와서 쓴 여행책이라면 아예 치를 떨었다. 그럼에도 유럽의 여행책을 기웃거리는 건 무슨 심리일까. 언젠가 그곳에 갈 순간을 그려보기 위한 것일까? 어느새 나는 다시 유럽의 여행책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난 책이 이 책이다. '파리'를 이야기하지만, 보통의 여행책과는 거리가 먼, 달라도 아주 다른,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가 내 손에 들어왔다.

「파리를 생각한다」를 택한 것은 정수복이 파리에서 약 14년을 살았고, 또한 그가 의식 있는 인문학자라는 점이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요즘에는 연예인이나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잠깐 다녀와서 정체불명의 여행책을 써내곤 하기에, 그래서 많은 실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곳에 '거주자'처럼 지낸 사람의 진지한 글이 보고 싶었던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정수복의 글은 내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나는 황급하게 책을 펼쳤다. 내 예감이 적중했다는 걸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수복의 글은 내 정신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파리를 생각한다」는 달랐다. 파리를 말하지만, 여행책들이 말하는 그런 파리의 풍경이 아니라, 파리의 주변부까지 샅샅이 언급하기 있었다. 주목할 것은 언급하는 방법론적이었다. 정수복이 말하는 방법은 '걷기'다. 이 책은 파리를 걸으면서 파리를 살펴보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파리를 만드는 역사와 철학, 문학과 예술, 삶의 환희와 비애가 길에 있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것들은 걷지 않으면 볼 수 없고 걷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정수복이 말이다. 그래서 정수복은 자신이 직접 걸으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말하며 그 중요성을 두 번 세 번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강조로 인해 「파리를 생각한다」는 인문학적인 책이 된다. '플라느리', 즉 "서두르지 않고 순간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풍경과 구경거리들에 정신을 팔며 걷는 행위"를 알려주는 정수복의 글은, 플라느리를 만끽하는 산보객 '플라뇌르'가 되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바라봐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데 그 모습은 천상 인문학을 닮았다. 물론 그것이 나쁜 건 아니다. 반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새롭게, 즐겁게 바라보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파리를 생각한다」는 요즘의 여행책과 다르게, 만족감을 준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영역까지 충만하게 만드는 그런 힘을 발휘한 것이다.

누가 이 책을 봐야 할까? 당장 파리를 여행가는 사람도 좋고 나처럼 언젠가 파리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좋다. 파리가 아니더라도 좋다. 해외의 어느 도시에 갈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여행의 기술'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기술적인 측면을 보건데 알랭 드 보통의 것보다 더 유용하니 누구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읽자. 어디어디가 멋지다는 정보를 찾는 것보다, 명소를 빠르게 돌아보는 최단거리를 알아보는 것보다,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더 큰 도움이 되니 읽자. 여행을 간다면, 부디 「파리를 생각한다」를 필독서로 삼아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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