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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읽고 가슴에 품어본게 언제였던가. 이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되짚어보았다. 너무도 까마득했다. 건드리기만해도 온 몸에 가시가 돋을 만큼 예민했고, 파란 하늘만 봐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이유없이 슬프고 쓸쓸했던 고등학생때였다. 그건 마치 오래전 앨범을 들여다보며 '아, 그 때 정말 이랬었지'라고 그리워할만큼 아련한 기억이었다. 비록 교과서에서만 읽었던 시였으나 지금도 선명하게 읊을 수 있는 시들... 그 시를 마음에 새기며 설레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랜 사회생활에 피폐해지고 삭막해진 내게 윤동주의 시와 지고지순한 삶도 조금씩 걸어들어왔다. 그 때처럼 마음을 뒤흔들만큼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이키는 무언가, 그건 바로 시의 내재된 힘이었다.
후쿠오카 형무소, 배치된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 일본인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는 감옥안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는 자신과 같은 일본인 간수 스기야마 도잔. 형무소장은 그에게 스기야마의 살인사건을 전담해 맡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살해된 스기야마의 간수복 주머니에서 발견한 시 한 편의 단서, 그리고 스기야마의 삶을 추적하는동안 점점 감옥안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에 휘말리고 진실이 아니길 바랬던 거대한 음모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스기야마의 과거행적을 쫓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한 인물. 유이치 역시 조선인만 수감된 제 3수용동의 시인 윤동주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소설은 실제 윤동주가 독립운동으로 인해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28살에서 죽기 전 29살까지 1년간의 밝혀지지 않은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통해 윤동주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보냈던 짧지만 고통스런 날들을 바탕으로 신비롭기만했던 한 시인의 생애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나는 그의 숨겨진 시간을 읽는 기쁨만큼이나, 살아남아 비루하고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슬픔 또한 배가되었다. 그는 시를 남겨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하루를 살고 있는가하는 자책도 생겼으며, 그를 죽게 만든 인간의 악랄함을 목도하고 유이치가 속죄했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겁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한편으론 책 속에 "문장은 영혼을 구한다"는 말처럼 그의 시를 읽고 내 영혼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윤동주가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리타분한 시인이 아닌,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을 믿고 끝까지 절망하지 않았던 위대한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읽기 힘들만큼 슬퍼서 휘청거리기도 했으나 끝내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은 기억만큼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 별을 바라보며 그의 시를 생각하던 때가 불현듯 스쳤다.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하고 얼마큼 아름다울수 있는가를 역설하는 이 책, 귀뚜라미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이 밤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