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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우선 형식에서 일반 소설과 다른 점을 갖고 있다. 전체가 하나의 단락으로 뭉쳐 있다는 것이다. 자주 시가 시의 형태라는 것을 탈피해 산문의 모습을 한 채로 독자들을 당혹시키는 것처럼 이 소설 역시 문장의 형태면에서 특별함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은 이 작가의 독특하거나 혹은 괴팍한 특징이다. 그래서 책을 단번에 독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띄엄띄엄 읽는 사람이라면 이어서 읽기가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끝까지 이 형태의 이유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었지만 한 편의 소설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저 짐작 정도나 가능하면 모를까.

 

그러나 그 낯선 형태를 불편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또 다른 흥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것은 문장과 연관된 흥미로움이다. 어떤 소설가의 문장은 산문이면서도 운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베른하르트의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아무리 번역이라 할지라도 문장에서 느껴지는 시적 기법이 느껴진다. 광기에 관한 사적 고찰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만한 것이 이 소설인 만큼 은유와 상징이 많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 하나의 단락에 묶인 이 소설의 문장이 의외로 운율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 형식의 특징은 작가가 카라얀을 숭배한다고 표현할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소설 속 화자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을 좋아한다면 분명 카라얀을 숭배한다는 화자의 고백에 어느 정도 공감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질투심을 느낄 법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운율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도저히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이 소설의 읽는 맛에 가속이 붙었다.

 

소설 비트켄슈타인의 조카는 광기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도대체 광기와 우정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광기라는 것이 소설이 될 정도면 세상 무엇과도 결합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아니 이 작가의 작품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냉소적 태도 또한 이 우정을 말하기에 어색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색하거나 혹은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기에 남에게 읽혀질 만한 특별함이라 생각할 수 있다.

 

화자와 비트겐슈타인의 우정은 각별하다. 아주 심각한 수술을 받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화자는 온통 친구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동까지 가는 생각과 실행에 골몰한다. 어쩌면 거기까지 가는 길에, 그 무리한 행동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어할 정도면 그 우정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런 자극적인 동기가 아니더라도 이 소설 전체가 화자와 친구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우정은 정말로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친구가 죽자 화자는 그의 장레식은 물론 후일 언제라도 그의 무덤조차 찾지 않았다. 마치 지금까지 장황하게 묘사한 우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정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이 소설은 내가 (온전히) 갖지 못한 광기와 우정에 대해서 때늦은 갈망을 안겨주었다. 광기라면 웬만한 작가라면 다 갖고 있을 것이겠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 화자처럼 조금도 위험하지 않은 광기지만 거기다 냉소의 태도까지 갖추니 이보다 근사한 지식인의 모습이 없을 것만 같다. 물론 정작 광기에 사로잡힌 본인은 고통스러운 것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소설이라는 문학적 성과가 될 수 있었으니 나쁠 것도 없다. 또한 우정도 그렇다. 사랑 때문이라면 죽을 각오로 보고 싶은 열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우정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특별한 우정이 광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우정 때문에 미쳐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처럼 이 소설은 무수한 의문을 품게 한다. 또한 광기의 우정이라는 것이 뭔가 훔쳐보고 싶게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길지 않은 소설인 탓에 그 호기심을 채우기에 많은 인내가 필요치 않은 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가장 친절한 부분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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