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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간만에 큰 충격을 준 소설이다. 착한 소녀가 아닌 어두운 밤공원 한켠에서 삼삼오오 몰려 불온하게 담배를 피우며 침을 찍찍 뱉어내는 불량소녀의 모습이 불현듯 아프게 다가선다. 이 책을 읽을라고 그랬는지 며칠 전 헬쓰를 나오는데 1층 창문 뒤에서 교복을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는 여중생 무리를 보았다. 그 아이들을 잠시 보며 나무래야 하나를 두고 잠시 고민하는데 그중 한 아이가 담배를 감출 필요도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때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내가 말려주기 바랬던 것일까. 이 소설 속의 마지막 이름 유나를 보호해주던 남자들처럼 그 아이의 사정을 들어봤어야 했을까 문득 후회가 된다.

2..
이 소설을 처음 읽어갈 때는 이외수가 떠올랐다. 그것이 우선은 흥미로왔다. 끝까지 소설 속 소녀의 의식에 따라붙는 사람을 갉아먹는 쥐 때문에 그런 듯 싶다. 이런 감상이 작가에게 혹시 결례가 될 지 모르지만 무의식 중에 떠오른 생각이니 어쩔 도리 없다. 소설 속 소녀의 긴 방황을 보면서 이외수의 소설 <들개> 속 미스 강이 떠올랐다. 이 소녀가 더 자라서는 그 미스 강처럼 될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게 그럴 것만 같았다.

모든 남자라고 해도 좋을까 모르겠지만 대게의 남자들은 이쁜 딸에 대한 로망을 갖고 산다.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확실히 희미해진 요즘이라면 더욱 결혼과 무관하게 남자는 착한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소녀는 그런 착한 딸의 가능성은 매우 적다. 착하기는 커녕 못되고 괴팍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행하다. 행복했던 순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불쌍한 아이다. 어린시절 불쌍하지만 그래도 착한 소녀들이 왕자를 만나 행복해지는 일들을 나이 먹어서도 테레비에서 실컫 감상하고 있는데 이 소녀에게는 그럴 가능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

친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라는 참 어려운 개념을 제시한 이 소설은 처음부터 소녀와 행복을 유리시켜 놓고 있다. 학교를 다녀본 적 없고,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이 소녀를 불행하다고 말하기는 정말 쉽다. 정작 소녀도 행복을 목표하지 않았다. 친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를 찾는 대단히 철학적 동기를 가진 것이 어쩌면 이 소녀의 진정한 불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하기보다는 불행이 두려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던가.

3..
문학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참 잔혹한 짓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81년생이면 서른살인 이 소설의 작가는 이 불행한 소녀의 뒤를 밟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불행한 상상을 했을까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못할 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 뒤의 추천사 중 누군가 톨스토이의 문학론을 인용했다. 그것을 다시 인용해보자.

"예술가의 사명은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삶에 애착을 지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 소설을 읽고나서 독자인 나는 내 삶에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이 불행한 소녀의 일이 비록 소설이라는 유리 속에 갖혀 있지만 이런 것도 카타르시스할 정도로 나는 야비한가 되묻게 된다. 그러면서도 문학이라는 것이 3분 혹은 길어야 5분짜리 대중가요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항상 불신하면서도 여전히 소설이나 시를 뒤적이는 미확정의 태도도 문제긴 하다.

4.
소녀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상식 선에서 가장 진짜 아빠 같았던 달수 삼촌과 헤어지던 소녀의 독백은 참 감각적이었고 적절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많은 진짜 엄마가 아닌가 생각됐던 황금다방의 장미언니, 역에서 만나 소녀를 극진히 보살폈던 식당 할머니 그리고 폐가에 숨어살던 사내 등과 헤어질 때 없었던 독백이었다.

"삼촌이 머뭇거리더니 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주문처럼, 나쁜 사람 만나지 말라고,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삼촌과 나 사이에 끼인 까만 비닐봉지에서 서걱서걱, 마음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달수 삼촌과 헤어질 무렵 소녀는 초경을 경험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어른들에게 보호받는 일도 없어진다. 그 지점이 참 아련하다.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어른들에게 보호받던 소녀가 하필 그 즈음에 또래들과 어울리게 되는 전환점이 된다. 그리고 진정 불행한 일을 겪게 된다. 어쩌면 황금다방을 나올 때부터 잠재의식을 지배했던 불길한 예감일지도 모를 결말이기도 하지만. 끝내 자기 이름을 갖지 못하고 불행에 갇혀버린 것은 소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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