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6 영어만은 꼭 유산으로 물려주자!, 공병호, 21세기북스, 2006.
본가에서 책 정리하다가 발견하고 얼른 읽었는데,
찾아보니 2020년 외국에 있을 때, 품절되어 애타게 찾고 있던 다른 책이 중고로 나와 급하게 사면서 1,500원에 같이 사 본가로 배송해 두었던 책이다.
참 별의별 책을 다 쓰셨다 싶다.
책이 나온 2006년과 지금은 한국의 영어 교육 환경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우선 언어 모형 기반의 인공지능 시대에 영어의 지배력이 더 강력해졌다. 50년, 100년 뒤에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정도 외에는 지역적 방언 이상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어뿐 아니라 영어권 사고(영어식 사고, 영미식 사고)가 인류의 사고 체계를 재조직하고 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거나 최소한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 '사피어-워프 가설', '언어적 상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ChatGPT 같은 언어 모형의 대중화로 그 이론은 비로소 검증할 수 있는 가설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지리아 등 영어권 아프리카의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는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form Human Feedback; RLHF)이 어떻게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언어(영어)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관한 기사:
Alex Hern, "TechScape: How cheap, outsourced labour in Africa is shaping AI English", The Guardian (2024. 4. 16.)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24/apr/16/techscape-ai-gadgest-humane-ai-pin-chatgpt [PubMed 논문에서 "delve" 사용이 급증했다는 Jeremy Nguyen의 X 게시물을 인용하고 있다].
사피어와 워프의 원전 등
Edward Sapir (1929), "The status of linguistics as a science", Language, 5(4): 207–214, doi:10.2307/409588
Benjamin Whorf (1956), Carroll, John B. (ed.), Language, Thought, and Reality: Selected Writings of Benjamin Lee Whorf, MIT Press
Lev S. Vygotsky (1962), Thought and Language, MIT Press.
George Lakoff & Mark Johnson (1980), Metaphors We Live B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Linda Hermer-Vazquez, Elizabeth S. Spelke, & Alla S. Katsnelson (1999), "Sources of Flexibility in Human Cognition: Dual-Task Studies of Space and Language", Cognitive Psychology, 39(1), 3–36, doi:10.1006/cogp.1998.0713
John A. Lucy (1992), Grammatical Categories and Cognition: A Case Study of the Linguistic Relativity Hypothesis, Cambridge University Press.
Deborah Tannen (1993), Framing in Discourse. Oxford University Press.
이제는 지방 중소 도시에서도 아침에 영어 유치원 차들이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충격적으로 급격히 (희)귀해진 자손들에게, 영어만은 남겨주겠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 같다.
국가에서 "영어 유치원"이라는 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여러 규제를 한들, 지금의 흐름이 꺾일 리 만무하다. 영어를 사교육에만 맡겨 놓으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다과(多寡)에 따라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유아 발달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학원은 더 늘어날 것이고, 비싼 "유아 대상 영어학원"일 수록 일반 유치원 이상으로 아이들 정서 발달에 적합한 교육을 제공할 것이다.
영어 유치원 때문인지, 영어 교육 방식이 조금이나마 더 똑똑해져서인지는 몰라도, 한국인의 일상 영어 구사력은 세대가 내려갈수록 향상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영어 교육의 전반적 가성비는 떨어지는 것 같고, 이왕 각자가 상당한 자원을 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 그것이 더 효율적으로 쓰이게 할 국가적, 공적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닌가도 싶다.
영어를 외국어라고만 생각하면, 우리는 영원히 지식의 소비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Robert J. Fouser, "지적인 활동을 위한 언어로서의 한국어의 생명력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Vitality of Korean as a Language for Intellectual Activity)", 국제어문교육비교연구회 제3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02. 10.) https://researchmap.jp/robertjfouser/misc/3382391
[책 177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지적인 활동을 더 면밀히 살피면 문제가 되는 경향들이 발견된다. 가장 명백한 경향, 특히 국외자들에게 나타나는 경향은 고등교육의 위기이다. 드물게 발견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고등교육 기관은 더 이상 지식이 창조되는 곳이 아니다. 대신 그들은 타자에 의해서 생산된 지식들[을] 소비하는 곳이 되었다. 지식의 생산과 지식의 소비의 차이는 중요하다. 지식의 생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한국어가 다른 언어들(주로 영어)로 생성된 표현 지식에 대한 운송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적인 활동 면에서 수용자 언어는 생명력이 있을 수 없다. 수용자 언어는 어휘, 구조, 세계관에서 원천 언어에 의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