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53회 너무도 쓸쓸한 당신


오랫만은 아니다. 불과 20일 전에 들렀으니 말이다. 책을 사지 않는다 않는다 하지만 결국 또 저지르고 말았다. 책 중독이 분명해. 난 그걸 알아. 그치만 어떡해 이게 내 운명인데. 책은 내 운명이야. 


며칠 전, 아들이 '알라딘에 가고 싶어요!'한다. 아들의 입에서 책을 사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어떤 부모가 '안돼!'라고 딱 잘라 말할까?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못한다. 난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아들의 말이 귀전에 맴돌즈음. 아내에게 알라딘에 가자고 꼬득인다. 그리고 이말, 아들이 알라딘에 가고 싶데.는 말도 빼지 않고. 아내 경고가 엄숙하게 이어진다. '아들 책만 사고, 당신 책은 안 돼요!' 딱 잘라 말한다. 너무~~~하시네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응 알았어'가 나온다. 일단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내를 건드려 좋은 일이 뭐 있겠는가. 또한 몰래 사려는 속내도 감출겸 나는 그렇게 순한 양이 되었다. 늑대인데 말이다.


그렇게 우린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아들이 도착하자 곧바로 서면으로 출~~발. 날씨가 풀려서인지 거리에 차가 많다. 알라딘이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입구에 [만차] 입간판이 세워져있다. 이런... 멀지만 언제나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5분 정도 걷는 것은 몸에도 좋지 않는가. 그렇게 우린 함께 걸었다. 


서면 시내를 걷기 참 오랫만이다. 곧바로 알라딘으로 직행한다. 대현 지하상가에 들어서니 뭇 여성들의 웃차람이 심상치 않다. 봄이 가까운 것이다. 열의 아홉은 여자다. 여자는 도시를 좋아한다. 여자는 수다를 좋아한다. 여자는 가까이 있어야 행복한다. 천상 도시는 여자의 것이다. 남자는 고독을 씹으며 홀로 거해야 하니. 이것이 남자의 운명이다. 시골을 내려가자는 가족치고 남자가 서두르지 않은 집이 몇이나 될까. 하여튼 봄은 여자에게 먼저 온다. 


알라딘에 들어서니 오늘 들어노 책의 권수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1561권. 와우 누가 저 많은 책을 팔고 갔단 말인가? 입구에 세워진 책, <메이드 인 공장>이 보인다. 가격을 보니 중고인데도 무려 9,100원이다. 다시 내려 놓았다. 아내와 아들은 순신간에 사라지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알라딘에서 우리는 이산가족이다. 뿔뿔이 흩어지고 찟어진다. 이건 운명이다. 내가 가장 즐기는 곳은 바로 '오늘 새로운 들어온 책'이다. 그곳으로 직행해 책을 고른다.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를 집어든다. 다시 <설득의 심리학>을 집어 들었다. 설득의 심리학은 저번에 잘못 고른 적이 있어 저자를 확인했다. 로버트 차아디니 맞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책,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와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다. 둘 중의 한 권을 골라야 했다. 몇 초의 갈등을 하고나서 박완서를 선택한다. 박완서의 책은 오래된 것이라 절판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박완서의 책은 수집하려는 속셈도 있다. 그렇게 나는 세 권을 구입했다. 아들이 살아남기 시리즈를 잔뜩 들고 온다. 이게 아니었는데, 아내는 사 준다고 한다. 이런... 글밥이 많은 책을 사야지. 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오랫만인데 하며 사준다. 하는 수 없이 계산대고 간다. 


계산을하니 오만원에서 3천원정도가 모자란다. 직원 가라사대

"오만원이 되면 2000마일리지 추가 적립됩니다."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럼 사야지. 꼭 사야지. 그게 얼만데 하며 들어올 때 봐 두었던 <메이드 인 공장>을 들고온다. 이런. 비싸잖아. 아내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모르는체 하고 계산한다. 이게 인생이지 않는가. 이게 책 사는 재미이고. 이렇게 네 권의 책을 구입했다.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 ‘절대공감바로 그 이유로. 서문부터 남다르다.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내가 상을 탈 때라던가 남의 수상식에 갈 때마다 느기는 건데, 상금만 있고 수상식은 없었으면 상도 탈 만하련만, 하고 느끼곤 한다. 수상식엔 으레 음식이 나오니까 수상식까지는 참아준다 해도 빤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수상소감이라도 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비슷한 생각을 책을 낼 때도 하게 된다. 왜 꼭 빤한 작가 서문이라는 걸 써야 되는지. 그 부담감이 소설 한편 만들기보다 훨씬 괴롭다.”

 

서문쓰기 싫어하는 내색까지 하는 작가라. 참 기이하다. 그런데 밉지 않다. 바로 이점의 박완서의 매력이다. 사십대 중반의 나에게도 할머니뻘인데도 묘한 매력이 있다. 어쨌든 책의 제목인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곧장 나아갔다. 1997년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은 것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은 교장선생님의 사모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 헤어지려고 딸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집을 나선다. 교육이란 명분으로. 이혼은 아니지만 서로 무관심한 별거상태다. 아들 딸 모두 제 길을 갔는데도 귀가(歸家)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남편은 퇴직하고 시골집에 머문다. 그런데도 미운 감정에 절대 내려가지 않다가 아들 결혼 때문에 결국 만나게 된다. 재력이 되는 안사돈과의 관계 때문에 부하기 치밀지만 참는다. 사돈이 자식들에게 주라고 건네준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일부러 주지 않는다. 골탕 먹이고 싶었지만 이것도 실패한다. 결국 남편과 함께 작은 모텔에 들어간다. 아들은 사돈집에 빼앗겼다는 것도 억울하고, 남편이란 작자도 체면만 차리고 다부짐도 없어 더 허하다. 마지막 남은 것이란 고작 남편의 정강이다.

 

오늘 하루 쓰잘데 없이 애만 썼다는 사소한 허전함이, 일생을 헛간 것 같은 거대한 허전함이 되어 그녀를 한없이 미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고 뭔가로 메우려고 너무 허둥댔음일까? 검부러기라도 움켜잡듯이 마지막으로 움켜잡은 게 펴보니 고작 남편의 정간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남편을 보며 헛한 생각이 찹찹하다. 자식들을 위해 벌지는 못해도 과하게 아껴 쓰며 살아온 남편을 생각하니 갑자기 불쌍해진다.

 

도대체 어떡하고 살기에 제 몸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때가 낀 손톱과 함께 그의 지나치게 초라하고 고달픈 살림살이가 눈에 선했다. 그렇게 안 살아도 될 만한 연금을 받고 있는 남편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가부장의 고단한 의무에 마냥 얽매여 있으려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쳤다. 그녀는 세월의 때가 낀 고가구를 어루만지듯이 남편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발견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재인식일까? 불쑥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기억으로 침공한다. 빨리 시골에 내려가야겠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좀 더 건강하실 때 돌봐 드려야겠다.

 























바늘 귀를 통과한 여자도 있다. 시집.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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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프라인 중고서점도 5만원 이상 구입하면 적립금을 주는군요. 저도 중고서점에 생각날 때마다 방문하는데 5만원 이상 사본 적이 없어요. 많이 사면 3만원 넘어갑니다.

낭만인생 2015-03-11 11:3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중고서점은 가격이 싸서 5만원이상 구입하는게 쉽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