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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인간답게 읽는 시간
전대호 지음 / 해나무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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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적이지 않은 것, 과학적인 것의 구분이 생기고 과학적이면 좋고 과학적이지 않으면 나쁜게 됬다. 생명윤리만 생각하다보니 인간의 삶에 ˝인간적인 면모˝를 앗아가며, 흑백논리에 더욱 빠지는 형국이다. 현대사회로 가며 과거보다 더 흑백논리가 심해졌고, 유명한 과학자들은 주목 받으면서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은 딱히 업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림자에 드리워진다. 이 사회 못지 않게 과학과 과학자들의 세계도 문제가 많다. 과학을 증명한다고 해서 올바른 것도 아니며 과학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른것도 아니다. 인간의 윤리와 마음을 훼손시키지 않으며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근대와 다르게 현대과학자들의 과제가 되었다. 특히 일자리나 인간이 할수있는 최소한의 역할들이 박탈당하며 과학자들은 옳은 과학기술에 대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윤리적이면서 과학적이고 안전하며 쓸모있고 인간의 역할을 훼손하지 않는 것, 알았다 그게 단순한 연구비로 해결될 수 없는 과제인가보다.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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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면, 과학적 실재론자는 과학이 정답에 도달하거나 최소한 접근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맥락에서 주로 실재론자들이 거론하는 ˝성숙한 과학˝ 이란 정답에 도달한 과학, 또는 정답에 상당히 근접한 과학이다. 그런 과학은 통일성과 안정성을 지녔다. 정답이 단 하나일 테니까 통일성이 보장되고, 어떤 논의도 정답 근처를 맴돌 테니까 높은 수준의 안정성이 확보된다. 반면에 미성숙한 과학이란 아직 정답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채 이리저리 헤매고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실은 ‘과학‘ 이라고 부르기도 곤란한 암중모색이다. 과학적 실재론자들은 이런 미성숙한 과학을 논의에서 배제하고 성숙한 과학만 주목하고자 제안하는 경향이 있다. _ 40
✍ 무릇 성숙은 안정성과 통일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우리의 통념은 ‘정답‘ 이라는 허튼 관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답이 있고, 정답을 움켜쥘 수 있으며, 꼭 움켜쥐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웬만큼 살아보면 다들 깨닫듯이, 인생에 정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에도 정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답에 대한 집착이 과학의 생산성을 해친다고 장하석은 설득력 있게 논거한다. 마지막으로 니체의 말을 되세기자. ˝어릴 적 놀이할 때˝ 우리는 배고픈 줄도 모를 만큼 ˝진지˝ 하면서도 아냥 즐거웠고, 놀이에 어떤 거창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겸허했으며, 정답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의 진지함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다. _ 42
✍ 이 대목에서 논의를 철학의 수준으로 심화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과학을 우리와 자연의 공동작품으로 이해한다. 더 일반적으로, 우리의 앎과 삶도 우리와 자연의 공동 작품이다. 굳이 공동작가들의 기여도를 따지고 싶다면, 우리의 몫이 절반, 자연의 몫이 절반이라고 보면 공정할 듯 하다. 앎에 이를 때 우리는 자연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어린아이처럼 굴지 않는다. 우리는 예측하고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자연에 질문하고, 성공적일 경우 자연으로부터 명확한 대답을 듣는다. 자연의 대답은 결정적인 성분이지만, 우리의 자발적 탐구 활동 역시 불가결한 성분이다. 이 글에서 다룬 제임스웹 사진들도 우리와 자연의 공동 작품이다. 우리가 제임스웹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 올렸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사진으로 완성될 만한 광경들을 물색하고 선정하여 그 방향으로 망원경을 조정하여 작동시켰고, 자연은 근적외선 신호들로 응답했으며, 우리는 다시 그 신호들을 처리하여 아름다운 사진들을 완성했다. 우리와 자연이 함께 그 사진들을 제작했다. _ 54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