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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르네 마그리트의 겨울비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네모반듯한 도시의 빌딩들 사이로 깍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마치 비처럼 내리는 초현실주의 작품. 분명 그 작품의 패러디로 보이는 이 책의 표지는 마그리트의 무채색에 무게감 있는 원작과는 달리 밝은 원색의 색상으로 가볍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원작의 그 무게감 때문에, 이 발랄한 느낌의 표지가 뭔가 뒤틀린 것처럼 느껴졌다. 삐에로의 미소처럼 밝지만 어딘가 슬프고 기괴해 보이는 느낌. 그래도 뭐 별거 있겠어? 싶었던 나는 곧 표지를 넘기고 이 책의 이야기속으로 퐁당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위풍당당함과 달리 이 책 속을 헤엄치다가 몇번이고 이 책의 무게감에 숨이 차고 힘에 겨워 표지를 덮어야만 했다. 

이 책은 작가 구병모가 근 2년여동안 집필한 단편 7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이다. 2년여의 시간동안 각자 다른 매체에 실렸던 작품들이지만, 그 이야기속을 관통하는 작가의 사회비판적 시선만은 한결같았다. 아마도 그것이 작가 구병모의 현재 작품 스타일인 듯 싶었다. 고백하자면 이 책에는 가득차 있는 그런 작가의 시선은 내가 한동안 한국문학을 읽지 않았던 이유였다.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척박한 세상과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보도되는 시궁창 같은 현실을, 굳이 책을 읽는 동안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동안만은 미국의 어딘가, 혹은 중세의 유럽, 아니면 일본에 소도시 같은 곳을 거닐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차고 더이상 현실을 외면한채 도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다시 한국문학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책처럼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그려낸 한국문학들 앞에선 주춤하게 된다. 나의 단점을 알고는 있지만 그 단점을 남에게 지적받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콕콕 쑤시면서 갑자기 울컥하고 화가 나는 기분이 책을 읽는 내내 드니까. 물론 이 책은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기 보다는 구병모 특유의 약간에 상상력을 가미했다. 그러나 슬프면서도 재밌는 사실은 그 약간의 상상력 때문에 이 책의 내용들이 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시장이 괴상한 동물로 변화하고, 사람이 갑자기 바닥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사람에 몸을 찢고 나오는 벌레(기계)가 등장함에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 말도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책속의 현실보다 구조적으로 더 뒤틀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은 축축 쳐졌다. 우울한 현실을 확인사살당한 기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안에 감추어져 있는 따뜻함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특히 타자의 탄생 편을 읽으면서 그 생각들은 더 강해졌다. 그 단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주변환경들은 시간이 갈수록 척박해지지만, 현실이였다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땅에 쑤셔박힌 주인공에겐 비와 이슬을 맞지 않도록 그의 주변으로 가건물을 세워줬을 것이고, 그가 보다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여기저기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을 거다. 최소한 그가 그렇게 비참한 상황이 되도록 내몰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책속의 세상보다는 더 사람간의 정이 넘치는 세상이라고. 비록 많이 비틀려 있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고.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를 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타인들에게 무관심하고 상처주는 행동들 모두 고의는 아니니까. 

구병모의 작품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소문에 소문을 듣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의 작품을 읽게 되는 것까지는 꽤 많은 우연과 감정들이 필요했다.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고 느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베르나르 키리니와 비슷하다는 것이였다. 물론 둘 모두에게 약간의 그로테스크함을 끼얹어야 할 것 같지만, 그 독특한 상상력은 세작가의 교집합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교집합을 꽤 좋아하는 나로써는 구병모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미 그의 전작 위자드 베이커리도 사놓았다. 이 단편집의 여운이 가시면, 위자드 베이커리도 읽어보아야겠다. 그 작품에선 구병모의 어떤 모습과 상상력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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