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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조지오웰의 작품이기 때문이였다. 아마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보통 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책의 주제라던지, 문체라던지, 소재라던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이 책의 작가가 조지오웰이라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의 이름 네자만이 이 책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는 모든 것이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주는 그 기대감은 나에게 결코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그의 날카로운 글솜씨는 60년도 더 지난 현재의 우리 삶을 관통하고 있었고, 내 피부를 넘어 내 심장을 꽤뚫어 버렸다. 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토록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조지오웰이 살아가고 있던 세계1차 대전 전부터(약간의 시간차가 있지만) 세계2차대전 직전까지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조지 오웰이 아니라 조지 볼링이라는 작가 조지오웰의 손 끝에서 태어나 이 책의 페이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저 책속에만 존재하는 그 인물은 조지오웰을 투영하고 있고, 그 시절을 살아가던 대다수의 사람들과 현재의 우리들에 모습까지 투영하고 있었다. 이 책의 이야기가 반백년도 더 전에 쓰여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지오웰의 관찰력과 통찰력에 대해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옛말이 그른것 하나 없음을 새삼 느꼈다. 문득 반복되는 역사처럼 조지오웰 같은 작가들도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면의 역사만 반복된다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이런 차가운 관찰력과 거침없는 필력을 가진 작가의 출현으로 멍청하게 반복되는 실수들 속에서 조금의 위로를 받기도 해야지!  

현재의 우리가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듯이 조지오웰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 그가 살던 현재에서 과거의 자신이 살아온 어린시절들을 주인공 조지 볼링을 통해 추억한다. 때때로 머릿속에서 제일 처음이라고 추정되는 자신의 집에 대한 기억부터 달콤했던 먹거리, 첫사랑,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과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젊은 시절의 기억 등등. 지금의 나에게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년시절을 거쳤다면 당연히 남아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날들에 대한 기억들이 때로는 아련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필체로 펼쳐진다. 유년시절에는 아름답고도 상쾌하며 언제나 여름뿐인 기억들만 펼쳐지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성장통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처럼 상처와 죄책감으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존재한다. 물론 그런 추억들조차 기억속에서는 보기좋게 포장되어 조지 볼링과 우리들에게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나간 시절들은 현재의 우리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난히 반짝거리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건 마치 결코 손에 넣지 못할 쇼윈도 속의 화려한 보석들을 바라보는 기분과도 같다. 물론 어쩌다가 그 보석들을 손에 넣는 일이 평생 한번쯤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석이 과연 쇼윈도 속에 있을 때와 같은 반짝임을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질까? 아니다. 우리는 모두 그 보석을 갖지 못했기에 더 빛나보인다는 것 임을 잘 알고있다. 그건 우리의 빛나는 과거의 추억들도 마찬다. 내가 결코 닿을 수 없기에 더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개인적인 이기심과 욕심이란 그런 체념과 평범한 진리에 수긍하면서도 자신은 그런 틀안에서 벗어나는(혹은 속하지 않은) 행운을 지녔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인 조지는 자신의 고향으로 과거를 찾아 떠난다. 현실에서의 질식사를 피하기 위하여, 마음껏 숨쉬기 위하여, 불안하고 짜증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하여! 

나는 어린시절에 살던 곳을 딱 한번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만약 그 동네에 커다란 주유소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절대로 그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곳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고, 모든 것은 너무 많이 작고 조잡해져 있었다. 조지의 고향 역시 그랬다. 20년만에 찾은 그곳은 당연히 과거와는 달라져 있었다. 조지도 고향에 가기전, 고향이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을 안 한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닿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인지라, 너무나 예상을 뛰어넘는 현실들에 조지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고향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분노와 배신감 같은 감정들을 느끼지만, 자신역시 이미 그 옛날의 날씬하고 순수했던 조지가 아닌 것을 어쩌겠는가. 

고향의 맑고 조용하며 평화로웠던 강물들은 조지의 외양이 몰라보게 바뀐것 것처럼 깡통들과 기름찌꺼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똥물로 끔찍하게 변해버렸고, 어린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숲은 자신들이 친환경주의자들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점령당하여 콘크리트로 된 새 물통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추억들을 놓지 못하던 그는 자신에 유년시절의 최고의 비밀이자 아름다운 추억이였던 비밀연못이 깡통으로 가득찬 쓰레기장이 된것을 목격하고 모든것을 다 털어내버린다. 이미 자신은 그곳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유령일 뿐이라는 것과, 자신이 그토록 불안과 불만으로 떠나온 현실이 유년시절의 추억들 뿐인 이곳에서도 진행중이며 그 현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아! 그 순간의 씁쓸함이라니!   

우리는 과거를 지나고 있다. 어쩌면 그 과거는 지나온게 아니라 버리고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그것만을 감싸안고 그것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현재에서는 더더욱 도망칠 수 없다. 현재가 아무리 불안하고 빌어먹게 짜증나는 것이라고 하여도 말이다. 우리는 과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를 통해 우리는 깨닫고 보다 성장해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성장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유령과 다를게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우리와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 책의 배경이자 조지오웰이 살아가던 그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바둥대고 지나간 시간만을 추억하고 아쉬워한다. 그래서 이 책의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하고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마냥 답답했다. 이곳의 현실도 그 시절처럼 숨을 쉬기 힘든 하루하루의 연속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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