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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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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표지에 대한 별다른 인상은 없었다. 빨간 색상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짚이는 구석이 없는 무난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가름선을 이용해 읽은 부분을 표시하려는 순간, 이 책의 표지에 대한 인상이 바뀌게 되었다. 그제서야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가 이 책 그자체의 이미지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또하나의 책에 존재하는 파란 가름선이 이 책에 실제로 존재하는 파란 가름선과 서로 우연일리는 없었으니까. 나는 그제서야 둔하게도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이 책의 제2장을 읽던 중, 이 책의 표지를 우연히 불빛에 비춰보게 되면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 즉 저 파란 가름선 안의 책 이미지에 빛이 닿아야만 보이는 은빛으로 이 책에 대한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이 책의 주제를 이미지로 멋지게 표현한 셈이였다. 

내가 표지에 이렇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씩 그 숨겨진 의미를 깨달아갔기 때문이였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그 4장의 서술방식이 모두 한가지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1장은 1인칭, 2장은 2인칭, 3장은 3인칭, 4장은 여러시점들이 뒤섞인 형태로 서술된다. 그래서 처음에 제1장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의 표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가 내 흥미도 끌지 못했다. 제1장까지만 하더라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평범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제2장을 읽게 되면서부터 이 책의 표지는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미지로 남지 않았다. 제2장부터 이야기는 갑자기 급변하면서 제1장의 이야기는 주인공 워커의 자전적 소설이자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꼭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처럼 말이다. 

이 책은 이런 액자구성과 다양한 시점의 변화 이외에도 작가의 이런저런 실험정신이 묻어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그런 실험정신이 작가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아주 보편적인 방식으로 서술을 하되 거기에 약간의 독특함으로 포인트를 줬다랄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특히 제2장에서 애덤이 그의 어린시절과 그의 요절한 남동생 앤디를 추억하는 장면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정성스런 장치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필요없는 장식으로 보였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 부분들을 과감하게 정리했다면, 이 책에서 그의 간결한 문체가 더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호하다. 결말에서조차도 그것들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다만, 등장인물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진실과 거짓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결국 독자들의 판단에 진실을 유보하고 있는 셈이랄까. 이 책은 제1장에서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중심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제2장부터는 그 사건의 뒷 이야기와 사소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에 드러난 텍스트만으로 사실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제1장을 모두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더 쉬워진다. 하지만 그 텍스트 안에 스며있는 진실을 찾아 해석하는 것은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독자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도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작가인 폴 오스터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개개인이 경험과 받아들이는 입장 등에 따라 각자에게 느껴지는 진실은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란 이런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진실 말이다.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요근래 가장 인기있는 작가중 한명이기에, 그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그와 만날 기회는 자꾸만 미뤄져 버렸다. 그러나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그의 책과도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어째서 그가 이렇게 인기있는 작가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간결하지만, 풍부한 감성을 담은 문체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직 이 책 한권만으로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그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그의 책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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