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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평점 :
나는 체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이 입을 모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 아름답다는 유럽의 프라하라는 곳에도 관심조차 없었다. 어쩐일인지 나는 정말 체코라는 나라에 도통 흥미가 일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고(물론 세계사에 얽힌 것만 빼면), 그 나라의 문학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러니 내가 그 유명하다는 SF작가이자 로봇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를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시작할 때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복잡하게 뒤엉킨 상태였다.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책의 제목과 이 책이 속한 SF장르에 대한 일종의 편견으로 인하여, 나는 이 책이 삼지창을 든 괴물 도롱뇽들과 인간들의 생존전쟁이라고 지제짐작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고도 나름 기발한 상상이였지만, 대략적으로 살펴본 이 책의 줄거리는 내 머릿속에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 편집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껴 있는 색상의 페이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왠지 투박해 보이는 책의 편집상태도 탐탁치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곧 책의 내용에 쏙 빠져들게 되면서 이 책의 이런 센스있는 편집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모든건 이 책의 의도를 담고자 고군분투한 편집부의 노력이였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다음부터는 부디 빨간색 종이는 피해주길 바란다. 색상으로 말미암아 눈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은 1930년대로 세계가 전쟁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뱉던 시기였다. 지금으로부터 너무나 오래전의 빛바랜 시절에 쓰여진 이야기. 그 당시 사람들이 과연 미래 자신들의 자손에 삶을 어느정도의 수준으로 상상했을까? 가만히 앉아서 전세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소식이 채 하루가 되기도 전에 지구 전체로 그 소식이 전해지는 이 미래의 삶을 당시 사람들이 내다볼 수 있었을까? 아마 단 한가지는 예상했던 것 같다. 수십년이 흘러 우리가 엄청나게 진보된 삶을 누리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여전히 우리 자신들과 싸우고 있으리라는 것을. 마치 거울을 보며 소리를 질러대고 악을 쓰는 한마리 원숭이처럼 말이다.
어린시절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얽힌 소식들을 접하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눈에 비친 그들의 생활은 우리의 생활에 비해 몹시 남루하고 곤궁해보였다. 매일매일을 싸움터에서 보내고 그 전쟁에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모두 비참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어째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싸움을 멈추고 각자 자신들의 논밭을 가꾸고 평탄한 삶으로 돌아가는게 서로에게 더 이득이지 않는가? 어째서 그들은 그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자기 자신들을 갉아먹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 그 멈추지 않는 싸움이 그 당사자들이외의 사람들에게 많은 이득이 되며, 그 이득들 덕분에 그들이 멈추고 싶어도 스스로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이 책에 쓰여진 도롱뇽과 인간의 싸움이 사실은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였다는 사실을, 내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도 그런 사람들 속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씁쓸한 여운을 더 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을 읽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 카렐 차페크에 대한 감탄을 멈출수가 없을 것이다. 한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회문제들과 그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십가지의 의견들을 내놓을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였다. 게다가 이런 다양한 시각들을 하나의 이야기에 빈틈없이 매워놓은 그의 빼어난 글솜씨와 그 뛰어난 통찰력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입모아 칭찬하고 이번 책의 번역에 많은 사람들이 반가움을 표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체코어가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한 것이라는 점이였다. 하지만 나조차도 체코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바라컨데 부디 머지않은 미래에 이 책을 체코어 번역본으로 만나보고 싶다.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때는 1930년대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우리네의 모습이 아주 약간은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