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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침묵 - 소음의 시대와 조용한 행복
엘링 카게 지음, 김민수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마음을 여는 행동이야말로 침묵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침묵은 무엇일까?
극지 여행을 하는 작가가 '침묵'을 주제로 강연을 한 후, 학생 몇 명에게 받은 세 가지의 질문으로 작가의 고민이 시작된다. 그 세 가지 질문은 이랬다.
침묵이 뭐죠?
침묵은 어디 있죠?
다른 때도 아니고 왜 지금 더 침묵이 중요하죠?
나는 산책을 할 수 없거나 등산을 할 수 없을 때, 혹은 세상에서 벗어나 항해를 할 수 없을 때마다 세상을 차단하는 법을 배웠다. 세상을 차단하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내 안에 침묵에 대한 근원적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세상을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그런 방법을 찾아나서자 그곳에서, 교통 소음과 셍각들의 불협화음 속에서, 아이폰과 제설차의 불협화음이 자리 잡은 그 깊은 곳에서 그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침묵이었다.
-p 9
"어쩌면 침묵은 경이로움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침묵은, 그래요, 마치 대양이나 끝없이 탁 트이고 눈 덮인 벌판처럼 일동의 위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이러한 위엄 앞에서 경이로움을 ㄴ,끼며 서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위엄을 두려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리고 음악이 사방에서, 온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유는)이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포세가 말하는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리라.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p 20_21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뭔가 근본적이고 진짜 같은 것으로 돌아가려는 열망과 평온을 찾으려는 열망을 품고 있다. 그들은 소음에 맞서 작고 조용한 대안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한 취미에는 뭔가 느리고 지속가능하며 사색적인 측면이 있다. 당신이 지하실에서 맥주를 양조할 때, 혹은 뜨개질을 할 때 방해를 받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덕분에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내가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것, 이번만큼은 내가 혼자서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도 아주 신나는 사치이다.
-p 41
읽을거리를 가져오는 것을 깜빡하고 볼만한 영화도 없이 비행기 50번 좌석에서 밀실공포증을 느끼며 앉아 있거나 회의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어렸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경험의 빈곤이다. 이러한 빈곤이 단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험의 결핍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활동의 풍부함 역시 경험의 빈곤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 활동은 정말이지 많아지고 있다.
-p 84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다." 말은 경계를 만든다. "나의 전체적인 의도, 그리고 내 생각에 한 번이라도 윤리나 종교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해 봤던 모든 사람들의 의도는 언어의 경계레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새장을 둘러 싼 벽에 부딪히는 이 시도는 완전히, 절대적으로 가망이 없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윤리는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이다.
-p 124
이 세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있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평선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마음을 빼앗길 때, 혹은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초록색 이끼가 낀 바위만 보면서 거기서 눈을 떼지 못할 때, 또는 그저 아이를 내 품에 안고 있는 그런 짧은 순간들이 나에겐 최고의 순간이다. 시간은 갑자기 제거되고 나는 마음속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생각은 완전히 딴 데 가 있다. 돌연 짧은 한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마치 그 순간과 영원이 정반대의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순간과 영원은 저울의 양쪽 끝에 놓여 있다. 그러나 가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가 그랬듯이 영원과 시간의 그 짧은 조각을 구분할 수 없다.
한 알의 모래 알갱이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야생화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네 손으로 무한함을 쥐어라
그리고 시간의 영원함을 쥐어라.
-p129_130
"...... 누군가는 오로지 창조된 물질, 물리적인 것만이 존재한다고 확신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우라면 시(詩)도 철학도 바흐의 음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손해라고 포세는 결론 내린다. 소멸하는 것은 시와 철학, 바흐의 음악만이 아닐 것이다. 포세는 당신과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p136_137
작가의 극지 경험의 사진과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추구한 방법론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쉬웠지만 읽는내내 작가의 침묵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침묵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단순히 말을 안 하는 행위가 아닌 사유의 언어로써의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