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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글.사진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비채, 2009.
작가 고진하의 소개를 보면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따라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나는 처음 작가의 소개를 보고 목사인 그가 우파니샤드 가르침에 따라 인도를 기행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움을 가졌다. 목사님이 왜 흰두교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지면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기독교라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은 세상에 존재하는 신과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지극히 정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믿는 신, 그들이 믿는 신은 다를 바가 없다고, 모두 존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작가도 그분들의 가르침을 "종교"라하고 신들의 가르침을 따르려한다.
그는 신들이 남긴 "으뜸의 가르침"을 찾아 인도로 향한다. 우파니샤드라는 " 가까이, 아래로 , 앉는다"라는 뜻이란다. 즉 스승이 아끼는 제자를 무릎이 닿도록 가까이 앉히고 은밀히 전해주는 지혜라는 뜻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그저 우파니샤드를 인도 철학서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뜻이 참 심오하다. 동양에서 스승이란 본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저 조력자나 안내자가 아닌 본받을 존재이고 그들의 삶은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이다. 그런 스승이 은밀히 전해주는 지혜라. 나의 호기심 또한 자극하는 말이다. 인도철학나 힌두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 우파니샤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작가의 순례를 따라 나도 함께 인도를 여행한 기분이다. 그의 눈을 통해 브라흐만을 보았으며 시바신, 아그니신,야마신,인드라신 등 인도의 여러 신들을 보았다. 정말 인도는 신들의 나라이다. 인도식 인사말에는 "나마스카!"라는 인사가 있다고 한다. 이는 내 안에 있는 신이 그대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작가의 말대로 정말 멋진말이다. 예의를 갖추는 우리나라의 인사말이 내가 아는 언어의 범위안에서는 가장 멋진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인도식 인사 또한 그들의 문화를 잘 말해주는 멋진 표현이었다. 인사말에서도 볼 수 있듯, 그들에겐 신들이 참 많다. 하지만 힌두교에서는 궁극적으로 형상을 지닌 이러한 여러 신들은 궁극적으로 형상 없는 하나로 모아진다고 한다. 즉, 브라흐만으로 귀일한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이 브라흐만은 곧 참자아인 '아트만'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참 오묘한 신과 인간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신은 곧 나의 내면에 있다는 그 말이 되새길 수록 가슴에 와닿았다.
이야기의 초반부에 샨티니케탄에 머물면서 '카틱'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작가와는 여러해전부터 친분이 있는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다. 오토릭샤기사를 하는 그는 학교도 다닌적이 없단다. (오토릭샤에 대해서는 작가의 설명은 없었지만,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와 작가의 만남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일행 중 한사람이 "당신은 행복하오?"라고 물었다. 카틱은 "집에는 닷새쯤 먹을 수 있는 쌀과 감자가 있답니다. 그리고 아내는 매일 아침 숲에서 땔감을 구해다가 차를 끓여 줍니다. 아내가 끓여준 차는 아주 맛있습니다. 그걸로 나는 만족합니다." 아. 이 얼마나 무소유의 경지란 말인가. 삶의 달관이 느껴지는 그의 대답에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욕심과 욕구가 연신 부끄러워졌을 뿐이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나의 얼굴을 붉혔다.그의 꿈은 유랑하는 음유시인인 "바울"이 되고싶다고 한다. 작가도 소망했듯 나는 그가 바울이되길 조그맣게 속삭였다.
'땅 위를 날면서도 땅에 날개가 닿지 않는 새'와도 같은 존재의 가벼움이 느껴지는 "바울"들의 이야기도 작가는 살며시 전해준다. 카틱이 꿈꾸는 음유시인 "바울"은 작가가 순례를 하며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도 버린 채 세상을 떠돈다. 덧없는 세상이기에 그저 신을 찬양하고 신을 사랑하는 일에 미친 사람들이란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이란 말인가.
카틱을 보며 바울들을 보며 하루하루 늘어가는 나의 욕심이 참 부끄러워졌다. 세상이 덧없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 세상속에 순응해가던 나였다. 신을 믿지만 그 신을 찬양하기보다는 그 신에게 갈구하는 것이 더 많았다. 나의 영혼은 세상의 때를 이미 묻혔다보다. 인도에 가면 그들과 함께 신을 찬양하면 나도 자유로와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이 그저 헛된 꿈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마음을 지녔어도 여러 생각에 이리 저리 잴 수 밖에 없는 나이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더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기로 했다. 욕심많은 나이고 세상에 순응하는 나이지만, 나 자신을 사랑해야 내 안의 "아트만"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믿는 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 사람은 자지 자신을 오렌지 두 알에 팔아버릴 수도 있고, 감자 네 근에 팔아버릴 수도 있으며, 오백 루피에 팔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자신이 원한다면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한 존재로 자기 자신을 만들 수 도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도의 한 구루(지도자)인 스와미 묵타난다의 가르침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참 자아도, 나의 신도 소중하고 값진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완전한 자유에 이르는 여정인 "해탈". 붓다와 예수는 그곳에 이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고 고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곳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속에 빛나는 영혼의 광휘를 매 순간마다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인간의 욕망 자체를 부정하면 안된다는 작가의 마지막말이 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사실 책장을 덮으면서 부끄럽지만 내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가슴 속 다짐이 더 굳건해졌다. 살아있음 자체가 욕망이라는 작가의 말. 그리고 저급한 차원의 것들에 쏠리는 욕망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숭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말. 모두 가슴 깊이 새겨졌다. 나의 신을 찬양하기 위해, 나를 찬양하기 위해, 꼭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